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봄이 오는 길목에서
[다산로에서]봄이 오는 길목에서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4.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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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장흥부군수.작천출신>

  강진의 봄은 아무래도 월출산 금릉 경포대(金陵鏡浦臺)에서 시작되지 않나 싶다. 경포대는 천황봉 정상 남쪽으로 삼존암터가 있고 원천수의 샘이 있는 계곡이다.

거무튀튀하면서도 둥싯둥싯 솟아있는 바위사이로 수량도 많은 맑은 계류가 사시사철 흐르는 경포대는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한 경승지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으로써 한 여름밤의 밝은 달빛이 담소(潭沼)의 맑은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기 때문에 금릉 경포대라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 경포대의 계곡물이 겨우내 얼음장 밑에 숨어 있다가 비로서 기지개를 켜고 철철철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강진의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류의 소리는 마냥 희망차기만 하다.
 

 사실 겨울은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죽은 계절이다. 그래서 월출산 역시 이따금씩 흰 눈을 뒤집어 쓰고 있거나 거대한 암벽을 알몸처럼 내보인 채 동면에 빠지고 만다. 비단 월출산 뿐 아니라 모든 산, 모든 들, 모든 산하가 얼어붙은 듯 조용히 엎드리고 만다.

  그러나 엄동과 난동으로 우리의 생활을 고달프게 했던 겨울이 후월후월 떠나가고, 엊그제 내린 봄비를 시작으로 봄이 저벅저벅 걸어올때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소리가 바로 금릉 경포대의 계곡물 소리인 것이다.

  강진의 봄은 유독 다른 고장보다 봄만이 갖는 생명의 경이감을 더욱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경포대의 계곡물 소리가 얼음장을 녹이며 다시 들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경포대 앞 설록차 밭이기 때문이다. 어느 틈에 살랑살랑 다가온 봄이 일망무제로 펼쳐진 설록차 밭에 가 닿으면 연초록 잎새의 물굽이가 마치 바다의 천만개 이랑처럼 생명을 일렁거린다.

  그런데 강진의 봄은 동백꽃보다 또다른 봄을 느끼게 한다. 설한풍을 굳굳이 견뎌내며 늘 푸른 잎을 겨우내 지니고 있던 동백나무가 한 점 선혈처럼 붉은 동백꽃을 머금은 모습은 그야말로 생명과 자연의 신비스러움 그것이다.

  우리 강진은 유난히 동백나무가 많은 고을이다. 경포대의 동백도 그렇지만 다산초당과 백련사 동백숲은 너무 유명해서 많은 시인들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초의선사와 함께 하룻밤을 묵고 갔다던 성전 백운동 계곡의 동백숲 또한 강진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이제 그런 동백숲이 숨박꼭질 하듯 붉은 동백꽃을 두런두런 피우기 시작하는 강진은 어느 고을 보다 봄 소식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봄의 문턱에서 어쩌면 오는 봄조차 싫은만큼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것 같다. 이력서를 골백번 내고도 취업이 되지 않아 마냥 놀고만 있는 젊은 실업자들, 허리가 활처럼 휘어져 농사는커녕 텃밭조차 부려먹기 힘들만큼 골골거리는 노인네들, 그보다도 불투명한 농촌의 앞날에 걱정과 한숨 짖는 농부들, 장사가 예전처럼 되지 않아 그저 가게문만 지키고 있는 장사꾼들…… 이래저래 고통과 늪 속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띄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신발을 고쳐 신는 희망을 가져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도 비켜설 곳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냥 주저앉기에는 이 봄날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산천이 잠에서 깨어나 이제 무성한 신록의 계절을 준비하느라 꿈틀거리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좌절만 끌어안고 우두망찰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취업이 안 되는 젊은이들도 생각부터 바꾸면 될 것 같다. 취업에는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에 입학하면 100%의 취업은 물론 학비 전액이 국비로 지원될 뿐 아니라 20만원의 수당까지 주므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정보를 통해 자신있게 나아갈 길을 정한다면 그저 어렵기만 하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농사만도 그렇다. 요 며칠 전 일본에서 온 여류농부가 강의한 내용을 들었는데 자신은 <냄새없는 퇴비>를 개발하여 1회 화분용으로 판매하였더니 아주 잘 팔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유기농법을 통해 차별화 된 농업 상품만이 농부가 살 길이 아닌가 싶다. 어느 농촌 지역에서는 국화가 또 대량 일본으로 수출된다는 낭보를 듣고 결코 우리 농촌이 마냥 한숨만 쉴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다.

  장사도 다 안 되는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님이 미어터져 주말쯤이면 예약을 해야만 하는 식당도 있다. 그런 집은 뭔가 달라도 다른 점이 있다. 이렇듯 봄철이 되면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가면서 지방 토종음식이나 맛자랑을 하는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음식을 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특색을 연구하다 보면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봄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 봄에 뿌리는 씨앗에 따라 정직한 흙은 그 열매를 배출하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열매를 가지고 돌아 온다”라는 약속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지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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