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오월, 그리고 정치권력
[다산로에서]오월, 그리고 정치권력
  • 강진신문
  • 승인 2011.06.1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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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환 I 작천지역 아동센터

햇볕은 풍성하고 산과 들은 초록으로 물들인다. 키대로 자라 눌눌하게 익어간 보리는 넘실거리고, 소쩍소쩍 잇닿은 부엉이의 울음이 이제 밤하늘을 수놓는다.

만물이 그 생명력으로 춤을 추는 즈음에 농부는 모내기로 바지런을 피운다. 시절은 여름으로 한층 내딛었다.
 
어린이날이 있었고, 어버이날이 있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었다. 인간의 문명한 이런 행위가 욕되게도 오월은 야만의 달이다.

멀쩡한 목숨들이 도로에서 소총 난사에 맞아죽은 그해 '오월'의 풍경 때문이다. 사람이 한 순간 아주 간단하게 소멸되고 마는 그 '가벼움'이 몸서리쳐진다.

인간 해방을 위한 문명의 그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 인간을 저당잡아 세운 질서와 제도가 치떨린다. 그해 오월은 인간 존재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말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오월의 그런 역사적 질곡의 일단을 절절하게 토로한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 '진우'와 단둘이 사는 '민우'는 그야말로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간호사 '신애'를 연모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소소한 일상들이 그에게는 소중할 뿐이다.

이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끝내는 계엄군의 총탄에 동생마저 무기력하게 보내버리고, 이제 민우는 열흘 간의 처절한 죽음의 투쟁을 하게 된다. "다만 꿈이길 바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을" 뿐인 민우이었다. 그런 그가 "폭도"로 죽임당하는 장면에 숨죽이던 흐느낌들이 새삼 되살아온다.
 
오월이 갔다. 그러나 산천은 예대로 푸르고 해님은 저녁이 되면 아무런 몸짓 없이 자기 침실로 가버린다. 세월은 참 잔인하다.

그 상념 끝에 스스로 묻는다. "박제된 세월이 아닌 살아있는 오월은 무엇일까? 과거를 딛고 현재를 미래로 투사한 오월은 무엇일까?" 제어되지 않은 정치권력은 언제든지 야수의 발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정치권력의 폭력성은 <화려한 휴가>에서 보여주듯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오히려 자기의 욕망을 기어이 채워갈 뿐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 헌법10조는 언제든지 잠꼬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므로 오월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질서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하고 질문하기를 요구한다.
 
한편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보호하는 것은 육체를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다.

이제 '오월'의 가치는 정치권력에 대한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권리뿐 아니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에까지 그 실천의 지평이 확대재생산 되어야할 터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부(富)의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불평등의 심화라든지, '88만원세대'라는 말이 전하는 고용불안이라든지 등등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회문제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실질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가꾸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지역사회가 맞닥뜨리는 문제들 또한 언제나 오월의 가치를 튼실하게 무장한 시선으로 풀어나가야 할 터이다. 정직하고 친절하고 화합하는 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도, 당면한 지역사회의 보편적 복지의 지수를 묻는 질문에도 오월은 생생하게 숨쉬고 있어야 한다.

이렇듯 '오월'이 인간다운 삶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새로새로 일깨우는 원동력으로 살아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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