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조용한 훈계
[다산로] 조용한 훈계
  • 강진신문
  • 승인 2017.07.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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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_시인·도암면 출신>

누구나 평생 간직하고 싶은 진한 추억이나, 끝까지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숨기고 싶은 생채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지만,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등불도 될 수도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다섯 남매가 어울려 살던 비좁은 안방 장롱위에 검은색 나무상자가 올려져있었다. 아버지의 보물 상자였기에 누구든지 그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농사철에 비료나 농약을 구입하려면 가만히 내려서 선 채로 뭔가를 꺼내고, 다시 올려놓았다. 검은색 상자는 날이 갈수록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부지런하셨던 아버지는 낮에는 농사일을 하시고 저녁이면 헛간에 남포등 불빛아래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아서 오일장에 내다 파셨는데, 그 돈을 가족들 눈을 피해 나무궤짝 속에 넣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태엽을 감아 돌리는 장난감 헬리콥터를 학교에 가져왔다. 나의 실수로 교실바닥으로 떨어뜨려, 여학생들 앞에서 봉변을 당했고, 쉬는 시간마다 축구공 주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만 했던 비굴함이 치욕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부모님의 대화를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들었다. 내일 새벽 읍내 우시장에 젖을 뗀 송아지를 팔러 가는데 "우시장에 야바위꾼이나 소매치기가 득실거리기 때문에 한사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면서 당목을 접은 허리띠를 건네주었다.

다행히 다음날은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 바로 내일이다.' 가슴은 두방망이질 했고 온몸이 떨리며 잠이 오질 않았다. 오십 원이면 축구공을 사고 딸기과자 풀빵을 사먹고도 여유 돈이 생길 것 같다. 축구공을 가지고 학교에 가면 내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우쭐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께서 정오가 지날 무렵이 돼서 사립문에 들어섰다. 어머니께서"송아지를 대금 많이 받았소?" 하고 묻자 "그럼! 아 누가 키운 소인데" 하고 대견스럽다는 듯이 우쭐대셨다. 어미 소가 마구에서 아버지를 보자 송아지가 생각나서 '음매. 음매~~'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돈을 넣는 현장을 피하려고 일부러 밖을 배회하다 살며시 집으로 돌아왔다. 헛간의 나무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베개 두 개를 올리고 까치발을 하자 오금이 덜덜 떨리고 등골이 오싹했다. 몸이 흔들리자 왼손으로 장롱 윗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 상자 속을 더듬었다. 손끝에 까칠한 돈다발이 잡혔다. 한 장 모서리를 잡고 낚싯줄 낚아채듯 여러 차례 잡아챘다.

떨리는 손끝에 세종대왕이 그려진 파란색 백 원짜리 두 장이 아슬아슬 딸려 나왔다. 더 잡힌 한 장을 단단히 묶어놓은 다발 속에 다시 넣을 수가 없었다. 이백 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재빨리 나무의자와 베개를 제자리에 가져다놨다. 뒤뜰 담벼락 밑에 사금파리로 흙을 파서 돈을 숨겨놓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는 데도 아버지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온 종일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도 없었다. 담장 밑에 숨겨둔 돈을 누군가 엿보고 있었다가 가져가지 않았을까. 닭들이 먹이를 찾다 발로 흙을 헤집어서 들키지 않았을까.

그 후 며칠이 흘렀다.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자주색 축구공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오일장 날 유과와 딸기과자를 하도 많이 먹어서 입천장이 헐었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삼켰다. 묻어둔 돈은 아무리 써도 줄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교실 뒤편에는 이름위에 저금 실적표가 막대 그라프에 그려져 있었다. 칠십 원을 저금했다. 다음 날 조회시간에 용돈을 모아 저금을 많이 한 착한 학생이라며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며칠 지나서 아버지께서 나의 저금통장을 보더니 무슨 돈으로 저금을 많이 했냐고 묻자, 표준전과를 팔아서 받은 돈이라고 둘러 붙였다. 첫 번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두 번째 거짓말을 했다. 위기를 감쪽같이 모면한 내가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형제들을 모아놓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형과 동생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무심코 듣고 있었지만, '아! 아버지가 내 죄를 이미 알고 계셨구나!' 나의 얼굴은 후끈거리고 마음은 두렵고 떨려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십대 초반의 치기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자식을 눈앞에 보이는 회초리로 다스리지 않고, 훈계의 이야기로 대신 하셨던 부끄러운 과거가 아름다운 상처로 남아있기에 이순을 바라보는 반백의 나이가 되도록 유혹 앞에 의연해 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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