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 婦 (부부)


   
 
지아비/사내  부(夫)

'지아비 부(夫)'자는 큰 대(大)와 일(一)로 만든 글자다. 대(大)자는 당당하게 서 있는 사내의 상형자이다. 일(一)은 동곳이다. 동곳은 남자가 상투를 틀고 풀어지지 않도록 머리에 꽂는 물건이다. 여자들이 사용했던 비녀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남자들도 일제강점기 단발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이 동곳을 사용했다. 갑골문이 약 3,500백 년 전의 문자이니 아마도 남자들의 상투 트는 풍습은 그 보다는 길지 않았을까싶다. 갑골문을 사용했던 상(은)나라의 뒤를 이은 주나라도 남자들이 15세가 되면 속발지년(束髮之年), 즉 머리를 묶는 나이라고 해서 상투를 틀고 동곳을 꽂았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부(夫)는 다 큰 사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왕이나 사대부가 자기 아내를 지칭할 때 부인(夫人)이라고 했다.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를 때도 부인(夫人)이라고 한다.

   
 
아내/며느리  부(婦)

'아내 부(婦)'자는 여(女)와 '빗자루 추()'로 만든 글자다. 부(婦)자에 대한 갑골문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청소 도구인 빗자루를 들고 있는 여인으로 집안일을 하는 부인 또는 며느리라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여인이 들고 있는 것은 빗자루가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신성한 소품으로 본다. 그것은 제사를 주관하는 자만이 들 수 있는 물건이다. 따라서 부(婦)는 권력이 있고 신분이 높은 여인을 뜻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첫 번째가 대체로 남성 학자들의 해석이라면 두 번째는 여성 학자의 해석이다. 상나라 22대의 왕 '무정'에게 사랑하는 왕비 '부호'가 있었다. 그녀의 권력은 막강했다. 1만여명이 넘는 병사를 거느리는 총사령관이기도 했지만 제사를 직접 주재하는 신녀(神女)이기도 했다. 그녀는 한마디로 지체 높은 부(婦)였던 것이다.

 

陰 陽 (음양)


   
 
그늘/흐릴  음(陰)

'그늘 음(陰)'자의 갑골문은 '이제 금(今)'과 '새 추()'로 구성되어있다. 금(今)은 청동기로 만든 종을 상형한 글자이다. 학자에 따라 금(今)이 사용된 이유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글꼴의 발음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씨가 흐린 날 새들의 울음소리가 종소리와 흡사한데서 '흐림'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재의 글꼴 음(陰)과 비교해보면, 금(今)은 살아남았지만 추()는 운(云)에게 자리를 내주고 '언덕'을 의미하는 '(부)'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말할 운(云)'자는 본래 구름을 상형한 글자로서 음(陰)자가 흐린 날씨와 관계있음을 보여준다. '언덕 부()'는 햇빛을 차단하는 높은 언덕으로 음(陰)이 '그늘지고 어둡다'는 의미를 함축하게 해준다. 그림에서 걸어 나온 글꼴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뜻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볕/맑을  양(陽)

'볕 양(陽)'자는 태양이 제단(祭壇)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글자다. 왼쪽은 높은 제단을 오르기 위한 계단이다. 현재의 글꼴 양(陽)과 비교해 보아도 거의 닮은꼴이다. 그림을 한두 번 그려보고 사진을 찍듯 그 이미지를 마음속에 잘 담으면 양(陽)자를 몰랐던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동양문화에서 음양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인간과 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음양(陰陽)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없다. 특히 주자학에서의 음양은 기(氣)에서 분화된 두 실체로 만물을 생성시키는 종자(種子) 또는 재료(材料)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음양론에 날선 비판을 가한다. 음(陰)과 양(陽)은 단지 밝고 어두움, 맑고 탁함, 가볍고 무거움 등의 상대적 상태나 성질을 표현하는 상징어일 뿐 사물의 근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산에게 있어 만물의 근원은 따로 있다.

 

輿 望 (여망)


   
 
수레/땅  여(輿)

갑골문에서 보듯 '수레 여(輿)'는 '네 개의 손'과 '가마(손수레)'를 그려 만든 글자다. 고대한자는 픽토그램에 가깝다. 픽토그램은 의미를 시각화한 그림문자 또는 상징문자이다. 흔히 보는 금연 표시판, 교통표지판, 남녀화장실 표시 등이 그것이다. 긴 설명 없어도 사람들은 그것이 보는 순간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한자 역시 의미를 담은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다시 한 번 여(輿)의 그림문자로 눈길을 돌려 보자. 네 개의 손은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의 가마꾼을 상징한다. 가마는 최소 두 사람 이상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아마도 여(輿)가 품고 있는 '여럿'이란 뜻은 여기에서 나왔지 싶다. 수레가 사람을 태우듯 땅은 모든 만물을 태운다. 大東輿地圖(대동여지도)나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에 쓰이는 輿(여)는 바로 '땅'을 의미하는 여(輿)이다. 

   
갑골문                       금문
바라보다/바라다  망(望)

'바랄 望(망)'의 원형인 갑골문은 서있는 사람의 형상에 유난히 눈을 크게 그렸다.  이 글자를 최초로 고안한 고대인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멀리 바라보다'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고민하면서 디자인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큰 눈이 포인트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달(月)을 추가 했다. 비로소 바라보는 대상을 달로 정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예부터 달은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로 우리 곁에 있어왔다. 타향살이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나 이별한 임을 잊지 못해 애달파하는 작품에는 달이 있어야 그 느낌이 산다. 망(望)이 품고 있는 여러 의미 가운데 '그리워하다', '기다리다'는 아마도 인간과 달의 오랜 정서적 교감에서 여물어져 나온 듯싶다. 輿望(여망)은 '많은 사람의 바람이고 기대(期待)'이다. 사회의 여망(輿望)을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공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