極盡 극진


나무 목(木)    빠를/심할 극(亟)

   
 
   
 
‘극진할 극(極)’은 나무 목(木)과 빠를 극(亟)의 합체자다. ‘빠를 극(亟)’의 자소는 두 이(二)와 사람 인(人)과 입 구(口), 그리고 몽둥이를 들고 있는 손(攴)이다. 등 뒤에서 내리치는 몽둥이를 맞고 울부짖는 노예나 전쟁포로의 극(亟)한 상황을 묘사했다고 한다. 다른 주장도 있다. 얼마나 좋으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만큼 땅만큼 좋다’고 말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극(亟)자는 다산 선생의 사의재(四宜齋)에도 등장한다. 마음, 용모, 말, 행동의 마지막 구절 尙亟澄之(상극징지), 尙亟凝之(상극응지), 尙亟止之(상극지지), 尙亟遲之(상극지지)가 그것이다.
  한옥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기둥과 기둥사이를 가로지른 우람한 나무가 보인다. 이 나무가 바로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 곧 극(極)이다. 極(극)은 ‘대들보’외에 ‘하늘’, ‘정점’, ‘남북의 두 끝’, ‘극진하다’, ‘다하다’등의 뜻을 거느리고 있다.

다할 진(盡)

   
 
‘다할 진(盡)’의 갑골문은 붓과 손과 그릇(皿)의 조합이다. 붓을 들고 있는 손이 ‘붓 율(聿)’이 되고 여기에 ‘걸을 척(彳)’을 더하면 법률 률(律)이, ‘대나무 죽(竹)’을 더하면 붓 필(筆)이 된다. ‘다하다’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힘이 다했다’는 말처럼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기진맥진(氣盡脈盡), 매진(賣盡), 소진(消盡), 탕진(蕩盡)등의 쓰임이 그것이다. 만약 고대인이 이 의미를 담으려 했다면 큰 그릇 속의 무엇을 깨끗이 씻어 없애는 작업으로 갑골문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힘을 다했다’는 말처럼 어떤 일의 과정에 최선을 다했음을 말한다. 만약 고대인이 이 의미를 담으려 했다면 일하는 자세에 초점을 두고 해석해야할 것이다. 극진(極盡), 진심(盡心),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등에 등장하는 진(盡)이 바로 그것이다. 갑골문 이해에 역추적이 가능한 것은 시대만 다를 뿐 갑골문도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利益 이익


이롭다/날카롭다 이/리(利)

   
 
‘이로울 리(利)’는 ‘벼 화(禾)’와 ‘칼 도(刂)’의 합체자이다. 갑골문은 낫 같은 도구로 벼를 베고 있는 모습이다. 벼를 벨 때 떨어지는 이삭까지도 놓치지 않았다(가운데 두 점). 사실 利(리)는 갑골문을 썼던 상나라 때에는 주로 농지(農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후 곡식의 수확으로 해석되면서 ‘이롭다’ ‘이득을 얻다’등의 뜻이 여물어져 나왔다. ‘예리(銳利)하다’는 쓰임처럼 利(리)는 ‘날카롭다’는 뜻도 품고 있는데 아마도 벼를 베는 도구의 날카로움에서 파생된 듯하다.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見利思義(견리사의)는 ‘눈앞에 이익(利益)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義理)에 합당(合當)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신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닐까 무시하다가 날카로운 칼날에 베이고서야 후회해본들 아무소용이 없다. 왜 리(利)에 칼을 달아두었겠는가.

더하다/넘치다 익(益)

   
 
‘더할 익(益)’은 위는 물 수(水)다. 水(수)를 옆으로 눕혔다. 아래는 ‘그릇 명(皿)’이다. 이 글자의 기원인 갑골문은 두 개의 질그릇과 물방울을 그렸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림을 보면, 하나의 질그릇에 담긴 물이 다른 질그릇으로 옮겨가는 바로 그 순간의 그림임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왜 옮기는 것일까 넘치기 때문이다. 益(익)이 거느리는 많은 뜻 가운데 ‘넘치다’가 본래 뜻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질그릇에 담긴 물이 또 하나의 질그릇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린 갑골문 益(익)을 21세기 버전으로 해석해 본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益(익)은 나에게 오기 전에 다른 이들이 이루어놓은 그 무엇이다. 그것이 흘러넘쳐 비로소 나의 그릇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익을 보면 먼저 다른 이들의 수고를 생각해야 함이 옳은(義)일이다. 見利思義(견리사의)의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祭典 제전


제사 제(祭)

   
 
   
 
‘제사 제(祭)’는 고깃덩이(月 육달 월 : 고기나 살을 뜻함)를 손(又 또 우 : 손을 뜻함)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제단을 뜻하는 示(보일 시)는 나중에 첨가되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고대인들이 하늘이나 조상에게 제(祭)를 올리는 장면이 영화를 보듯 눈에 선하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갑골문은 적어도 1000여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숙성된 글자라고 한다. 비유하면 밥이 되기 전에 뜸 들이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따르면, 100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제사’를 뜻하는 여러 문자가 시험적으로 유통되어오다가 마침내 갑골문 祭(제)의 글꼴로 수렴되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치면, 제사라는 의식은 문자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미 고대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다음세대로 전수되는 문화코드였음을 추정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책 책(冊)    법/책/의식 전(典)

   
 
   
 
‘법 전(典)’은 책(冊)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책(冊)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 대용으로 썼던 끈으로 엮어놓은 죽간(竹簡)을 그려 놓은 글자다. 또한 지금의 글꼴 典(전)의 아랫부분 책상(丌)모양도 본래 두 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위·촉·오 삼국시대에 오나라 장수 여몽(呂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오의 황제인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手不釋卷]”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권한다. 그 뒤 손권의 신하 노숙(魯肅)이 옛 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박식함에 놀라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手不釋卷(수불석권)과 刮目相對(괄목상대)는 이런 고사(故事)를 배경으로 해서 나온 성어(成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