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짓말 같은 사실(事實), 덕(德)은 외롭지 않다
[기고] 거짓말 같은 사실(事實), 덕(德)은 외롭지 않다
  • 강진신문
  • 승인 2016.06.1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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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만 ㅣ 전 의정동우회장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모두에게 감명을 주며 공감하는 사실과 우리의 마음에 빈 곳을 풍요롭게 하는 근원의 일들이 있다. 삶의 방법이야 다르지만 만인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살아온 평범한 일상의 내면의 깊이를 되새겨본다.
 
첫째, 무항산(無恒産)이며, 무항심(無恒心)은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바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청백리의 모델로 여겨졌던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왜 비난 여론을 감수하고 로펌행을 선택했을까! 대법관 출신으로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는다고 고사했다가 대법관 공직생활 퇴직 후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해 편의점 아저씨로 불렸던 김능환 전 중앙선거 관리 위원장을 사회의 귀본으로 대서특필했었다.
 
그러나 성인군자처럼 비친 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 생활인으로서 할 일을 찾아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일 끝까지 언행일치 되었다면 얼마나 고귀했을까! 한없는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불리는 종신직인 미국대법관직을 19년 만에 미련 없이 내 던진 데이비스 수터 대법관은 뉴햄프셔 주웨어 카운터에 있는 낡은 농가 자기 고향집으로 찾아갔다.

그의 친구들에 의하면 1990년대 법관에 지명되자 고향을 떠날 때 그 어릴 적 사진 등 추억이 깃든 물건을 상자에 빼곡히 담아 왔는데 여전히 짐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빨리 시골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시내 고급 관사 대신 작은 아파트를 전세 내어 살았으며 점심은 주스, 요구르트와 사과를 싸와서 집무실에서 해결했다고 전한다. 또한 낡은 폭스바겐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였고 휴대전화, 자동 응답 전화기도 없었다고 한다.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하버드대 학부와 법학 학원을 졸업하고 뉴햄프셔주 검찰총장을 지낸 그를 대법관에 지명했다. 세계 최고의 직업보다 고향이 더 좋아 평생 직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을 선택한 데이비트 수터 미국 대법관. 오직 미국이었기에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둘째, 우리 이웃 군(郡)인 해남에 집이 가난하여 중학 진학을 하지 못한 한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소년은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같이 다니던 교회에서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며칠 씩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편지 한 장을 썼다. "하나님, 저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모든 일 다 감수하겠으니 저에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십시오" 소년은 공부에 대한 열망과 가난한 집안 형편을 적었다. 편지 봉투 앞면에는 "하나님 전상서"라고 쓰고 뒷면에는 자기 이름을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소년의 편지를 발견한 집배원은 어디다 편지를 배달할까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하나님 전상서라 했으니 교회에 갖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해남읍교회 이순묵 목사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함석헌 선생의 제자인 이 목사는 소년의 편지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소년을 불러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살게 하고 과수원 일을 돕게 하면서 중학교에 보내주었다.

소년은 열심히 공부해서 한신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엔 고향에서 목회자로 일하다가 스위스 바젤대로 유학을 가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의 교수가 되고 다음에 총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 소년이 바로 "오영석" 전 한신대 총장이라고 한다. 우체부의 판단 덕분에 인생의 운명이 좌우되어 우연이 필연이 된 일이 있었던 것이다.(이어령 언급)
 
셋째, 우리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 18년 동안 수백여 권의 저술 활동과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 동기는 처음 동문 밖 주막집 주모가 다산 선생에게 방 한 칸을 내어준 그 배려 때문이었다. 주모의 깊은 의미에는 어디에도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저 주모는 사랑과 봉사의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현재 사의재 다산 주막에는 모녀상이 조각되어 있다. 왜 다산 주막에 다산선생 조각상은 없고 주모모녀 조각상만 있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다산을 외면했으나 주모만은 귀양 온 다산 선생께 국과 밥을 챙겨 드리며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끼니때가 되면 식사를 함으로써 배고프지 않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본질을 지니고 있는데 주모는 그 본질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바로 선생으로 하여금 유배생활 중에서는 선비로서의 실천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큰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주모는 다산선생이 유배의 꽃을 피우게 한 근본 원인이 아닐까?
 
주모에 내면의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마음. 다시 한 번 느껴보며 갈등과 삶에 메마른 모두의 마음에 신선함을 새롭게 느끼는 개기(開基)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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