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에서 '청동 수병(水甁)'이 발견됐다.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작업 과정에서 3층 탑신석 하부에 감춰진 유물이 뜻밖의 빛을 보게 된 것인데, 현재로서는 사리함으로 이용됐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성전면 소재 월남사지 삼층석탑. 오후 2시를 넘어서자 차량들의 행렬이 이어지더니 이내 차에서 내린 수십 명의 발길이 석탑으로 향했다. 청동 수병이 발견됐다는 긴박한 보고가 문화재청과 관련기관, 사찰, 학계에 전해진지 하루 만이다. 현장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문화특보인 혜일스님도 함께 했다.
 
해체작업을 위해 석탑 주변에 설치된 철제사다리를 밟고 석탑의 7m높이에 이르자 3층 탑신석 정중앙에 자리한 수병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는 20㎝쯤 됐고 가장 넓은 동체부 너비가 11㎝정도 되는 앙증맞은 크기다.
 
어깨 부위로는 지름 5㎝크기의 구멍이 뚫렸는데 흙과 함께 볍씨로 보이는 무언가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상태였다. 사리함으로 추측되고 있는 가장 첫 번째 이유다.
 
문화재청 한 관계자는 "동체부에 생긴 구멍은 무엇인가를 넣고자 인위적으로 뚫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내용물은 보존처리 과정 등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성분분석 등을 통해 청동수병의 정확한 연대측정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현장 관계자들은 수병에 대해 우리나라에는 발견되지 않은 매우 특수한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은 "청동 수병은 중국과 일본에서 7~8세기에 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의 수병이 발견되기는 국내에서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다"며 "현재로서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원장은 "수병 아래로 보이는 원형의 물체는 쟁반의 일종인 승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승반이 오랜 세월로 부식되면서 그 테두리만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 원장은 청동 수병이 후백제에서 통일신라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뒤집어진 승반의 형태로 보아 격식이나 멋스러움을 상당히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했다.
 
학계에서는 청동 수병의 발견으로 삼층석탑 제작연대와 월남사의 설립연도를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높이가 8m에 이르는 백제계 석탑으로 그동안 학계에서는 석탑의 제작 연대를 놓고도 후삼국 시대라는 주장과 고려후기라는 견해가 대립해왔다. 또한 월남사는 13세기 초반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중창(重創) 연대라는 견해도 있다. 후삼국기인 견훤대, 고려 무신정권기인 13세기 또는 고려 후기 등 제작연대 관련 학설도 여럿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청동 수병의 발견으로 월남사지에 대한 궁금증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청동 수병은 보전처리 등의 과정을 거쳐 강진으로 귀속을 원칙으로 하되 그 시기와 방법은 문화재청과 관계기관, 불교계 등이 협의해 결정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