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106] 성전 동령마을
[마을기행 106] 성전 동령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3.10.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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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높아져가는 하늘과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은 풍성한 가을의 정취를 담고 있다. 멀리서 보는 모습과 달리 들녘 곳곳에는 얼마전 휘몰아친 태풍의 상흔이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들녘에 길게 누워버린 벼를 살피느라 바쁜 손길을 움직이는 농민들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아직은 땡볕을 내리쬐는 한낮 강진읍에서 출발해 성전으로 가다 찾아간 곳은 성전면 수양리 동령마을이다. 현재 40여호 100여명의 주민들이 오붓한 삶을 살아가는 동령마을은 주위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령마을은 동으로는 오산, 서로는 신기, 남으로는 송학리, 북으로는 수암산의 동쪽줄기를 넘어 작천면 갈동리와 각각 인접해 있다. 마을의 지형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마을입구에는 바다를 뜻하는 연못을 파 놓았으며 그 곁에는 배의 돛대에 비유하여 은행나무를 심어 놓아 물위에 배가 떠있는 형상을 이룬다.

 

마을은 광산이씨가 처음 입촌해 자자일촌을 이루다가 경주배씨, 평해오씨, 광산김씨등이 이거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 내에 40여기의 고인돌군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에 선사인들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동령마을에는 마을의 북쪽 등성이를 일컫는 뒷등, 마을 앞들에 있는 보로 동령, 백화동, 명산리 오산 3개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곳인 보귀내, 마을 서쪽에 있는 샘인 둥그샘,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사냥할 때 매를 날려보내던 곳이라 하여 불리워진 매봉산, 마을 북쪽 등성이로 오래된 참솔나무가 많이 서있어 생긴 솔창이른 지명이 있다.

 

또 마을 서쪽에 있는 모래와 자갈이 많은 들인 순욱보, 마을에서 수암으로 가는 심방고개, 마을 서쪽에 있는 논으로 모양이 장구처럼 생긴데서 불리워진 장구배미, 마을에서 신기로 가는 고개인 청룡고개, 마을 앞쪽에 있는 연못으로 은행나무가 함께 있어 불리운 행연당등의 지명이 정겹게 불려지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마을로 접어들자 마을회관 앞에 직경 10여m의 연못을 볼 수 있었다. 연못 바로 옆에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수령 500여년된 은행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100여년 전에 벼락을 맞아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안정(55)이장은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연못에 여름철이면 홍련이 만개해 사진작가들이 수없이 몰려든다”며 “매년 정월 초사흘날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연못 앞 은행나무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이장은 “마을 주민들의 단합이 잘돼 마을 대소사를 뜻을 모아 처리하고 있다”며 “일년에 수차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화합할 수 있는 잔치를 열고 있다”고 마을자랑을 했다. 부녀회가 나서 매년 어버이날에는 음식을 장만해 노인위안잔치를 베풀고 있으며 유두, 칠석, 말복날에는 모든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 잔치를 열고 있다.

 

옆에 있던 이귀수(75)씨는 “농한기철에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며 “60세 이하 청장년층이 잔치를 열어 마을노인들을 대접하면 다음에는 마을노인들이 나서서 잔치를 베풀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간 단합을 마을 자랑으로 여기는 동령마을에는 지난 80년대까지 협호가 조직되어 각 가정의 모내기, 벼베기 등을 공동작업을 통해 실시하였으나 기계화로 대부분 사라지고 모내기철에 일부 품앗이만 남아 있다.

 

마을 회관을 중심으로 뻗은 골목길을 따라 마을 뒤편으로 올라가니 예전에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했다는 공동샘을 만날 수 있었다. 3반에 있어 삼반샘으로 불리우는 이 우물은 물맛이 좋아 아직도 식수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주민 이익수(66)씨는 “1년에 2번 물이 끓어 오르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며 “한달에 한번 우물청소를 공동으로 실시해 청결한 우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뒤편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수암서원은 광산이씨 7현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한때 왕의 친필을 보존하고 있다하여 어필각이라고 불리워 왔다. 한때 서당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수암서원에서 지역유지들과 문중이 매년 2회 시제를 올리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삶의 지표가 되는 현실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령마을 주민들의 밝은 미소는 생활의 궁극적 목표를 다시 일깨우게 한다. 자신의 일보다는 마을일에 앞장서고 마을 애경사에 먼저 일손을 모으는 주민들의 모습은 내것에 대한 욕심으로 팽배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함께 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동령마을 출신으로는 KT광주지점 홍보실장으로 근무하는 이성복씨, 수원 병무청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교씨, 성전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이춘교씨, 광주 체신청 과장으로 있는 이영일씨, 광주에서 세무사를 운영하는 이영배씨, 영암 소방서에서 재직하고 있는 이병언씨, 삼호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안세씨, 금호그룹에 근무하는 이종선씨,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배상현씨, 철도청 용산역에서 근무하는 이경진씨, 한전에 재직중인 이병열씨등이 이마을 출신이다. 





<인터뷰> 텃밭에서 만난 강금례씨


아직 따거운 햇볕은 내리쬐는 날씨에 텃밭에서 생강을 뽑고 있던 강금례(여·77)씨를 만났다. 강씨는 “올해 생강이 잘 자라지 않아 양념으로 쓸 요량으로 다듬고 있다”며 “텃밭에 생강, 콩, 고추등을 심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여문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강씨는 “혼자 농삿일을 하다 보니 12마지기 논농사는 임대를 주고 텃밭만 가꾸고 있다”며 “임대료로 받은 곡식과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부족함이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암마을이 고향이라는 강씨는 “17살에 동령마을로 시집왔으니 60여년을 넘게 살고 있어 이제는 고향과 다름없다”며 “광산이씨 자자일촌인 마을이지만 텃세가 없으며 주민들 사이에 화합이 잘 이뤄져 정이 넘치는 곳이다”고 마을자랑을 했다.

 

2남7녀의 자녀가 모두 외지에 살고 있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는 강씨는 “지난해 뇌출혈로 광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후 큰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지만 큰 집을 비워두고 갈 수는 없지 않냐”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이곳이 가장 맘 편하다”고 말했다.

 

강진 노인학교 학생이기도한 강씨는 “매주 화요일날 노인학교에 나가 노래도 배우고 장구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며 “일찍부터 노인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반장도 여러번 해보았다”고 자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을 묻자 강씨는 “5년전 노인학교 대표로 모심기 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했었다”며 “대회를 앞두고 노인학교 학생들이 같이 모여 노래 부르며 연습하던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였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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