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2>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12>
  • 강진신문
  • 승인 2015.10.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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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 강진군녹향월촌인성학교 훈장>

逆 風역 풍

거스를 역(屰) / 거스를 역(逆)

 

 

 

 

 

'거스를 역(逆)'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거스르다 역(屰)'의 합체자다. '거슬러서 간다'는 뜻이다. 착(辶)의 윗부분 두 점은 '가다'를 뜻하는 '척(彳)'이며, 아랫부분은 '발바닥'을 상형한 '지(止)'이다. 따라서 착(辶)이 붙는 한자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맨 앞의 최초의 글자 '역(屰)'은 갑골문에서 보듯 거꾸로 서있는 사람이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비보이(b-boy)를 연상케 한다.
역(逆)은 크게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하나는 '거스르다(어기다, 어긋나다, 거꾸로 하다)'이다, 역풍(逆風), 역전(逆轉), 역행(逆行), 역린(逆鱗), 역설(逆說)등에 쓰인다. 다른 하나는 '맞이하다(마중하다)'이다. '역려과객(逆旅過客)'은 판소리 단가의 하나다. "역려 같은 천지간의 과객 인생들아, 백년인들 그 얼마뇨?"라는 사설로 시작한다. 역려(逆旅)란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하룻밤 묵다 떠나는 '여관'을 지칭한다.

바람 풍(風)

'바람(風)'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시각적 이미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작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추상이 보이지 않듯이 바람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바람은 흔적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준다. 우리는 보드라운 살갗에서, 나뭇잎에서, 거친 파도위에서 바람을 본다. 그러면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고대인은 어디에서 바람을 보았을까. 그의 눈길이 가서 꽂힌 곳은 다름 아닌 새의 깃털이었다. 생각해보니 깃털은 바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 순간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갑골문은 봉황(鳳)을 뜻하기도 했다. 또 기이하게도 이 그림 속에는 'ㅍ'음의 발음부호가 있다고 한다. 맨 오른 쪽에 배치된 그림이 그것이다.

癡 呆 치 매

병들어 기댈 녁(疒)   의심할 의(疑)

 

 

 

 

'어리석을 치(癡)'는 '병들어 기댈 녁(疒)'과 '의심할 의(疑)'의 조합이다. 疒(녁)의 고대글자는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모습을 그렸다. 따라서 한자에 疒(녁)이 보이면 마음과 몸의 크고 작은 질병(疾病)과 관련 있는 글자로 보면 된다.
疑(의)의 갑골문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과 길(行)을 그려 만들었다. 길을 가다가 고개를 돌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묻고 있는 모습이다. 갈림길에 서서 어느 길이 맞을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다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이 그림의 원작자인 고대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핵심은 바로 '의심하는 인간'이다. 疒(녁)과 疑(의)가 합쳐진 癡(치)는 글자 그대로 풀면 '의심 병'이다. 의심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또 癡(치)를 疒(녁)과 知(알 지)를 합해 痴(치)로도 줄여 쓰는데 '병(疒)든 지능(知能)'이란 뜻이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치매(癡 )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어리석을 매(呆)

呆(매)는 갓난아기의 모습을 보고 만든 글자라고 한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하다. 복잡한 세상일을 알 턱이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해서 呆(매)에'어리석다' '미련하다'의 뜻이 여물어져 나왔다.
癡呆(치매)는 정상적인 사람이 대뇌신경세포의 손상으로 인지능력이나 기억능력을 지속적으로 상실해가는 병을 말한다. 치매의 증상 중 하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의식(自意識)이 있음이다. 자의식이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고 또 그것을 반추해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의 역사가 나의 의식 속에서 점점 지워져가고 마침내 거울 속의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와의 대화가 단절되는 사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 무서운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시간이 갈수록 환자의 수는 증가추세이며, 현재까지도 불치병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한다.

妻 福 처 복

아내 처(妻)

'아내 처(妻)'는 긴 머리를 가진 여인과 손으로 디자인한 글자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손이다. 누구의 손이냐에 따라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달라진다. 먼저 그림 속 여인의 손으로 생각해보자. 외출하기 전 머리매무새를 다듬는 평범한 여염집 아내다. 다음은 시녀의 손이라고 생각해보자. 대가 집 안방마님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그 다음은 지아비의 손으로 생각해보자.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리따운 아내로 변신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남자의 손으로 생각해보자. 고대사회의 결혼풍습이었던 약탈혼(掠奪婚)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견해만은 쉽게 수용할 수 없다. 아무리 봐도 긴 머리 고운자태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흐트러진 여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를 소재로 하는 속담 가운데 '열 자식 한 처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아내와 함께 한 삶을 추체험하면서 깨달은 모든 지아비들의 집대성한 결론이 아니겠는가 싶다.

복 복(福)

'복 복(福)'의 구성요소는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이다. 示(시)는 본래 제단(祭壇)을 상형한 글자다. 맨 위의 가로획(一)은 제단위에 잘 차려놓은 제물(祭物)을 상징한다. 示(시)가 '신(神)'이라는 뜻을 품은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畐(복)은 고대글자에서 보듯 두 손으로 술 단지를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학자에 따라 제단위에 술을 올리는 장면이다. 또는 음복(飮福)하고 있는 장면이다 등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아무튼 모든 인간이 소망하는 복(福)을 제의(祭儀)에서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무언가를 받들고 있는 두 손이 주는 메타(meta)언어다. 나는 그것을 '경(敬)'으로 표현하고 싶다. 敬(경)은 '사람과 일을 지극히 공손하고 경건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복 받는 비결, 바로 그 비결이 두 손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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