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우진과 함께하는 갑골문자 이야기<8>
[특집] 김우진과 함께하는 갑골문자 이야기<8>
  • 강진신문
  • 승인 2015.06.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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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_ 강진군녹향월촌인성학교 훈장

新 聞 (신문)

새로울  신(新)

'새로울 신(新)'의 왼쪽 그림을 대부분 나무로 보지만, 경형을 행할 때 사용했던 '끌'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경을 치다'라는 말이 있듯이, 경형은 '끌'로 이마에 상처를 내고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는 형벌이다. 이때 사용했던 '끌'을 상형한 글자가 바로 신(辛)이다. 라면이름에도 등장하는 신(辛)의 뜻 '맵다', '독하다'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신(新)의 오른쪽 그림은 '도끼'다. 도끼의 용도는 찍어내고 잘라내는 것이다.

'새롭다'라는 뜻글자를 만들면서 살벌하기 그지없는 끌(辛)과 도끼(斤)로 디자인한 고대인들의 속뜻이 궁금하다. 오늘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제의 고루(固陋)한 나와는 과감히 결별해야한다. 하지만 이마에 새겨진 죄명처럼 이미 고착화된 생각과 습관을 떼어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프지만 찍어내고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新(신)자를 창조하면서 담으려했던 고대인들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들을/소식  문(聞)

'들을 문(聞)'은 門(문)과 귀(耳)의 합체자이다. 갑골문은 귀와 입과 손을 강조한 사람의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귀를 크게 그려 넣었다. 무언가 충격적(衝擊的)인 '소식'을 들었을 때 경악(驚愕)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남의 말을 잘 들으려면 자기 입부터 막아야 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경청(傾聽)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먼저여서 그랬을까. 이후 사람 대신 '문(門:발음부호 역할도 한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핵심인 '귀(耳)'는 살아남아 오늘날의 '문(聞)'모양이 되었다.

옷에만 '빨간 단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빨간 단추'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있는 어떤 폭발지점을 말한다. 따라서 말은 듣는 사람의 빨간 단추를 의식하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가까울수록 그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부사이가 더 그런 것 같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빨간 단추부터 알아볼 일이다.

 

要 素 (요소)

요긴할  요(要)

'요긴할 요(要)'의 갑골문을 보면 한 여인의 허리춤을 두 손이 감싸고 있다. 이 두 손을 여인 자신의 손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남자의 손으로 보기도 한다. 두 손이 누구의 손인가는 그리 중요(重要)해 보이지 않는다. 주목해야할 것은 두 손의 위치가 허리춤에 있다는 것이다. 해서 要(요)자의 처음 뜻은 '허리'였다. 허리는 인체의 중심으로 집에 비유하면 대들보와 같다.

따라서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대들보에 문제가 생긴 집과 같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축구에서도 미드필드, 즉 허리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만큼 허리는 중요하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사람들도 점차 要(요)를 '허리'보다는 '중요(重要)하다' '요긴하다' 뜻으로 쓰게 된다. 인간의 창조행위는 끝이 없다. '허리'를 지시하는 또 하나 글자를 만들어낸다. 要(요)에 月(육달  월)을 더한 '허리 요(腰)'자가 그것이다. 이때의 月(월)은 몸체를 의미한다.

희다/본디  소(素)

금문
소전
금문의 '희다 素(소)'는 '실 뭉치'와 '두 손'의 조합이다. 소전에서 두 손이 생략되어 오늘날의 素(소)와 비슷하게 되었다. 두 손으로 실을 잡고 양 갈래로 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실 뭉치'에 대해 목화에서 갓 빼낸 '가공하기 전의 실'이라는 주장과 아직 '염색하지 않은 원단(原緞)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가공하기 전 실' 또는 '원단'은 素(소)의 본래 뜻인 '희다'와 직선적으로 연결해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또 그것들은 자연 상태에 가깝다. 해서 '본디' '바탕' '처음' '質朴(질박)하다' 등 원초적 뉘앙스가 풍기는 의미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데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要素(요소)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성립하거나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나 성분'을 말한다. 한자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핵심적 要素(요소)중 하나를 꼽으라면 글자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아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愛 鄕 (애향)

사랑  애(愛)

'사랑 애(愛)'의 갑골문은 사람 그 자체다. 윗부분은 '입'이고, 가운데 둥근 원은 '가슴'이다. 가슴 속에 심장을 본뜬 '마음 心'을 넣었다. 아랫부분은 '천천히 걸을 쇠(   )'이다. 입을 벌린 채 떨리는 심장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걸어가는 있는 모습이다.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다. 등 해석이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전자의 주제가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라면, 후자는 남을 위하는 이타적 사랑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지 사랑은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은 '열정(熱情)', '친밀감(親密感)', '헌신(獻身)'이라는 삼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일명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랑 애(愛)'자의 갑골그림에서 열정, 친밀감, 헌신이라는 사랑의 삼요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 놀랍다.

시골/고향  향(鄕)

'시골 향(鄕)'은 정(情)이 담긴 글자다. 갑골문은 '음식그릇'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을 묘사했다. 그릇은 사람에 비할 바 없이 작은데 어찌하여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렸을까. 아마도 풍성하게 잘 차린 한상차림을 단 하나의 그릇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크기가 커진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아무튼 '鄕(향)'은 '마주보고 음식을 먹고 있음'을 묘사한 글자이니 그 처음 뜻은 당연히 '대접하다' 또는 '접대하다'였지 않았을까 싶다.

시골마을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산다. 담 너머로 음식이 오가기도 하고, 때 되면 서로 불러서 밥상머리 정(情)을 나누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시골마을의 정이 있는 풍경과 鄕(향)자의 모양이 서로 오버랩 되면서, '대접하다'는 본뜻 외에 '시골'과 '마을' 그리고 '고향'이라는 의미도 함께 품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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