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7>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7>
  • 강진신문
  • 승인 2016.02.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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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강진군녹향월촌인성학교 훈장>


昏亂 (혼란)


어두울  혼(昏)

'어두울 혼(昏)'은 氏(씨)와 日(일)의 합체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氏의 자리는 人(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人)이 씨(氏)로 치환되었다. 해(日)가 사람의 발아래 놓였다.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음을 나타낸다. 혼(昏')은 '어리석다' '정신이 흐리다' 등 추상적인 뜻도 있는데 아마도 물리적 시간의 어두움이 실마리가 된 듯 싶다. 주로 혼미(昏迷), 혼절(昏絶), 혼수상태(昏睡狀態)등에 쓴다. 유명한 사자성어로 효(孝)의 구체적 행위를 나타내는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이 있다. 혼(昏)에 女(여)를 더하면 '혼인할 혼(婚)'자가 된다. 옛날에는 낮 시간이 아닌 저녁 무렵에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婚禮)를 올렸다고 한다. 왜 저녁에 혼례를 치렀을까. 여자는 음(陰)이고 저녁시간 또한 음(陰)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있다.

 

어지러울  란(亂)

'어지러울 란(亂)'의 고대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위와 아래는 손이다. 현재의 글꼴 '손톱 조(爫)'와 '또 우(又)'는 손을 의미한다. 가운데 그림은 실패와 거기에 감겨있는 실이다. 오른 쪽은 사람이다. 사람이 손으로 실을 다루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亂(란)자를 이해하려면 얽히고설킨 실을 생각하면 된다. 난무(亂舞), 난동(亂動), 난세(亂世), 난맥(亂脈), 난리(亂離), 난립(亂立), 문란(紊亂), 소란(騷亂), 요란(搖亂), 분란(紛亂), 음란(淫亂)등 그 쓰임은 다양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이 亂(란)자가 들어가는 말들이 갈수록 난무(亂舞)하고 있다는 점이다. 昏亂(혼란)은 '마음이나 정신이 흐리고 어지러운 경우'에 쓴다. 반면에 혼란(混亂)은 '뒤죽박죽되어 질서가 없을 때' 쓴다.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경우다. 작금의 정치적 혼란(混亂)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혼란(昏亂)하게 한다.

 

直面 (직면)


곧을  직(直)

'곧을 직(直)'의 갑골문은 사람의 눈(目)과 그 눈에서 시작 되는 수직선이 구성요소다. 수직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도로를 놓는데 쓰는 측량막대로 본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금문에서 찾는다. 지금의 직(直)의 글꼴과 비슷한 금문을 보면 수직선 중간쯤에 점 하나가 찍혀있다. 이 점이 바로 수평을 잡아주는 눈금이라고 한다. 'ㄴ'자 모양은 당연히 도로의 표시라는 것이다. 글자의 발전과정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앞을 똑바로 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왠지 마음이 간다. 직(直)이 품고 있는 '곧음'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곧음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곧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 직(直자)자가 동양문화의 기본가치인 덕(德, 悳)의 개념을 형성하는데 한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얼굴  면(面)

사람의 '얼굴'을 의미하는 면(面)자는 눈과 얼굴의 윤관을 그려 만들었다. 얼굴에는 코도 있고 입도 있는데 하필이면 눈만을 그려 표현했을까. 수천 년 전의 인류도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얼굴은 '얼의 꼴'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민족의 얼이라고 말하듯이 얼은 곧 정신이고 영혼이다. 정신이나 영혼, 곧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영 볼 수없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듯 사람은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본다. 눈물이 맺히듯 한 사람의 마음이 그 눈에 맺혀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가지 새겨야 할 일은 타인의 마음을 왜곡 없이 보려면 색안(色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색칠된 눈이 바로 색안(色眼)이다.

 

尊貴 (존귀)


높을  존(尊)

'높을 존(尊)'은 '술 단지(酉 닭 유)'를 들고 있는 '두 손'으로 만든 글자다. 흔히 '유(酉)'를 12지지 중 '닭'을 뜻하는 한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글자는 술을 담는 그릇, 즉 술병 또는 술 단지에서 온 글자다. 이 갑골그림의 특징은 두 손을 술 단지의 위가 아닌 아래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림은 눈으로 보자마자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느낌의 매체'라고 한다. 우리가 尊(존)자의 갑골문에서 '높다' '높이다' '우러러보다'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음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글자를 최초로 만들기 시작한 고대인도 그림이 인간심리에 미치는 힘을 간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글꼴 尊(존)은 '우두머리 추(酋)'와 '마디 촌(寸)'의 조합이다. 酋(추)는 본래 숙성기간이 긴 '묵은 술'을 뜻 한다. 위의 八(팔)은 술 향기를 상징한다. 한마디로 값이 나가는 귀한 술이다. 한자에서 寸(촌)은 손을 나타낸다.

 

귀할  귀(貴)

'귀할 귀(貴)'는 두 손과 흙무더기의 조합이다. 두 손의 위치 때문일까 그 느낌이 존(尊)자와는 사뭇 다르다. 그림에서 구도가 주는 힘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게슈탈트 이론이 있다. 게슈탈트(Gestalt)는 독일어로 전체로서의 형태, 모양 등을 의미하는데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며 인간은 어떤 대상을 개별적 부분의 조합이 아닌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쳤다. 손과 흙이라는 단순한 소재로 조합된 귀(貴)의 글꼴을 보고 당시의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귀하다'는 의미로 공감(共感)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귀하다'로 공감하게 하는 어떤 공통된 기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글자의 창작자는 이 점을 십분 활용했다. 고대의 천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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