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회, 부녀회 중심으로 주민 공동체강화
마을여행은 연례행사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가끔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긴 하지만, 분명 3월 중순인 요즘은 봄이다.

봄이 오는 소리에 농촌에는 본격적인 영농준비가 한창이다. 얼어붙었던 개울물이 다시 흐르고 마을에는 경운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농사철이 돌아왔다.

거름 주고 땅 갈고 논두렁 만들고, 논밭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농민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올해는 봄을 맞는 농민들의 마음이 왠지 예전 같지가 않다. 이 봄이 오히려 두렵고 아프기까지 하단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농촌생활에 웃음과 즐거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20일 춘분을 맞아 주민들이 삼겹살 파티를 열고 있다.
그저 아픔의 현실 속에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오늘을 버티고 내일의 희망을 잃지 있을 뿐이다.    
 
지난 20일 찾아간 도암면 지석리 동령마을. 마을은 아침부터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회관 앞에 모인 20여명의 주민들이 숯에 불을 지펴 삼겹살 잔치를 벌였다.

다음날 떠나는 나들이 여행을 앞두고 벌이는 일종의 기념 파티였지만 춘분을 맞아 주민들의 단합을 위한 연례행사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밖에서 고기를 굽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반찬준비에 여념이 없다. 다른 한쪽에서는 몇몇 노인들이 백발의 모습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시간이 흐르고 제법 푸짐한 잔칫상이 차려지자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때마침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던 윤가현씨가 한 손에 움켜쥔 술잔을 높이 들며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이런 때일수록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행복하게 어울려 삽시다" 주민 윤재홍(69)씨도 말을 덧붙였다. "올해는 더욱 더 우리들이 서로를 돕고 아껴야 할 것입니다. 뭉쳐야 산다고 안합디까. 올해도 잘 살아봅시다" 이내 주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럽시다".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는 내내 주민들의 웃음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마을잔치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이날 동령마을 모습은 여느 마을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생활문화의 한 부분이자 단순한 술판이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나름 의미 있고 계획된 행사다.

주민들은 늘 그랬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응원했고 때론 삶이 힘들거나 어려운 현실에 맞닥뜨리면 종종 술판을 벌이며 서로 위로했다. 이러한 삶을 이어 간지도 벌써 수년 째란다.

해남윤씨가 자자일촌을 이루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보니 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동령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420여년 전 해남윤씨 후손들이 자자일촌을 이루며 마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24가구 4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은 해남윤씨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동령마을을 해남윤씨의 집성촌으로만 여겨 자연스러운 단합과 화합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의 무리도 따른다.

이 같은 배경에는 마을 부녀회와 노인회의 노력도  많은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대 결성된 마을부녀회 회원들은 쌀과 밑반찬 등을 각자 낼 수 있는 양만큼 한데 모아 마을회관에서 함께 쓰도록 했다.

여기에 지난 2003년도에 노인회가 결성되면서 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주민들의 결속력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공동체사업을 추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례로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주민들은 마을초입부터 주변도로까지 1㎞구간에 벚나무 200여 그루를 식재해 꽃길을 조성하는가 하면 지난1995년에는 농가 대부분이 친환경농법으로 태양초 고추재배에 참여하면서 오늘날까지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 각지로 태양초를 판매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금도 동령마을에서 수확한 태양초는 관내에서도 최고의 품질과 맛을 자랑할 정도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또 지난 2007년에는 20여㏊면적에 우렁이농법을 도입해 벼 재배에 나서면서 친환경농업시대를 여는 기틀을 다지고 있다.


   
 
인터뷰│동령마을이장 김노곤씨
"인정이 넘치는 건강한 마을"
동령마을 김노곤(56) 이장은 마을의 각종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나이로는 제일 막내나 다름없다.
 
김 이장은 "어느 농촌지역을 가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동령마을은 주민들의 정이 아주 끈끈하다"며 "마을에 필요한 것이나 부족한 부분은 너나 할 것 없이 제안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사업할 때면 적극 서로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장은 "이날 마련한 잔치는 주민들이 웃고 즐기면서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는 고령화한 농촌 가구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뭉쳐서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한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마을에는 귀농인구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는 것도 마을에 희소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김 이장은 "농촌에도 희망이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애향심도 더욱 커질 것"이라며 "풍요로운 농촌마을을 가꾸는 데 더욱 힘을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 이장은 "주민들은 공동체사회를 통한 다양한 노력과 이로 말미암은 성과들이 몇 년 내에 마을발전의 큰 원동력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고단한 농촌생활이지만 인정이 넘치는 건강한 마을을 통해 농촌의 아픔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농촌의 희망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