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렬화백-하편] 김영렬화백에게 보내는 편지
[김영렬화백-하편] 김영렬화백에게 보내는 편지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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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하게 고향을 지키셔야 합니다"

정문석 시인의 백림통신


고향의 산야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화가

- 완향 김영렬 화백님에게 -


얼마전엔가 뉴질랜드에 다녀오셔서 순토종의 남도 사투리로 흥분해서 혈기왕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순진무구 유치찬란하게 이런저런 자랑을 열열하게 하시었습니다. 며칠 전 또 안부전화를 했더니 “어야, 정시인, 병원에서 의사가 간암 사망 선고를 해서 이제 집에서 약 먹고 요양하고 있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분이 무력한 체념의 소리가 아니라, 어디 풍경 좋은 곳을 소풍가는 학생처럼 약간 들뜬 사람의 상쾌한 목소리이니 나는 여간 어리둥절 했습니다. 아마 이 양반이 마지막 불꽃을 작열하시고 산화(散花)하실 작정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만일의 경우 선생님은 천수를 다 누리시고 가시는 것이지만 「참하 꿈엔들 잊힐리요」이 수려하고 인정 넘치는 강진의 아름다운 산야를 다 어찌하시고, 머나 먼 영원한 소풍길을 준비하시려는 것입니까. 끝까지 희망과 소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지난 날 온갖 수난과 난간과 고통을 잘 견디신 그 인고로 풀잎 같은 목숨 같은 것을 초월하시어야 합니다.


내가 강진에서 제일 살고 싶고 부러운 집이 있다면 대단한 궁중대궐도 아니요, 외제 고급 대리석으로 치장한 현대 고급 주택도 아니요, 이끼 낀 기왓장에 오밀조밀하게 꾸미고, 북산 약수물에 삼백초를 끓여 먹고, 황토방 화실에서 구강포를 내려다 보는 다소 고전적인 바로 당신집입니다.

당신은 풍광이 좋은 남도 바닷가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산야를 팔순이 넘도록 묵묵히 그리는 영원한 강진의 파수(把守) 화가입니다.

그렇게 유명이나 명예나 부귀에 연연하지 않고, 유서 깊은 서당자리 산언덕 양지바른 화실에 칩거하며, 작품에만 몰입하면서 아주 단순하게 아주 무욕하게 치사(致思)하며 살아갔습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단순하게 무욕하게 산다는 것은 어느 경지에 도달한 아름다움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넓고 순진하시고 모든 것이 달관하고, 그래서 남의 시선이나 몸갖춤이 없습니다.

평생에 당신이 지녔던 자부심은 온갖 궁벽속에서도 한번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부심만큼이나 현실이나 가정이나 생활에 대해서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인가 당신은 술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한평생 그림 그린 죄 밖에 없다고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전쟁 이야기를 하다가「이데올로기」에 난감해 하면서 주사(酒邪)가 있는 발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당신이 그림을 시작했던 시절만해도 화가의 길은 천형의 행로였습니다. 미술은 취미도 열정도 아닙니다. 그건 당신 삶의 전부 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그러듯이 당신 사람됨은 붓만 빼앗으면 그 자리에 앉은채 빳빳하게 굶어 죽을 사람입니다.

생활 부담으로 부터의 자유에 어찌 사람다운 고뇌가 없었겠습니까. 가끔가다 절제하지 못하고 술의 탐닉을 따지고 보면 그런 고뇌의 한 표출인지도 모릅니다. 철저한 자유인이 못된다면 예술은 얼마나 처절한 것입니까.

나도 평상시에는 언어가 어지간히 어눌하고 서툴고 짧지만 술만 어느정도 술배에 채워지면 당신이나 나나 언어가 틔어지고 다변이 됩니다. 일생동안 고치고 싶은 이 습성도 당신이나 나나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림 이외 일체 세상일에 잘 잊어먹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더러는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것은 천상 당신의 예술가 기질 때문에 다소 면죄 받을 수 있습니다.

명리나 재물을 위해서는 친구마저 밟고 넘어서는 일이 허다한 이 세태속에서 정말 티없는 삶을 촛불 닳히듯 소모해 가는 화가가 당신입니다.

당신은 그림 때문에 가난했고 그림 때문에 부자였고 그림 때문에 인생이 고단했고 그림 때문에 인생이 행복했습니다.

이 각박한 인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욕심을 잊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또 세움을 모르고 그림을 그려 온 당신입니다.

화가는 화가답게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까 소중한 것 아닙니까.

당신같은 원로 화가가 고향 산천을 지키고 있으니까 강진은 아름다웁고 행복한 고장입니다.

누가 뭐라하던 당신은 강진 예술계의 대부입니다. 당신 그림은 담백하고 소박하다고 합니다. 당신 그림은 포근한 고향 숨결을 느낍니다.  사모님 눈을 피해가며 나하고 먹는 술맛만은 잊지마십시오. 그 술맛을 잊은 날 화가 김영렬은 없고 인간 김영렬만이 남을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박수근 화가의 고향인 양구에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군청 문화관광과 과장이 머잖아 양구에「박수근기념관」이 세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밀레」의 만종을 보고서는「하나님, 저도 이런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기도했다는 것과, 도청 서기로, 미군부대 초상화가로, 심지어 부두노동자로 전전하면서, 죽기까지 손에서 화필을 놓지 않았던 것이나, 기대를 가지고 출품한 중앙 관전에 입선마저 하지 못하고 낙방하기도 하고, 어린 아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것도 당신 인생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제 국민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이 화가는, 가장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화가의 한사람으로 양구 읍내에 기념 공원이 있고, 기념관 설립 및 생가 복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선한 이웃을 그리고 간 한국의 밀레로서 박수근 화가와 당신이 어필되었습니다.

「산을 대하면 조상을 뵈인 듯 하고 물을 보면 어머니의 자상함을 연상한다」는 당신의 말대로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고향의 산야(山野)는 말할 것 없고 하잘 것 없는 돌맹이 하나 둘풀 들꽃 가난한 어촌 농부 한사람까지 찬찬히 자상스럽게 묘사해 주기를 바랄뿐이었는데 천주님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시어 좀 편히 쉬게 하실 모양입니다.

나도 이제 낯설은 타관땅에서 심신이 너무 지치어 귀향하고저 합니다. 귀향하면 당신의 높은 집터에 당신의 털털한 인생처럼 아담하고 소박한 기념미술관을 세우는데 미력하지만 일조하겠습니다.

내가 귀향하면 나의 연가시집 <강진>시에 당신의 <강진그림>으로 시화전을 소담스럽게 한번 하고 싶었는데, 그 날까지는 당신 의지와 집념으로 버티어 주셔야 겠습니다. 나처럼 당신도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종교 이상으로 영원하고 절대적입니다. 오늘도 북산 「소낭구」에 아침 신선한 까치 울음이 낭랑창찬합니다. 몸을 다시 추스르어 노련한 붓꽃을 꺾지 말으셔야 합니다. 일간 귀향하면 사모님 모르게 가평 잣막걸리를 한병 숨겨 가지고 가겠습니다.


                                   2003. 8. 15 말복에

                                   가평 백림재에서 문석 후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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