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 '변태'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
[다산로에서] '변태'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
  • 강진신문
  • 승인 2012.10.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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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환 I 작천지역아동센터

센터의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생활복지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중에나 또래들 사이에서도 쉬이 하는 말이다.

살과 살이 맞닿는 일이 있거나, 이성에 관련한 말이 있을 때에는 여지없이 쓰이고 만다. '변태'라는 말이 그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말은 이미 일상적이고 평범한 용어이다.

당장, 변태라는 말이 가리키는 사실과 그 말의 발화자가 지시하는 현실과의 차이에서 그만 웃고 만다.

그러다가 그들은 분명 성교육을 받았을 터이고, 그 용어는 거기에서 훈련된 자기방어기제라는 생각에 이르면 씁쓸해진다.
 
얼마 전 통영의 사건이 떠오르고, 몇 해 전 조두순의 사건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끔직한 이런 문제들은 비단 오늘의 현상일까? 생각 끝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조선시대에는 미성년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실록에는'11세 여아를 강간한 사노 잉읍금을 교형에 처하다'(태조7년 윤5월16일)는 대목이 있었다.

또한 세종실록에는 '형조에서 계하기를 "평해에 있는 김잉읍화가 8세 계집아이를 강간했사오니 율이 교형에 해당합니다"하니 상(임금)이 그대로 따랐다'(세종8년 11월17일)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분개한다. 화학적 거세를 들먹이고, 급기야는 물리적 거세를 위한 법안발의마저 나왔다. 일각에서는 사형제를 부활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 '거룩한 '분노 앞에 냉소는 무엇일까? 강 건너 불구경일까! 조두순 사건이 발생했던 때가 불과 4년 전이었다. 초등학생 여아를 성폭행해 장기를 손상시킨 참담한 일이었다. 이후 13세 미만의 어린이에 대한 강간죄는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으로 강화하였다.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그간 사회는 그렇게 시끌시끌하였는데, 오늘도 아이들은 귀가길에 종종걸음을 놓는다. 양은냄비에 물 끓은 셈이었을까?
 
인간현실을 넓게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삶의 현장은 법적시비로 간단히 재단되지 않는다.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로 환원하여 혀를 끌끌 찰 일도 아닐 성싶다. 앞서 예로 든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이 말하고 흉흉한 오늘의 세상이 그것을 보여준다.

무엇 때문일까? 가해자의 악마적 심성이 이런 사건을 만들까? 그런 악마적 심성은 가해자가 지닌 유전적인 결함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문화가 그런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초점은 사회윤리의 문화이다.

윤리적 행위를 선택하는 삶이 편안할 수 있는 사회의 풍속도를 그리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귀중하게 담보하고 있어야한다. 이런 문화의 바탕 위에 개인의 사회윤리적 의지가 잘 생성될 터이다.
 
영화 <이웃사람>이 오버랩 된다. 비오는 늦은 밤. 여중생'여선'은 귀가중이다. 엄마가 마중을 나오지 못해 같은 아파트의 아래층에 사는'승혁'아저씨의 차를 얻어 탄다.

여선은 집문 바로 앞에서 승혁의 집으로 납치되고, 결국 살해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영화는 사건의 해결이나 유사 사건의 예방책임을 공권력에 떠넘기지 않았다.

그 해법을 한 울타리에 있는 이웃사람들에서 찾았다. 여선을 죽인 승혁은 그 애를 닮은'수연'의 존재로 불안해하고 그마저 죽이려고 한다.

이때 죽은 여선의 엄마'경희'는 수연이가 제2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또한 자기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모른 체하던 이웃사람들도 분연히 떨쳐 일어난다. 연쇄살인범이 이웃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도 본체만체하였던 그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했을까? 즉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자적인 존재로 말이다. 변태라는 공격적 자기방어의 말은 오늘도 횡행할 터이다. 그러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어제의 사회환경 보다 주변의 사정은 결코 나아진 것은 없는 듯하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고, 소유하면 행복하다는 거짓 환상을 심어주는 체제의 탈피가 필요하다. 오목하게 파인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는 함께 할 세상을 볼록하게 만들 렌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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