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촛불 민심을 바라보며
[기고] 촛불 민심을 바라보며
  • 강진신문
  • 승인 2016.12.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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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시인>

기록적인 폭염을 이겨낸 나무 잎이 가을걷이에 나선 찬바람의 갈퀴질에 땅바닥에 누웠다.

나무는 겨울이 돌아오면 스스로 잎을 버리고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 낙엽은 자신을 산화(酸化)시켜 지탱해준 토양에게 보답하고 이듬해 잎이 진 자리에 새싹으로 돋아난다.

밀림의 제왕 사자는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고 가족들이 먹고 남은 먹이를 약한 날짐승들이 먹어도 굳이 해치지 않는다. 사람처럼 인지적 사고의 훈련을 받지도 않은 나무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열매를 스스로 떨어뜨린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이런 것이다.

한 편 장엄한 인류 역사를 견인해온 인간은 지나친 욕심으로 움켜쥔 손을 펴지를 못하고 살다가 수의를 입을 때가 되어서야 손을 편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죽어서 손을 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는 <화엄경>의 말처럼 내가 가진 것을 버려야 또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움'이 있어야만 '채움'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품고 있는 끝없는 물욕에 대한 경구이다.

요즘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대한민국이 밤새 안녕했는지 텔레비전 리모컨을 잡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주권자와 측근들이 공모하여 빚어낸 국정농단의 참극을 바라보면 온 종일 밥맛이 없고, 낮 시간에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저녁시간 즐겨 시청하던 드라마도 흥미를 잃었다.

대한민국은 공황 상태이다. 엔진이 멈춰버린 채 목적지를 상실하고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가 어디로 가는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이다. 물질을 향한 끝없는 탐욕이 초래한 필연이다. 우리는 지금 몸값이 수십억이 되는 말(馬)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말(言)같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는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들은 할 말이 없다.

정치력을 발휘해서 국난을 슬기롭게 수습해야 할 대의청치의 책무를 가진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염불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잿밥에만 몰두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누란(累卵)의 지위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난세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과 같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걸고 당태종에게 간언했던 중국의 최고 정치가 위징(魏徵)과 같은 신하가 필요하다.

그는 군주신수(君舟臣水)라 하여,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사공이 물의 성질을 잘 알아서 배를 다루듯이 임금은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역설했다. 그 후 모함을 받아 어명에 의해 묘비까지 훼손당했지만 그 후 전쟁에 참패한 당태종은 만약 위징이 곁에 있었더라면 이런 쓰라림이 없었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순자(荀子)역시 '수능재주우복주(水能載舟又腹舟)'라고 했다.

물은 배를 띠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다는 뜻이니, 백성이 임금을 길러 제왕으로 모실 수도 있으나 또 그를 내려오게 할 수도 있는 민중의 힘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매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한다. 경찰의 물대포도 차가운 비바람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민중들은 청와대를 향하여 대통령 하야를 외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폭력 평화적 시위는 표류선을 집어삼킬 듯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정작 선장은 귀를 틀어막은 채 꿈적도 하지 않는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한 어느 국회의원의 망언에도 불구하고 촛불민심은 더 크게 번져갈 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보릿고개를 한강의 기적으로 넘겼으며, 90년대 IMF를 국민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 2002년 월드컵 대회는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의 대열로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되었지 않은가.

궁즉변(窮則變)이고 변즉통(變則通)이라 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다. 이제 안전하고 항구적인 변화의 통로를 모색해야 한다. 오염된 강을 청소할 때 강물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해야 하듯이, 사상초유 국정농단의 사태로 드러난 총체적 위기를 온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 더 살기 좋은 나라를 건설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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