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武 (문무)

   
글월  문(文)

'글월 문(文)'자는 갑골문에서 보듯 가슴에 문신을 새긴 사람의 정면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논어 안연편』에 보면 극자성(위나라 대부)과 공자의 제자 자공이 대화를 나눈다. 극자성이 물었다. "군자는 질(質)이면 되지 문(文)은 해서 무엇 하겠소?" 자공이 대답했다. "애석 하군요, 그대의 군자에 대해 말이. 네 마리 말도 혀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문(文)은 질(質)과 같고, 질(質)도 문(文)과 같습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나 개나 양의 가죽은 같습니다." (棘子成曰 君子, 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設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대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질(質)은 바탕이고 문(文)은 꾸밈(문학, 예술, 철학 등)이다. 바탕과 꾸밈은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호랑이나 표범에게 털(文)없다면 그 가죽을 어떻게 개나 양의 가죽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털(文) 때문에 그것이 호랑이의 가죽인지 개의 가죽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인문학을 하는 이유와 통한다.

 

   
호반/굳셀  무(武)

'호반/굳셀 무(武)'자의 갑골문은 창과 발바닥을 그려 만들었다. 창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어디로 향하는 발걸음일까. 바로 적진(敵陣)이다. 무(武)는 창(戈)과 발바닥(止)이라는 단 두 개의 구성요소를 취하지만 군인들의 보무당당(步武堂堂)한 행진을 연상하게 하는 글자다. 군중들의 함성과 대취타(大吹打)의 풍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글자의 꿈틀대는 에너지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武)자는 그동안 지금의 글꼴만을 보고 창(戈)으로 전쟁을 그치게(止) 한다는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되고서야 이 글자의 본래 속성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임을 알게 되었다. 무(武)는 주나라 무왕(武王) 때의 악곡 이름이기도 하다.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고 주나라를 세운 공적을 찬양한 노래이다. 갑골문 무(武)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있음을 본다.

 

 

歲 寒 (세한)

   
해/나이  세(歲)

'해 세(歲)'자의 현재의 글꼴은 '천간 무(戊)'와 '걸음 보(步)'의 합성임을 알 수 있다. 무(戊)는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申)·임(壬)·계(癸)의 천간(天干)중 하나이다. 이러한 명칭은 갑골문을 사용했던 고대 은나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천간(天干)은 각각의 태양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태양은 10일이면 한 바퀴를 돌게 되는데 그것을 '열흘 순(旬)'이라고 했다. 초순(初旬), 중순(中旬), 하순(下旬)이라는 통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갑골문을 보면 무(戊)는 손잡이가 있는 무기 또는 농사용 삭도(削刀)로 짐작된다. 그러면 '해 세(歲)'에서 두 발바닥으로 상징되는 '걸음 보(步)'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시간은 흘러간다. 아차순간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남긴 발자취만은 선명하든 그렇지 못하든 영원히 남는다는 것 아닐까 싶다. 

 

   
차다/춥다  한(寒)

'차다 한(寒)'자의 고대글자는 '집 면(宀)', '무성한 풀 망(茻)', '사람 인(人)', '얼 음 빙(冫)'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으로 치면 난방장치에 해당하는 마른 풀을 집안에 가득 쌓아두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연상되는 한자다. 한(寒)자는 인간의 고정관념(固定觀念)이 왜곡과 오류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자이기도 하다. '추움'을 의미하는 한자이기 때문에 얼음 빙(冫)을 이 글자의 부수로 생각하기 쉽다. 처음에 필자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글자의 부수는 집 면(宀)이다. '집안이 추움'을 의미하는 글자인 것이다. 세한(歲寒)은 추사 김정희를 떠오르게 한다. 제주도 유배 중에 그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여름동안 모든 초목은 하나같이 푸르다. 따라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추운 겨울이 된 후라야 비로소 진짜 푸름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奔 走 (분주)

   
달릴  분(奔)

분(奔)과 주(走)의 고대글자는 만화책속의 그림 같다. 이 두 글자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배열과는 반대로 주(走)부터 살펴봄이 좋을 듯싶다. 달릴 분(奔)자의 핵심은 아랫부분에 배치된 세 개의 발바닥 부호이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두 개가 맞다. 그러면 어찌하여 세 개를 그려 넣었을까. 지금의 시각으로 추론해 본다면, 아마도 당시의 문자창안자는 발바닥 2개만으로는 이 글자의 본래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을 느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표현된 그림만 보더라도 분(奔)이 주(走)보다 훨씬 더 빠름을 의미하는 글자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단 몇 개의 선과 부호로 빠름의 차이까지도 사실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던 고대인의 지적 수준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분주(奔走)는 물리적인 빠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바쁨'의 총체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달릴  주(走)

'달릴 주(走)'자는 사람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 글자이다. 윗부분은 최근까지 100m 달리기의 일인자인 우사인 볼트의 달리는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아랫부분은 발바닥을 상형한 지(止)이다. 그런데 사실 윗부분만 보면 양팔을 흔들고 급히 걸어가는 모습인지 아니면 달려가는 모습인지 쉽게 분간하기 힘든 면이 있다. 발바닥을 아랫부분에 배치해서 달려가는 모습임을 분명히 한 것을 보면 최초의 문자 창안자도 이 점을 염려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주(走)자는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다. 이어 달리기를 뜻하는 계주(繼走), 빨리 달림을 뜻하는 질주(疾走), 끝까지 달림을 뜻하는 주파(走破), 달리는 말위에서 산천을 구경하듯 자세히 살피지 않고 대충대충 지나감을 뜻하는 주마간산(走馬看山),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잘하는 사람을 더욱 격려함을 뜻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