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호 - 독자시
255호 - 독자시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10.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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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서한
강진여자중학교 한 광 철

지음(知音?마음이 통하는 오랜 벗)
가을이 깊습니다.
지난겨울, 태양 작열하는 동남아 여행 중에 한 친구가 어렵게 호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풀 한포기 쉽게 보이지 않은 황량한 산야가 화면을 채울 때마다 내가 사는 산하의 고마움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금수강산, 어느 계절 곱지 않으리로만 천자만홍한 가을 산하는 유독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음
엊그제 초록이던 만상이 지금 고유의 제 색을 곱게 다듬고 있습니다. 단풍잎 붉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 붉은 옻나무 시새움을 늦게야 느꼈답니다. 대칼 같은 이파리로 범접을 금하던 억새가 그 숨겼던 금색 · 은색 속살을 다 터뜨렸습니다. 지금 사람마다 보송한 꽃 솜털 옆에서 볼 고운 연출로 화사합니다. 거기에, 솜털 보송이는 억새 사이로 몸매 가녀린 구절초가 가을바람에 더없이 청초하답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고고하다’는 형용이 제 격이겠지요.

지음
가을빛에는 향기가 깊습니다. 가을 색 일렁이는 들판에 서면 시들어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훈향이 진동합니다. 이름 모를 잡초까지도 제 삶의 농익은 마지막 정기를 터뜨립니다. 저는 그 속에서 유독 들깻잎 익는 내음에 취하곤 합니다. 모닥 풀 속에서 그 들깻잎 타는 내음은 더 없이 고소한 미향입니다.

지음
가을은, 혀끝에 감도는 맛이 절정이지요. 검붉은 산머루의 새콤한 감미 누릿누릿한 산다래 말랑말랑 살진 맛. 텁텁한 알밤 오독오독 쌉는 맛. 거기에, 붉은 시청 뚝뚝 지는 봉옥시 농캉한 맛... 가을 맛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지음
가을 소리는 청아합니다. 때로는 서글프도록 고독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을 알리는 소리는 부족함이 없는 알찬 소리입니다. 말라가는 풀 위에 누워 귀 기울여 보십시오. 사위에서 생명가진 만상들이 목청 곱게 다듬어 제 소리의 진수를 보이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耳鳴 같은 저음에서, 때로는 풀무치 나는 불규칙한 고음까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을 소리의 진수는 귀뚜라미의 정성이 아닐른지요.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으면서 모든 군더더기 다 벗어 버리고 오직 소리의 정수만을 골라 보내는 가을밤의 진객. 봄. 여름 동안 다듬고 가꾼 그 고결한 성음, 삶의 희로애락 위에 서서 빙긋이 웃는 원숙이 가을 소리로 흐릅니다.

지음
‘풀잎이 가을을 만나면 빛을 바꾸고, 나무가 가을을 만나면 잎사귀를 벗는다’라고 옛 시인은 가을을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이야말로 ‘형관(刑官)’입니다. 철마다 색깔이 변하지만 가을만큼 정성어린 색깔이 또 있겠습니까? 그 완숙의 경지를 이 계절에 느껴 보십시오. 거기에 완숙에서 풍기는 가을 향 또한 놓칠 수 없겠지요. 여름, 그 진한 녹음에서 가름하기 어렵던 고유의 향들을 이 계절에 깊이 흠향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가을에는 고유의 향처럼, 고유의 맛 또한 절정이지요. 그 맛은 인위적인 속세의 맛이 아닙니다. 바야흐로 인고로 지어낸 천연의 맛이요, 우주의 맛입니다. 그 맛은 단순한 미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고독과 슬픔을 기저로 하는 원형적인 소리가 있습니다. 계절이 익어 울리는 가을의 소리를, 피부에 느껴지는 삽상한 가을 감촉위에서 느껴보십시오.

대둔산 마천봉에서 붉게 물든 얼굴로 굽어보고 있는 가을 벗 임진수의 마음으로 계절을 완상하십시오. 그리고 삶의 정수에 서서 가을 풍미를 오감으로 체감하십시오. 지금 만상에 가을이 정말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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