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바르게살기운동의 슬로건
[다산로에서]바르게살기운동의 슬로건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만지,군동 금곡마을 이장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최후를 마칠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며,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다”라고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수십억의 인구가 살면서 각자 마음가짐에 따라 삶의 형태와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이 땅에는 노예도 살고 도둑도 살고 살인자도 살고 강도도 살고 창부도 살고 있다. 인간은 살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좀더 참되며 진실 되게 살고 보람되며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이상을 만들고 어떤 삶의 가치를 창조하며 보람된 인생을 만들어 가는데 삶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필

 

자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신의 가호가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며 봉사하는 시민의식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바르게살기운동의 3대 이념을 부연하고자 한다.

 

첫째: 진실(眞實)이다.

 

진실은 참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다. 거짓은 누구나 싫어하고 나쁜 것으로 판단한다. 왜 그럴까? 거짓은 인간 사이를 불신으로 만들며 사회적 신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성한 나무라도 독소가 스며들면 그 나무는 말라죽고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암세포가 형성되면 생리작용은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 오늘의 건전한 사회에서 거짓은 분명히 독소이자 암이다.

 

우리는 다함께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책임을 지고 공존의 윤리를 배워야 하고 함께 잘 살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우리들은 남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욕하고 화를 내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합리화시키고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일들을 흔히 접하고 있다.

 

일찍이 안창호 선생은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해서 우리민족은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 꿈에라도 거짓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민족은 죽어도 거짓된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하였다. 거짓은 서로가 믿지 못하므로 인간의 불신이 조장되고 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특히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허위의 수단이나 일시적인 방편을 위해서, 그리고 지나친 전시효과를 위해서 필요이상의 업적을 자랑함도 거짓으로 이끄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민주적 건설은 절대적으로 신의의 뿌리위에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귀한 것은 내 양심을 속여 병들게 하는 일이나 이 지역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일은 이제 사라지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양심으로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이웃의 슬픔과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필자의 소원이다.

 

둘째: 질서(秩序)이다.

 

질서는 하나의 선이요 무질서는 하나의 악이다. 철학자 존 듀이는 문명은 질서다 라고 하면서 문명한 사회는 질서가 있는 사회요 미개한 사회는 질서가 없는 사회라고 갈파하였다. 질서에는 분명히 미가 있고 기쁨이 있고 선이 있으며 발전과 진보가 있고 활기찬 사회의 생명을 기대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질서란 무엇일까?

 

질서는 사물의 순서요 진리(眞理)다. 우리가 서야할 자리에 서고 가야할 길을 가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질서다. 그리고 올바른 법칙과 규범을 따르는 것이 질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아니 될 일들을 너무나 쉽게 판단해 버린다. 이것이 질서의 파괴이다.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게을리 해서는 아니되겠다.

 

인간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질서 도덕의 질서다.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고 도덕의 질서를 위해서는 우리의 양심이 필요하다. 즉 법은 외제율이고 양심은 내제율이다. 우리는 먼저 양심에 의해서 질서를 지키려는 내 스스로의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을 가지고 생활해야 되겠다.

 

질서를 지키는데는 타율적 질서와 자율적 질서가 있다. 타율적 질서는 힘이나 지시에 의해서 지키는 것이요, 자율적 양심에 의해서 자각과 자율성으로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공정의 질서, 정의의 질서가 지배하는 자율적인 질서를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질서원리로서 양심에 의하여 자율적 질서원리가 함께 행동화되고 습관화되고 생활화되고 사회화되어서 아름다운 사회질서가 확립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셋째: 화합(和合)이다.

 

화합의 뜻은 여럿을 한데 모은다, 뜻이 맞아 화평하다, 서로 다투는 것을 푼다, 뜻을 맞춘다, 화평스럽다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라는 의미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요, 결코 혼자 사는 의미는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웃과 함께 화합해서 사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 생각만 하게 된다. 나의 열을 위해서 남의 아흔의 피해를 주는 일은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오늘의 사회는 구조와 기능이 다양하면서도 똑같이 함께 소중하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 시장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부에게는 감사할 줄 모르고 생활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누구나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자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현실사회는 이웃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명예와 권위만을 일삼는 사람이 많다. 감사할 바를 감사하고 존경할 사람은 존경할 줄 아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화합의 길이요, 자신에게 해로울 때는 불의로 단정하고 투표의 부정을 알면서도 나에게 유익하면 불의가 아닌 듯이 묻어두는 것이 통례이다.

 

이것은 불화인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다. 인간은 나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불행을 줄 수는 없다.

 

현실 사회는 항상 자신의 봉사에게 우리 모두의 생을 완성시키는 원천이 사랑임을 깨달아 우리 사회가 다같이 사랑으로 화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후세에 보여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