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편이 보고 싶어 찾아가 돌이 된 석공아내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2
[특집] 남편이 보고 싶어 찾아가 돌이 된 석공아내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2
  • 강진신문
  • 승인 2017.08.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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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월남사지 삼층석탑-2>

그때마다 석공은 머리를 바닥에 짓찧으며 큰스님과의 약조를 떠올렸어.

"술과 여자 그리고 귀를 조심해야 하네!"

그제야 석공은 마왕이 꿈속에 나타나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석공은 그럴수록 몸을 정갈하게 하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단다.

석탑은 하루가 다르게 진척이 보이기 시작했어. 기단부와 탑신부가 끝나고 마지막 꼭대기 상륜부만 남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가고 석탑을 완공하기로 한 백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게 된 거야.

"아이고 이거 큰일 났습니다!"

미소년이 아침 일찍부터 난리법석을 피웠어.

"무, 무슨 일인 게냐?"

"어제 상륜부에 올려놓기 시작한 돌들이 녹아내려 버렸어요."

"뭐, 뭐라고?"

석공은 문을 박차고 허겁지겁 석탑으로 달려갔단다.

"헉!"

미소년의 말처럼 석탑의 상륜부의 돌들이 무른 죽처럼 녹아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어.

"아, 나무아미타불……."

석공은 석탑이 무사히 쌓아질 수 있도록 빌고 또 빌었어. 그러고는 혹시라도 큰스님과 했던 약조를 어겼나 곰곰이 생각해봤지.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어.

그때였어.

"저기……이런 말을 전해드려도 될지……."

미소년이 다가와 미적미적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인데 그러나?"

"엊그제 석문 쪽에서 왔다는 사람이 그러던데……."

미소년은 말을 꺼내다 말고 슬쩍 입을 다물었어. 석공은 석문이라는 말에 미소년을 다그쳤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응?"

"네에……안주인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고 합니다. 급히 석문에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닌지요?"

"뭐라?"

석공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고 말았어. 미소년의 말이 놀랍기보다는 바로 이 소문 때문에 상륜부의 돌들이 죽처럼 흘러내린다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거든. 가만 생각해보니 며칠 전부터 귓전에 아내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었던 것 같기도 해.

"귀, 귀를 조심해야 해!"

석공은 재빨리 나무공이를 깎아 양 귓속을 틀어막아버렸어. 틀림없이 마왕이 석탑 완공을 방해하기 위해 음해를 하고 있다고 믿은 거야. 그때 미소년의 표정이 아무도 모르게 잔뜩 일그러졌단다.

그날 이후로 신기하게도 상륜부에 올리는 돌이 녹아내리지 않았어. 이제 곧 석탑의 완공을 눈앞에 두게 생겼어. 벌써부터 석공의 가슴은 북처럼 둥둥 뛰었단다.

석문계곡의 석공 아내도 백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어. 남편과 한 약조 때문에 보고 싶어도 월출산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날마다 부처님께 남편이 무사히 석탑을 쌓기만을 빌고 또 빌었었지.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월남사에 있는 남편이 아리따운 여인과 눈이 맞아 석탑 쌓는 일은 제쳐 두고 놀아난다는 거야. 이러다 절을 떠나 멀리 도망칠 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들려왔어. 아내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어.

"흑……그럴 리 없어……."

수백 번 속으로 되뇌었지만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어. 아내는 참다못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남편을 찾지 않기로 했던 약조는 물에 씻기듯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어.

아내는 서둘러 월남사를 찾아갔단다. 월남마을 동구에 들어서자마자 쩡쩡 딱딱 정으로 돌을 깨고 쪼는 소리가 들려왔어.

"휴, 그럼 그렇지……헛소문이었어."

아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서려고 했어. 그러자 온갖 소문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발길을 다시 돌리게 만드는 거야. 나중에는 돌을 깨고 쪼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어.

아내는 정신이 흐릿한 채로 월남사 가까이 달려갔어.

"아……."

아내는 그만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돌처럼 굳어버렸어. 석탑 앞에서 남편과 아리따운 여인이 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며 놀고 있는 거야. 남편의 얼굴이 그토록 행복해보이기는 처음이었어.

아내는 배신감에 눈물을 쏟으며 남편을 소리쳐 부르고 말았어.

"흑흑……여, 여보!"

석공은 돌을 다듬다 몸을 움찔 떨었어. 하필 귀속에 깊이 박아두었던 나무공이가 퐁 빠져버렸고 말이야.

"여보……다, 당신이……."

석공은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다봤어. 옆에 있던 미소년도 뒤를 돌아봤어.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었어. 석공은 소스라치게 놀라 아내를 불렀어.

"여, 여보!"

그때였어.

'우르르ㅡ꽝꽝!'

한줄기 벼락이 하늘을 가르며 땅으로 내리쳤어. 바로 석공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머리 위로 떨어진 거야. 벼락을 맞은 아내는 선 채로 돌이 되어버렸어.

"아, 안 돼! 여……여보!"

석공은 뛰어가 돌이 된 아내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단다. 미소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말이야.

석공은 한동안 시름시름 앓아 누웠어. 눈만 뜨면 돌이 된 아내를 부둥켜 안고 우는 게 일이었어. 석탑 쌓는 일은 상륜부를 남겨두고 멈추어버렸지. 이제 석탑을 쌓기로 약조한 날도 열흘 밖에 남지 않았어.

석공은 이제 더는 석탑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큰스님과 약조한 것도 지키지 못했고, 그토록 경계해야 할 마왕을 곁에 두고 신성한 석탑 쌓는 일을 계속 해왔잖아. 석공은 짐을 챙겨 큰스님을 찾아갔어.

산중에 있는 토굴은 고요했어. 풀잎과 바람이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 새들이 나무에서 하늘로 건너뛰며 노래하는 소리만이 들려왔지. 토굴 안에서는 낮게 읊조리는 큰스님의 기도소리가 들려왔고 말이야.

석공은 조용히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떠나기로 했어.

'큰스님, 제가 삿스러운 탓에 약조를 지키지 못하고 떠납니다.'

'흑흑…….'

석공은 속울음을 울며 큰스님께 용서를 빌었어. 그때였어. 토굴의 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게 아니겠어? 석공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머리를 들어 앞을 봤어.

"으헉……너, 너는……마왕!"

토방에 큰스님 대신 미소년이 해맑게 웃고 서있는 거야. 석공은 영문을 몰라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어. 그러자 미소년이 석공을 향해 입을 열었어.

"허상과 실체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 무슨 말이냐?"

"지금 석탑 앞에 가셔서 여태 상륜부를 쌓으려고 했던 돌들을 살펴보시지요. 어험!"

미소년이 헛기침을 내뱉고 뒷짐을 하고 토굴 안으로 들어갔어. 뒷모습이 순간에 미소년에서 큰스님으로 바뀌어버리는 거야. 석공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월남사로 내려와 석탑 앞으로 갔단다.

"아니, 이럴 수가!"

석공은 상륜부를 쌓으려고 다듬었던 돌을 들고 부들부들 떨어댔어. 돌이 아니라 돌처럼 보였던 촛농이었던 거야. 석공은 그제야 깨달았어. 자기 스스로 잊지도 않는 마왕을 만들어놓고, 허울에 불과한 약조를 만들어 지키려 했다는 것을 말이야.

석공은 둘레둘레 주변을 살폈어. 맨 먼저 돌로 변한 아내가 눈에 들어왔어. 석공은 그 돌을 깨고 쪼아 상륜부의 탑을 쌓기 시작했어. 더 이상 돌이 죽처럼 녹아 흘러내리지 않았고, 백일 째 되던 날 삼층석탑이 완성되었어.

석공이 완성된 석탑 앞에 섰을 때였어.

"아!"

한줄기 햇빛이 석탑에 내려앉았고 반짝 아내의 모습이 부처가 되어 나타나는 거야.

"여, 여보……."

"나무관세음보살……나무관세음보살……."

막 백일기도를 마치고 내려온 큰스님도 목탁을 두드리며 삼층석탑에 머리를 조아렸단다. 그렇게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우리 앞에 남아있게 되었던 거지. 비록 지금은 월남사가 없어지고 없지만 말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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