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아래 우리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마을
월출산 아래 우리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4.03.02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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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 성전면 월남마을


예부터 교육열 높고, 전통행사 지속적으로 이어져

다가오는 봄의 길목을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더욱 매서운 기세지만 잔뜩 웅크린 만물은 어느덧 생기를 머금고 있다. 겨우내 헐벗은 나뭇가지엔 새눈이 움트고 배냇머리처럼 자란 보리는 진한 녹색을 더해간다. 얼

어붙었던 개울물은 다시 흐르고 농촌에도 차츰 봄의 소리가 하나둘씩 전해지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맞아 찾아간 곳은 성전면 월남마을. 마을 뒤편으로 높게 길게 뻗은 월출산의 전경과 마을의 풍광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가히 '천혜의 터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월남마을은 강진읍에서 성전면소재지를 지나 광주 방향으로 20여㎞를 가다보면 월출산 밑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역으로, 현재 100여 농가가 모여 살고 있을 정도로 요즘 농촌에서는 보기 드믄 대규모 마을이다.  
 
강진군마을사를 살펴보면 월남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입촌 성씨에 대해서는 해남윤씨 문중이 최초로 마을에 입촌했었다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입촌 시기와 입촌 성씨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월남마을에 대해 3국 시대 때 강진의 마을중 동월남(東月南), 무위동(無爲洞), 동구곡(冬九谷)과 함께 1천년이 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월남마을의 역사는 월남사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월남사지는 마을의 탑정(塔亭)에 자리한 곳으로 현재는 비석, 3층탑 등이 남아 있는데 오늘날 월남사지 3층 석탑은 보물 289호로 국보의 역사적 가치만큼이나 정교함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월남사지진각국사비 또한 보물 313호로 상당히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사찰은 어느 때 누구에 의해서 창건이 됐는지 모르나 허물어진 옛터에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중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에 관한 기록은 조계산 수선사 제2세 진각국사 비명과 1678년에 고쳐 세운 보조국사 탑비 그리고 동문선 등에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의 옛 역사를 뒤로하고 마을입구에서 길을 따라 5㎞를 들어가자 마을회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회관으로 향하는 길옆으로는 관내 최대 야생녹차재배지답게 야생 녹차 밭이 펼쳐져 있어 향긋한 녹차향이 온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오늘날 월남마을 녹차밭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중심부에 자리 잡은 회관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모여 앉아 연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월남마을은 예부터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전통사상을 중요시 했을 정도로 인근 마을에서도 정평이 나있을 정도다.

그중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는 풍습이 있으니 바로 북계라는 마을의 대표행사이다.

북계란 마을 부녀회원들이 정월대보름날 한복을 입고 우리 고유의 전통지킴이가 되고자하는 행사로, 이들은 우리 민족의 사상, 관습 등이 깃든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리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매년 정월대보름날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푸짐한 음식을 나누는 의식을 갖는다.
 
여기에는 단순히 한복을 입는 것 이외에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기본이며 속옷으로 흰색 속적삼, 단속곳, 속치마를 입고 버선과 고무신을 갖춰야 한다. 한복 저고리는 옷고름이 있어야 하며 계량한복은 제외된다.

이중 한 가지만 갖추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규율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월남마을 북계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시어머니가 함께 사는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모임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으며 이러한지도 벌써 50여년이란 세월을 넘어서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전통만큼이나 중요시 여겼던 것 중에 또 다른 하나는 학구열을 들 수 있다.
 
주민 김삼례(여·84)씨는 "우연히 남편과 함께 장사 차 마을에 들렀는데 당시 이곳에서는 글이나 시를 읊는 소리가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고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도 효와 예가 몸속 깊이 배여있었다"며 "그 모습에 이끌려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정착해 살게 됐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의 일이다"고 전했다.
 
현재 마을 곳곳에 정각이 제법 많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당시 주민들이 자연의 멋과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문학을 즐겨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당시 마을의 모습을 강진군마을사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초 주민 이효선씨가 광주일고를 졸업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을회관에서 독서회를 조직했으며 1962년도에는 이회림씨가 월남애향학원을 열어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독서회에는 어려운 가정이 있으면 농번기 때 벼베기, 보리베기 등 노력봉사를 통해 이들을 도왔다고 기록했다.

글의 말미에 젊은층의 타지 이거로 예년과 같이 활동이 활발하지는 못한다는 글귀를 보면 책이 편찬되던 해인 1990년도 이전까지 월남마을의 독서활동이나 운동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인터뷰 - 조효순 마을부녀회장

"마을전통 행사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
"우리문화의 가치는 물론 한복의 멋과 아름다움이 마을사람들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랄뿐입니다" 주민들이 한복을 입고 정월대보름을 맞이하는 이른바 북계에 있어 회장을 맡고 있는 조효순(68)마을부녀회장.
 
조 회장은 지난 14일 보름행사를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마을의 전통행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조 회장은 "어르신들이 해마다 한분 두 분 기력을 잃고 있는데다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마을의 전통행사가 멈춰서지는 않을지 싶은 우려와 걱정이 늘 불편함으로 남아 있다"며 "그저 손위 언니들의 본을 잘 받아서 한복 입는 날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고 전했다.        
 
이어 조 회장은 "부녀회원들은 북계를 통해 가정 애경사도 돕고 여행도 함께하며 행복한 월남마을을 이루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며 "전통계승 이외에도 마을의 화합과 단합을 도모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방식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마을에 대해 조 회장은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겠지만 주민들끼리 우애 좋고 인심 좋은 곳이 월남마을이다"며 "그저 지금처럼 내일을 바라보고 희망하며 그리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밑거름으로 마을의 역사가 오래도록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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