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강진읍 서산리 발산마을(81)
(마을기행) 강진읍 서산리 발산마을(81)
  • 김철 기자
  • 승인 2002.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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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서산직선로를 따라 길게 자리한 딸기비닐하우스들. 그 사이로 바랑산의 안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강진북초등학교옆으로 위치한 발산(鉢山)마을.

돌로된 장승이 위치해 있어 장승골로 불리었던 발산마을은 현재 43호 12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고 서기산자락에서 떨어져 나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대를 들고다니는 모습인 바랑산을 뒤로 하고 있다. 마을의 이름도 바랑산의 영향으로 바리때 鉢 뫼 山이 합쳐져 명명됐다.

김해김씨가 최초로 입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발산마을은 마을 곳곳에 위치한 향토성 짙은 명칭이 덧없이 정이가게 만든다. 사시사철 맑은물이 흘러나오는 콩샘, 통샘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흘러나온다. 가을철에 콩샘물로 백김치를 담그면 이끼가 끼지 않아 강진읍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길러간곳이다.

햇볕이 가려져 항상 음지로 지낸다는 빗가리, 숟가락모양으로 생겨 명당자리로 명명된 숟가락명당, 마을앞 서산천의 자락으로 담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담안, 냇가의 모습이 수시로 변해 바위로 막아 물줄기를 변화시킨곳이기도 하다. 예전 소를 매서 방목했던 쇠밭들등이 마을의 숨은 문화재이다.

각마을의 대변하는 사장나무는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100여년을 넘긴 두릅나무가 사라졌고 40여년을 넘긴 오엽송이 마을의 사장나무를 대신하고 있다.

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찾아간 마을어귀에는 마을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회관앞에 위치한 발산정(鉢山亭)에 자리한 주민들은 마을의 유래를 하나씩 설명해주며 마을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주민 윤태현(63)씨는“우리마을은 강진읍에서 단결잘되고 젊은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는곳이다”고 마을에 대해 자랑하자 옆에 있던 안종삼(65)씨와 안종식(76)씨도 “마을을 떠난 출향인도 마을에 대한 애착이 높아 명절때 항상 들린다”며“발산마을은 예전부터 모범부락으로 유명한 동네다”고 강조했다.

발산마을에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가 있다. 30여년전부터 매년 8월15일에 열리는 경로잔치이다.
마을청년회에서 음식을 준비해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열리는 행사로 1반과 2반으로 운동경기도 열고 있어 마을의 제일 큰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산마을에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두가지 전설이 있다. 발산마을은 마을의 터가 좋아 큰고을이나 왕국의 터자리로 소문났으나 예전 서기산에서 떨어져 나온 바랑산을 스님이 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임신한 여인이 보게 됐다. 이때 여인이 ‘스님이 산을 지고 걸어가네’라고 말하자 멈춰서 지금의 자리에 바랑산이 위치하게 됐고 왕국의 자리가 되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마을에 명당자리가 있어 정승이 10명, 이조판서가 20명이 나온다고 했고 인근에 북초등학교가 개교해 명당터의 전설을 믿고 있는 상태이다.
발산마을에는 19가구가 3만여평에 하우스를 통해 딸기재배를 하고 있다. 일찍부터 벼농사외에 시설작물에 눈을 돌린 마을주민들은 큰 이익을 남기지는 않지만 가격에 큰 변화가 없는 딸기재배에 나서고 있었다. 영농에 대한 미래가 제시되기 때문에 다른마을에 비해 젊은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발산마을 주민들이 평소 우애가 좋고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속에는 넉넉지 않는 생활이지만 빈부의 격차가 거의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가지 예로 하곡수매량에서 알아볼수 있었다.
마을에 배정된 수매량을 토지면적에 상관없이 가구당 공평하게 배분한 것이다. 지난해에 비해 50%가까이 줄어든 배정량에 주민들이 자기이익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마을의 모든일을 소수 주민들에 의해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주민들의 참여의식속에서 커나가는 발산마을은 더욱 번창하고 윤택한 삶을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발산마을을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친손자를 대하듯 반갑게 맞아주던 동네 어르신과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나무그늘 한자락을 내어 주는 아주머니들의 정이 마음깊이 남아있었다.

발산마을 출신으로는 전남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윤재문씨, 광양에서 교사로 재직중인 안종진씨, 광주 송원여고에 근무하는 오준환씨, 구례농고에 재직중인 오숙연씨, 도로공사에 근무하는 오원일씨, 농업기술센터에 유통담당으로 근무하는 안종희씨, 도암우체국장인 안준석씨, 대전교도소에 근무하는 이광남씨, 부산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재직중인 윤상선씨가 이마을 출신이다.



논옆자락에 딸기밭을 만들어 모종을 하고 속잎을 뜯어내고 있던 김맹례(61)씨를 만났다.
언제쯤 수확하느냐는 질문에 김씨는“올해 처음으로 짜투리땅에 조금 심어봤다”며“한달후 정도면 수확이 가능한데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10마지기의 농사에 1동의 하우스에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씨는“지난해에는 딸기작황이 좋지 않아 본전치기나 했을정도다”며“올해는 아직은 기대해볼만 하다”고 강조했다.
작천 교동에서 시집와 40여년을 발산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김씨는 “시집왔을때는 초가집에서 배고팠던 시절이여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농사를 다 기계로 하다보니 세상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5남매의 장손에 시집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을 키우다 싶이해 장가보냈다”며“다들 예전에는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왔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김씨는 “고생끝에 4년전 새로 집을 지었을 때가 가장 기뻣다”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김씨는“우리마을은 집안에 애경사가 생기면 주인보다 마을사람들이 더 나서서 일을 한다”며“친형제보다 주민들이 앞장서서 챙겨주는 우리마을이 살기좋은 곳이 아니냐”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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