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 강진군녹향월촌인성학교 훈장>
極盡 극진
나무 목(木) 빠를/심할 극(亟)
한옥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기둥과 기둥사이를 가로지른 우람한 나무가 보인다. 이 나무가 바로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 곧 극(極)이다. 極(극)은 ‘대들보’외에 ‘하늘’, ‘정점’, ‘남북의 두 끝’, ‘극진하다’, ‘다하다’등의 뜻을 거느리고 있다.
다할 진(盡)
‘다할 진(盡)’의 갑골문은 붓과 손과 그릇(皿)의 조합이다. 붓을 들고 있는 손이 ‘붓 율(聿)’이 되고 여기에 ‘걸을 척(彳)’을 더하면 법률 률(律)이, ‘대나무 죽(竹)’을 더하면 붓 필(筆)이 된다. ‘다하다’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힘이 다했다’는 말처럼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기진맥진(氣盡脈盡), 매진(賣盡), 소진(消盡), 탕진(蕩盡)등의 쓰임이 그것이다. 만약 고대인이 이 의미를 담으려 했다면 큰 그릇 속의 무엇을 깨끗이 씻어 없애는 작업으로 갑골문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힘을 다했다’는 말처럼 어떤 일의 과정에 최선을 다했음을 말한다. 만약 고대인이 이 의미를 담으려 했다면 일하는 자세에 초점을 두고 해석해야할 것이다. 극진(極盡), 진심(盡心),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등에 등장하는 진(盡)이 바로 그것이다. 갑골문 이해에 역추적이 가능한 것은 시대만 다를 뿐 갑골문도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利益 이익
이롭다/날카롭다 이/리(利)
더하다/넘치다 익(益)
‘더할 익(益)’은 위는 물 수(水)다. 水(수)를 옆으로 눕혔다. 아래는 ‘그릇 명(皿)’이다. 이 글자의 기원인 갑골문은 두 개의 질그릇과 물방울을 그렸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림을 보면, 하나의 질그릇에 담긴 물이 다른 질그릇으로 옮겨가는 바로 그 순간의 그림임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왜 옮기는 것일까 넘치기 때문이다. 益(익)이 거느리는 많은 뜻 가운데 ‘넘치다’가 본래 뜻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하나의 질그릇에 담긴 물이 또 하나의 질그릇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린 갑골문 益(익)을 21세기 버전으로 해석해 본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益(익)은 나에게 오기 전에 다른 이들이 이루어놓은 그 무엇이다. 그것이 흘러넘쳐 비로소 나의 그릇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익을 보면 먼저 다른 이들의 수고를 생각해야 함이 옳은(義)일이다. 見利思義(견리사의)의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祭典 제전
제사 제(祭)
책 책(冊) 법/책/의식 전(典)
‘법 전(典)’은 책(冊)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책(冊)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 대용으로 썼던 끈으로 엮어놓은 죽간(竹簡)을 그려 놓은 글자다. 또한 지금의 글꼴 典(전)의 아랫부분 책상(丌)모양도 본래 두 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위·촉·오 삼국시대에 오나라 장수 여몽(呂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오의 황제인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手不釋卷]”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권한다. 그 뒤 손권의 신하 노숙(魯肅)이 옛 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박식함에 놀라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手不釋卷(수불석권)과 刮目相對(괄목상대)는 이런 고사(故事)를 배경으로 해서 나온 성어(成語)이다.저작권자 © 강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