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청자의 아름다움
[다산로에서]청자의 아름다움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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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탐진도자기 대표>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시대별 특징을 지니며 우수한 도자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전남지역은 그 중에서도 가장 수준높은 도자기문화의 한부분을 형성하여 왔음은 물론 도요지의 분포등 도자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큰맥을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의 관요로서 원숙한 경지에 도발하여 국보급 청자가 만들어졌던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용운리등 그 어느것을 보더라도 강진지역은 순수하고 전통성을 지닌 도자문화의 보고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꾸준히 설립하고 있다. 그 예로 1997년 9월 3일 개관한 강진 청자자료박물관을 들 수 있다. 강진은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으로,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그의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답사 1번지”라고 불렀다.

이는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던 월남사지에 모전석탑(보물 298호)과 석비(보물 829호), 조선시대 불상과 불화를 가진 무위사 대웅전(국보 13호), 다산 정약용이 유배와서 많은 저술을 남긴 다산초당(사적 107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시대 청자를 제작하였던 수공업 집단이 거주하였던 대구면 일대(사적 68호)와 칠량면 삼흥리 일대(전남기념물 81호)등 중요한 유적지가 강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중 대구면과 칠량면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말까지 약 600여년간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중국 청자 기술의 빠른 도입과 기후?태토?연료?해운 등 자연적인 조건, 그리고 기술인력이 집단으로 거주했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일제의 침략기인 1939년 고적 제107호로 지정되었고, 정부가 수립 후 1964년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강진의 청자는 삼국시대 이래로 1000여년에 걸친 경질도기의 기술적 전통 위에 회유도기의 제작기술이 보편화되고 있어서 청자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고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청자가 전해지고 청자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인식한 한국인들에 의해 청자를 제작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청자의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색에 대하여 - 마치 비취옥(翡翠玉)의 색과 비슷하다고 하여 - 비색(翡色)이라 하며 모든 물건중에 으뜸으로 귀하게 여겼으며, 그러한 비색청자는 열 개중에 하나를 뽑아 낼 수 있을 만큼 만들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고려시대 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청자를 먼저 만들었던 중국인들에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찬사를 받고 있었던것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 

청자의 아름다움은 맑고 신비로운 비색과 함께 세련되고 유려한 형태에 있다. 대부분의 미술 감상자들이 한국미술의 특성을 말할 때 고려청자의 유려한 선(線)에서 한국미술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을 만큼 청자의 조형미는 한국의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청자는 “철분이 함유된 태토에 2-3% 정도의 철분이 섞인 장석유를 바르고 구워낸 자기”라고 정의한다. 그중 비색청자(翡色靑磁)라고 부르는 청자는 회청색의 청자유약이 시유된 것으로 12세기 청자의 절정기 작품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자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청자의 제작과정과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흙에 들어있는 철(Fe) 성분이 환원 분위기에서 소성하면 3가에서 산화물로 되면서 용융과정에 신비의 청록색, 즉 청자색을 띤 저유명한 청자를 일찍이 세상에 내놓았었다.

그러나 한반도 산고을에 살며 중국에 열심히 조공이나 바치고 외국과 싸우느라 북쪽의 중국 천하와 남쪽의 섬나라 일본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이때문에 세계적으로 빛나는 상품을 수출은커녕 도공들을 천대하여 고려청자의 비색이 기술의 대를 못 잇고, 한동안 영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단절되었던 청자를 재현하면서 몇몇의 도공들이 신비의 비색청자를 재현해 여가가지 온 만큼 우리는 강진청자의 위상을 더 더욱 되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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