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5>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5>
  • 강진신문
  • 승인 2015.12.1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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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 강진군녹향월촌인성학교 훈장>


妥協 타협

온당/마땅/편안할  타(妥)
'마땅하다 타(妥)'는 '손톱 조(爪)'와 '여자 여(女)'로 구성된 글자다. 갑골문에서 '손톱 조(爪, 爫)'는 대개 손의 의미한다. 예를 들면 쟁(爭), 채(采), 위(爲), 부(孚)등이 그것인데 모두가 妥(타)처럼 손을 그려 만든 글자들이다.

갑골문을 디자인된 작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손의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의 위치로 보아 여자 자신의 손이 아니고 타인의 손임을 짐작할 수 있다. 타(妥)에 대한 해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여자위에 있는 손은 어떤 손일까. 일부 학자들은 고대사회의 풍속인 약탈혼(掠奪婚)과 연결시킨다.

이때의 손은 여자를 보쌈해가는 손이 된다. 또 다른 해석은 포로로 잡혀온 여인을 위로하고 있는 남자의 손이라는 것이다. 타(妥)가 품고 있는 '편안하다'는 뜻을 반영한 해석이라고 본다. 妥(타)는 포로의 신분으로 불안한 삶을 살다가 서서히 편안함을 되찾아가는 한 여인의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화합/협력할  협(協)
'화합할 협(協)'은 '열 십(十)'과 세 개의 '힘 력(力)'으로 만든 글자다. 갑골문에 대해 위는 3개의 외날 쟁기이며 아래는 농지(農地)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일부학자는 쟁기가 아닌 가래로 수로(水路)를 건설하고 있는 그림으로 본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삼(三)이라는 숫자다. 사실 숫자 삼(三)은 단순히 삼(三)이 아니라 여럿 또는 많음을, 더 나아가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서 갑골문자에 담으려했던 메시지는 다수가 협력으로 일궈놓은 화합이 아닐까싶다.
 
최근 인성교육에 협력(協力)이라는 개념이 재조명되고 있다. 협력은 개인 중심의 체험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또한 협력은 의미상 협동(協同)과 비슷하나 추구하는 바는 상당히 다르다. 협동은 자칫 그 안에서 소외당하는 소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협력은 각자가 가진 역량의 참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소수의 소외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建立 건립

세울  건(建)
'세울 건(建)은 '길게 걸을 인(廴)'과 '붓 율(聿)'의 합체자다. 갑골문을 보면 廴(인)의 자리는 '길'이나 '가다'를 뜻하는 '행(行)'의 생략형인 '걸을 척(彳)'이었고, 율(聿)자는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그림에서 시작된 글자임을 보여준다.

글씨를 쓸 때 붓의 움직임 즉, 붓의 첫 획에서 마지막 획까지의 과정은 사람으로 치면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걸어가는 여정과도 같다. 또한 붓으로 글씨를 쓸 때는 몸의 자세, 특히 손의 자세가 중요하다. 손의 자세가 바르면 붓도 바로 서고 글씨 역시 바르게 써질 수밖에 없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건축과도 같다.
 
고대인이 최초로 '세우다'는 뜻을 품은 글자를 고안하면서 '세움'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수많은 물상이 있음에도 어찌하여 굳이 '붓을 잡고 있는 손'과 '척(彳)'을 선택했을까. 그 물음의 세계를 걸어 다니다가 가끔 밤잠을 설칠 때가 있다.

설 립/입(立)
'서다 립(立)'은 땅 위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당당하고 힘차 보인다. 마치 의존(依存)에서 자립(自立)으로 그 경계선을 막 넘은 사회초년생을 보는 듯하다. 윗부분은 큰 대(大)이고 그 아래의 가로획(一)은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을 나타낸다.
 
그 땅은 단순한 물리적인 땅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표현한 부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立(립)은 입석(立席), 기립(起立), 직립(直立)등의 쓰임처럼 구체적으로 서있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독립(獨立), 자립(自立), 존립(存立), 立志(입지), 立身揚名(입신양명), 三十而立(삼십이립), 立春大吉(입춘대길), 無信不立(무신불립)등의 쓰임이 그 예이다. 建立(건립)도 '건물 등 어떤 구조물의 세움'과 '어떤 기관이나 조직체 등의 세움'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歷史 역사

지날  역/력(歷)
'지날 역(歷)'의 갑골문을 보면 두 포기의 벼(禾)와 발바닥(止)을 그렸다. 현재의 글꼴에서 보이는 '언덕 엄(厂)'은 나중에 들어온 자소다. 일부 학자는 고대 상나라 지역에는 벼도 밭에서 재배되었다. 그칠 지(止)는 발바닥을 상형한 글자로 본래 뜻은 '걷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歷)은 벼 사이를 지나감을 나타내는 글자로 '지나다'는 뜻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있겠다. 씨를 뿌려 쌀 한 톨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88번의 손길과 180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부지런한 발과 관련이 깊다. 갑골문에서 보듯 발을 벼를 향하도록 그려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역(歷)은 단순히 벼 사이를 지나가는 차원을 넘어 시비, 파종, 김매기, 수확으로 이어지는 농사의 전 과정을 되짚어보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이러한 의미의 확대가 곧 역사의 개념으로 발전되었음이다.

사기  사(史)
'사기 사(史)'의 갑골문을 보자. 손은 분명히 알 수 있으나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윗부분이 장식된 붓을 들고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견해가 있다. 장식된 붓을 들었다는 것은 지위가 제법 높았으며 기록했던 내용은 국가중대사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처음의 사(史)는 아마도 기록하는 자를 나타내는 '사관(史官)'을 의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를 우리는 왜 공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의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과거와의 대화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인간적인 성숙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미래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대화하는 과거는 역사가(歷史家)나 기록한 자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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