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 臭 자취


   
스스로 자(自)
'스스로 자(自)'는 원래 '코'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문자가 모두 그렇듯이 한자 역시 만들 당시의 의미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코를 의미했던 '自'자에서 '스스로'란 뜻이 파생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코는 사람의 얼굴 가운데 가장 우뚝 솟아있고,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세로로 서있다. 예부터 '귀 살 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 생긴 거지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관상학에서 코는 한 인간의 명예심 · 의지력 · 자존심 · 재물운을 상징하는 징표로 해석된다. 코가 높고 콧대가 곧으며 살집이 풍성한 힘 있고 균형 잡힌 코를 제일로 쳤다. 또한 코는 한 사람의 성격을 규정 짓기도 한다. 콧대가 곧고 높으면 주관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전체적으로 '스스로'란 단어와 잘 어울린다.

   
냄새 취(臭)
'냄새 취(臭)'자의 윗부분은 '코'를 그린 자(自)자이고 아랫부분은 개를 그린 견(犬)자이다. '취(臭)'자는 한마디로 말하면 '개코'이다. 실험 결과 개가 냄새를 가려내는 능력은 자그마치 인간의 100만 배 이상이라고 한다. 인간은 다양한 영역에서 개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특히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마약이나 폭발물 등을 탐지하는 영역에서는 개의 뛰어난 후각(嗅覺)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잠깐 '냄새 맡을 후(嗅)'자로 지적호기심을 옮겨보자. 취(臭)자에 입 구(口)가 더해졌다. 왜 하필 구(口)였을까.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 순간 입안에서 군침이 도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정해진 수순이다. 이쯤 되니 취(臭)자와 형태가 비슷한 '쉬다 식(息)'자도 궁금하다. 코(自)와 마음(心)이 합쳐졌다. 코에서는 여유(餘裕)로운 숨고르기가 있고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휴식(休息)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싶다. 

 

發 登 발등
 

   
필 발(發)
'필 발(發)'자의 갑골문의 구성요소는 '두발'과 '손' 그리고 '막대기'이다. 손으로 막대기를 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물론 다른 해석도 있다. 앞서가는 사람의 두 다리에 막대기를 끼워 불편을 주는 모양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현재의 글꼴 에서도 고대글자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發(발)'자의 윗부분 '癶(등질 발)'은 두발을 의미한다. 막대기는 殳(창 수)로 남아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손'은 사라지고 弓(활 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냥도구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글꼴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 활동무대가 사냥터에서 전쟁터로 옮겨져 변한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발(發)자의 갑골문은 '나아가다', '떠나다' 등이 최초의 의미였고 '쏘다', '피다' 등은 나중에 파생된 뜻임을 알려준다. 글꼴의 변화를 단순히 형태의 변화로만 보지 않고 인류역사의 발자취를 읽어내는 눈으로 보면 훨씬 흥미롭지 않을까싶다.

   
오를 등(登)
'오를 등(登)'자의 갑골문을 '두발'과 '두 손' 그리고 'T'자 모양의 물건이 그려져 있다.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양새이니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두발'은 발(發)자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글자가 동작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등(登)'자의 갑골문은 가운데 'T'자 형태의 그림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하나는 제기(祭器)의 豆(제기 두)로 이해하여 제사 때 보이는 행동거지와 연결한다. 다른 하나는 이동용 노둣돌로 보아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말이나 수레를 오를 때 딛고 올라서는 모습이란다. 이 해석을 따른다면 이때의 두 손은 누구의 손이었을까. 지금도 차문을 열어주어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수천 년을 내려온 위계문화의 생명력이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한자는 픽토그램(그림문자)이라고 할 수 있다.

 

卽 旣 즉기


   
곧 즉(卽)
'때를 넘기지 아니하고 지체없이'란 뜻으로 풀이되는 '곧'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대의 천재는 밥그릇과 사람을 그려 '곧'이라는 의미를 담은 문자를 창조해냈다. 밥상 앞에 앉아 곧 밥을 먹으려는 순간을 포착하여 즉(卽)이라는 문자의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항상 느끼지만 고대인의 문자창조의 과정은 창의력 발휘에 대한 또 하나의 시사점을 안겨준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힘, 즉 창의력이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의 현장 어디서나 창의를 부르짖는 지금, 과연 청소년들에게 관찰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지 안타깝다.  즉(卽)의 고대문자 갑골문을 보고 있으면 '고향 향(鄕)'자가 생각난다. 향(鄕)자는 위의 갑골문에서 보듯 밥그릇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미 기(旣)
'이미'의 뜻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다 끝나거나 지난 일을 이를 때 쓰는 말'로 '벌써', '앞서'의 뜻을 나타낸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미'는 시간의 개념상 과거에 초점을 두는 단어다. 짐작컨대 관념 속에 들어있는 시간의 개념을 시각적인 문자로 표현하기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의 탄생과 진화과정을 역추적하여 상상해 보건데, 어쩌면 '기(旣)'자는 즉(卽)자가 완성된 순간 '아하'라는 감탄사와 함께 동시에 떠오르지 않았을까. 영감에 의한 착상, 그 가능성으로 자꾸 무게추가 옮겨간다. 갑골문을 비교해보자. '기(旣)'자는 '즉(卽)'자와 다르게 사람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고개를 돌리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미 밥을 다 먹고 고개를 돌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의 장면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