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려청자 재현 사업 치적비 건립
[기고] 고려청자 재현 사업 치적비 건립
  • 강진신문
  • 승인 2017.01.0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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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환 · 전 자유총연맹 지부장>

38년 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작고하신 전 정채균 강진 군수는 지역에 3년 3개월을 재직하면서 강진의 활기찬 지난 변천사에 많은 흔적을 남기신 분이다. 강진 발전을 위해 추진하던 사업을 마무리 하기 위해 타 지역 전출을 마다하고 계속 근무를 요청하였으나 강진을 떠난 후 자가 운전 교통사고로 불행한 생을 마감하였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 업적 중 강진읍 구획 정리 사업, 마량항 확장, 강진 향토지발간, 마을 유래지, 다산 유적비 건립, 다산 동상건립, 영랑 동상 건립, 대구면 도요지 청자 재현 사업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정채균 군수의 공적을 그 당시 전 군민의 공감을 받아 작고하신 전 강진군 번영회 김영 회장 재직시 전 정채균 강진 군수의 공적비 건립을 위해 비문까지 작성, 많은 논의가 되었으나 예산, 장소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공보 계장(주무자)으로 같이 참여 했던 사업 중 첫째, 강진 향토지 발간을 위해 집필에 참여하신 차부진, 김창식, 이형희, 김현장 위원님들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내 고장 강진의 역사성과 시대의 변천에 따른 향토 문화와 옛 선인의 사적과 유적을 찾아내고 전설을 밝혀서 바르게 이해하고 보존 계승하게 하여 동참하는데 보람이었다.

둘째, 대구면 청자 재현 사업으로써 대구면 사당리, 계율리, 용운리, 18만 여평에 산재한 150여 개소 도요지에 "대한민국 대구면 도요지 사적68호"라는 표지 비문만 달랑 있었던 곳으로 이제껏 보호 관리만 하여 왔는데 600여 년간 끊어진 청자의 전승을 위해 전 정채균 군수는 청자 재현 사업 추진을 위해 청자 재현 추진 위원회를 설립하고 조기정, 이용희(위원회 기술담당)의 기능과 집념으로 조상들의 슬기로운 도예기능을 재현시키는 청자 재현의 꿈을 실현 하려는 의지가 결집되었다.

1977년 11월 20일 준공한 강진 요(1호)에서 1977년 12월 27일 200여 제품을 첫 화입을 시도하여 초벌구이를 하였고, 1978년 1월 29일 150점 제품을 본벌구이 하고, 1979년 2월3일 청자 재현 1호품을 출요(32점)하여 전 국민의 관심과 대상이 되어, 신문, 잡지, 라디오, TV등 각종 메스콤은 물론 대한 뉴스 제1,171호로 보여 지게 되었다. 특히 각 신문마다 칼라로 특집 보도 되었다. 그 후 요상 보호각(58평), 전시관(38평), 관리사(10평), 안내판 등이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다 헐리고 그 자리에 좋은 시설로 교체되었다.

청자 재현 품에 제작 년대 표기를 수차례 건의하여 잠시 시행한 적이 있었는데 소장 가치로 년대 표기가 다시 되었으면 하고 옛날 사당리 일원 논밭에 수많이 산재 되었던 고려청자 파편이 요즈음은 찾아보기 힘든데 고려청자 파편 무덤 탑과 청자 재현 파편 무덤 탑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많은 변천을 거듭하여 민간인 요 28개소가 제품 생산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청자 축제로 전국 최고상을 수차례 수여하는 등, 강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고려 청자촌이다. 이에 청자 재현 사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강진요(1호)앞에 정채균 군수의 치적과 추진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는 청자 재현 사업 첫 재현품1점을 얹어 치적비를 세우는데 군 당국에서는 하루 속히 검토하였으면 한다. 강진군 거주 후진이나, 외래 관광객에 길잡이가 되어 좋은 역사 탐방의 추억의 한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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