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24>
[특집]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24>
  • 강진신문
  • 승인 2017.05.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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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_한자·한문 지도사>


命 令(명령)

'명령 명(命)'자는 '입 구(口)'와 '명령 령(令)'의 합자이다. 명령(命令)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문자 배열은 명(命)이 령(令)보다 앞서지만 글자의 탄생순서는 그 반대라고 한다. 한자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더라도 '명령(命令)'이라는 뜻의 글꼴원형은 령(令)자가 맞는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명(命)자는 령(令)자에 입 구(口)를 첨가한 글자다. 령(令)자는 뒤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무릎을 꿇고서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입구(口)를 첨가한 것은 명령의 주고받음이 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 <중용>은 성(性)이 곧 천명(天命)임을 선언한다(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다산은 성(性)을 '마음의 기호(心之所嗜好也)'라고 해석했다. 지면의 한계 상 긴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서양 심리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본주의 심리학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갑골문자를 썼던 상나라 시대에 '명령 령(令)'자는 주로 한 국가의 최고통치자인 '임금 왕(王)'이나 '임금 제(帝)' 또는 왕이나 임금을 지칭하는 짐(朕)과 함께 등장한다. 왕령(王令), 제령(帝令), 짐령(朕令)등이 그것이다. 아마도 령(令)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아우르는 절대 권력자의 통치행위를 상징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흥미를 끄는 대목은 명령(命令)이라는 글꼴 가운데 윗부분에 해당하는 '亼'모양에 대한 해석이다. 명령을 끝내고 나서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는 반면 제례를 지내는 공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만약 윗부분 '亼'모양을 제례공간으로 본다면 신과 인간의 구도로 이 글자를 이해해도 될 듯싶다. 우리는 '령(令)'자의 글꼴만 가지고도 고대사회에서 영계와 인간계 중 어느 세계가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지를 긴 설명 없이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上 帝(상제)

위 상(上)

'위 상(上)'자는 아래 하(下)자와 더불어 대표적인 지사자(指事字)이다. 지사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뜻을 점이나 선 등으로 부호화하여 만든 문자다. 지금까지 상(上)자를 이해할 때 단순히 어떤 무엇이 어떤 위치보다 높게 놓여있기 때문에 '위'라는 뜻으로 써왔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이 상(上)자가 절대신을 상징하는 제(帝)와 함께 짝을 이루고 있음을 볼 때 단순히 위치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학자는 갑골문 위 상(上)자의 아래 둥근 선은 하늘을 상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적인 하늘을 공간적인 실체로 만든 것이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어떤 존재를 상정하기에 편하다. 위의 짧은 선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어떤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절대신/임금 제(帝)

'절대신/임금 제(帝)'는 무엇을 그려놓은 것일까? 제(帝)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꽃받침으로 보는 견해다. 겨우내 언 땅이 풀리고 어느덧 들판은 푸른 새싹과 형형색색 꽃으로 가득하다. 봄이 되면 매번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듯 과학을 몰랐던 고대인들은 꽃봉오리에서 절대신의 존재를 느꼈을지 모른다. '꽃받침 체(蒂)'자가 이 견해에 힘을 실어준다. 제(帝)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나무로 엮어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설이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이 형상을 불에 태우면서 절대신과의 교감을 체험하고자 했다. 이 견해에 주장하는 학자들은 나무를 불태우면서 하늘에 제사 지냄을 의미하는 '제사 체(褅)'자를 그 증거로 내놓는다. 제(帝)의 글꼴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든 갑골문의 기록에 의하면 제(帝)는 날씨를 주관하는 신(神)이였다고 한다. 특히 비(雨)에게 명령하는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雷 雨(뇌우)

우레 뢰(雷)

'우레 뢰(雷)'는 비 우(雨)와 밭 전(田)자의 합체자이다. 비와 더불어 여름철에 찾아오는 계절손님이다. 뢰(雷)자의 갑골문을 보면 한 장의 사실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번개가 하늘에서 갈라지는 모습과 굵은 우박덩이 또는 빗방울이 그려져 있다. 금방이라도 검은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고 굵은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뢰(雷)의 현재글꼴을 들여다보면 '비 우(雨)'자가 있는 것은 이해가 되나 '밭 전(田)'자는 생뚱맞다. 갑골문과 연결해보아도 전(田)자가 들어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사실 여기서의 전(田)은 '밭'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학자는 하늘에서 번개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종종 땅으로 벼락이 떨어지는데 그 벼락의 모습을 그려놓은 원시상형문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이야 우레는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지만 고대사회는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비 우(雨)

'비 우(雨)'자의 갑골문자를 보자. 지금의 글꼴로 변하지 않고 처음의 그 모습을 그대로 고수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문자로 표시하는데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정확한 묘사가 또 있을까싶다. 제(帝)를 설명하면서 잠깐 언급했지만 고대사회에서 비는 천둥이나 번개, 바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원시 애니미즘적 세계관이 고대사회의 문화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갑골문의 기록에 의하면 비는 절대신 제(帝)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명령을 받는다 함은 생각과 판단력을 갖춘 존재가 아니면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진 모습을 지금이야 자연현상으로 당연시하고 있지만 고대의 사람들은 제(帝)의 명령을 받들어 이행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기우제(祈雨祭)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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