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김성권, 합수 윤한봉 선생 업적 이어가요"
"청암 김성권, 합수 윤한봉 선생 업적 이어가요"
  • 김영미 기자
  • 승인 2017.11.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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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focus] 제2회 벽송행복마을의 날 및 청암 김성권·합수 윤한봉 선생' 추모식

국악 문화예술의 거장·민주화의 기둥 후손들에게 전수

칠량면 동백리 벽송행복마을에서 '제2회 벽송행복마을의 날 및 청암 김성권 선생·합수 윤한봉 선생' 추모식이 열렸다.
 
마을회관에서 열린 행사는 벽송행복마을·청암고법보존회·한국문화재단·합수윤합봉기념사업회의 주최로 마련됐다. 두 번째 열린 벽송행복마을의 날은 주민들간 더 화합하고 친목을 돈돈히 하고자 추진됐다. 또한 고향이 잘사는 본을 보여 마을출신과 출향인들의 고향 방문에 활성화를 기하고, 벽송행복마을로 귀농·귀촌의 계기를 만들어 가고자 마련되었다.
 
이날 벽송행복마을의 날에는 오수성 합수윤합봉기념사업회이사장, 박시양 청암고법보존회장, 최종열 면장, 김재정 군축제추진위원장, 주민, 칠량면 유관·기관단체장 등이 함께했다.
 
행사에는 자랑스러운 벽송출신인 문화예술의 거장 국가문화재 청암 김성권 선생, 대한민국 민주화의 기둥인 사회운동가 합수 윤한봉 선생 두 분의 뜻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이어가고자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 박시양 회장은 지난 2008년 별세한 국악인 청암 김성권 선생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소개했다. 벽송 출신으로 1991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로 서편제의 소리 맥인 국악공연단체를 이끌어왔던 김동욱의 2대독자라고 소개했다.

청암 선생은 13세에 3년동안 고법의 기초를 제대로 익혔고 17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녔다. 29세때 광주로 올라가 정광수에게 소리를 배우고 고수로 수행하면서 호남국악원에서 고법을 배웠다. 광주에 살며 호남예술학원, 금호국악원 등에서 판소리와 고법 강사로 활약하였고, 서울, 부산 등 지역에서 활약했다. 광주에 청암 판소리 고법보존회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힘써왔고 2005년 동리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오수성 이사장이 합수 윤한봉 선생의 태생과 업적을 소개했다. 1948년 벽송마을에서 태어난 합수 윤한봉 선생은 칠량초 졸업 후 농촌 발전의 큰 꿈을 꾸고 74년 전남대 농대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전국민주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에 관련돼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80년 5·18민주화운동 직전 계엄당국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수배됐던 윤 선생은 다음해 경남 마산에서 무역선을 타고 밀항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도 한인 2세와 청년들에게 국가사랑을 심어주는 활동을 하다 93년 대통령 특별담화로 수배가 해제되자 12년만에 귀국했다. 귀국 후 민족미래연구소장과 들불야학 열사기념사업회장을 맡아 5·18 정신 계승에 힘썼고, 올해로 서거 10주년을 맞았다.
 
추모식 후 벽송행복마을의 날을 기념하여 청암고법보존회 회원들의 국악한마당이 펼쳐졌다. 벽송의 날에는 청암고법보존회원들의 살풀이, 남도잡가, 아쟁산조, 적벽가 등이 공연됐다.
 
김재대 이장은 "벽송의 날은 출향인들이 살기 좋은 내고향에 최대한 귀촌할 수 있는 동기를 주는 것이다"며 "행사를 통해 벽송행복마을에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마을의 자랑인 두 분의 업적도 기려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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