받을 수

   
 
수(受)자는 갑골문에서 보듯 위와 아래는 손이다. 현재의 글꼴 '손톱 조(爪)'와 '또 우(又)'는 사람의 손을 의미한다. 가운데 그림은 의견이 분분하다. 강을 건너는 배(舟)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제사 때 쓰는 그릇(盤)이라는 주장도 있다. 견해는 자기입장에서 보는 해석이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해서 이 그림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단지 어떤 물건이 한 사람 손에서 다른 사람 손으로 '옮겨가고 옮겨오다'를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처음에 수(受)는 '주고받다'를 동시에 품은 글자였다. 그러나 상거래가 더욱 커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두 가지 개념을 품은 수(受)는 분화의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주다'와 '받다'가 분명히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수(受)에 손(手) 하나를 더한 '주다 수(授)'는 이렇게 해서 나왔지 싶다. 어찌하여 '받다'가 아닌 '주다'라는 의미에다 손 하나를 더 추가했을까. 베푸는 사람이 더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더 많아지기를 바라서였을까.

 

  돕다 / 당기다 원

   
 

원(援)자의 구성요소는 두 사람의 손과 일자(1)형 선이다. 한 손이 조난자(遭難者)의 손이고 다른 한 손이 구조자(救助者)의 손이라면, 가운데 선(線)은 구원(救援)의 밧줄이다. 문자를 창조한 고대지식인들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능력자였던 것 같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문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 생각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대표적 인물이 아인슈타인이다)은 어린 시절 읽기, 쓰기, 말하기, 셈하기 등에서 심각한 학습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설은, 인간의 지능을 여전히 책으로만 하는 공부와 연관 짓는 편향된 시각에 묶여있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요즘 많이 쓰는 단어들 가운데 창의, 협업, 융·복합, 통찰, 통합 등이 있다. 사실 이런 말들은 시각적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은 사람들이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르다 지

   
 
'지(至)'자는 오랜 세월 동안 '새'가 땅에 내려앉는 모양이라 하여 '이르다','도달하다'를 뜻한다고 설명되어왔다. 하지만 갑골문의 발견으로 이 글자가 새가 아닌 '화살'에서 걸어 나온 글자임이 밝혀졌다. 날아가는 화살이 땅에 떨어진 그 순간이 바로 지(至)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물론, 땅이 아니라 과녁에 도달한 화살로 보는 학자도 있다. 지(至)는 친근한 글자다. 먼저 水至淸則無魚(수지청즉무어 :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에서 보듯 '너무','가장','매우' 등 최상급을 나타내는 부사로 사용빈도가 높다. 예를 들면 지극(至極), 지성(至聖, 지대(至大), 지친(至親), 지상명령(至上命令), (외모 또는 물질)지상주의(至上主義), 지고지선(至高至善)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甚至於) 春來梨花白, 夏至樹葉靑(춘래이화백, 하지수엽청 : 봄이 오니 배꽃 하얗게 피고, 여름 이르니 나뭇잎이 푸르다)에서 보듯 하지(夏至), 동지(冬至) 등 절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갖추다 / 준비하다 비
 
   
 

'갖출 비(備)'자는 놀랍게도 화살과 화살통(또는 거치대)에서 시작되어 오늘의 글꼴로 정착되었다. 3000년이 넘는 긴 세월 베일 속에 있다가 갑골문의 발견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무엇인가를 '갖추다' 또는 '준비하다'는 머릿속의 생각을 어떻게 시각적인 기호로 실감나게 표현할까. 더구나 죽고 죽이는 침략전쟁이 다반사였던 시대, 한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전 준비태세가 중요했을 그 시대에 말이다. 이런 경각심을 방방곳곳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자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고대의 애국심 있는 지식인들이 이럴 때 고민하고 나섰다. 이왕 문자를 만든다면, 시각적 자극을 통해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그래서 나는 침략해오는 적을 향해 언제든 화살을 뽑아 응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야말로 장고 끝에 나온 신의 한 수라고 감탄하는 것이다.

 

사슴 녹(록)

   
 
'녹(鹿)'자는 갑골문에서 보듯 한 마리 사슴에서 왔다. 아름다운 물길, 한려수도(閑麗水道)로 유명한 여수(麗水)의 '고을 여(麗)' 역시 사슴이다. 녹(鹿)자는 녹용(鹿茸), 소록도(小鹿島), 백록담(白鹿潭) 등으로 귀에 익숙하지만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 때문에 널리 알려진 글자이기도 하다.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는 불과 16년 만에 멸망했다. 환관 '조고'의 눈 먼 권력욕이 한몫했다. 그는 진시황이 죽자 태자 '부소'를 죽이고 만만한 '호해'를 이세(二世) 황제로 세웠다. 권력자는 늘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유혹에 빠진다. 어느 날 조고는 사슴 한 마리를 가리키면서 황제에게 말했다. "말입니다." 황제는 "사슴인데 어찌 말이라 하는가?" 웃으면서 좌우의 신하들을 보고 되물었다. 일부는 침묵했고, 일부는 '말'이라 했고 일부는 '사슴'이라고 했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만 하나 둘씩 죽어나갔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조고에게 토를 달지 못했다.

 

말 마

   
 
'마(馬)'자 또한 그림에서 보듯 한 마리 '말 그림'에서 출발했다. 입과 꼬리, 목덜미의 갈기가 '말'임을 보여준다. 갑골문은 현대적 의미의 아이콘(icon 圖像)과 유사한 면이 있다. 고대의 문자천재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정보를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 특징을 잡아 함축적으로 그려냈다. 그들은 수많은 뜻을 그림기호에 담아 문자로 발전시켰으며, 인간의 소통방식을 바꾸었으며, 지식과 기술의 집적과 전승(傳承)을 가능하게 했다. 앞에서 언급한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대한 에필로그로 몇 마디를 덧붙이면 이렇다. 여러 신하 가운데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만 죽어나갔다고 했다. 드디어 공포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일부 자료는 그들의 죽음을 조고의 질문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당한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고의 권력 찬탈 과정을 속속들이 봐왔던 그들을 두고 그의 의도를 몰랐을 것이라고 여긴 점은 너무 가볍다. 죽음도 불사한 충직한 자들이라고 평가해야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