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명자, 생강, 참깨재배 등 복합영농으로 소득 마련

'모내기철에는 아궁이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고 했던가. 요즘 농촌은 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의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어디를 가든지 하늘빛이 반사된 논마다 푸른빛이 채워져 있다.

갈수록 힘이 든 탓에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하지만 논을 매정하게 내팽개칠 수 없는 농부의 마음을 아는 듯. 들녘의 푸른 새싹들이 정갈하게 줄을 맞춰 서있다.

봄의 끝자락에 쏟아지는 한낮의 폭염 속에 작천면 부흥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돌로 조각한 사자상이 인사를 하듯 입구를 지키고 섰다. 마을에 들어서자 어렴풋이 마음속에 새겨 놓았던 고향풍경이 펼쳐진다.
 
50년은 족히 됐을 방앗간 건물과 옛 세월을 짐작게 하는 한옥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허리춤 높이까지 올라오는 낮은 돌담이 구불구불 유선형으로 길을 안내한다.

   
요즘 부흥마을 주민들은 참깨재배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택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돌담길의 끝에는 집집마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활짝 피어있다. 조선시대 반촌의 으리으리함보다 우리네 고향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을. 부흥마을의 돌담길에 서면 조선시대 선비라도 된 양 느긋한 여유마저 생긴다.  
 
부흥마을의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발행한 강진군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마을은 조선 초기 김해김씨 후손들이 입주하여 터를 닦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한 도사가 흰 연못이 피는 명지라고 하여 백련곡(白蓮谷)이라 칭했고 장흥고씨 등이 입주하다 떠났다고 하여 고폐실(痼弊實)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부흥은 조선조말 전주이씨, 전주최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불러 일으켰다는 뜻에서 탄생됐다. 
 
마을은 남쪽으로 오봉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으로 평야가 펼쳐지는 북향마을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뜨겁다. 현재 42호 70여명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벼농사 위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마을의 토양은 사질토와 양질토로 농사짓기에 적당하다. 양질의 토양 때문에 마을에서 수확되는 곡식의 양은 항상 풍년이었다. 이와 더불어 마을은 다양한 밭작물이 재배되어 왔다. 
 
이매암(65)이장은 "지난해까지 마을은 결명자 재배에 한창이었다. 한해 생산되는 결명자는 2톤 정도로 계약재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5농가에서 생강재배에 나서고 있어 복합영농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부흥마을주민들은 고추재배를 비롯해 깨, 결명자 등 다양한 재배활동을 통해 소득마련에 나서고 있다.
부흥마을은 전체적인 농경지 중 밭으로 이용되는 경작지가 1/4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넓은 면적의 밭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고추, 깨, 결명자 등 다양한 재배활동을 통해 소득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고추는 30여 농가에서 재배에 나서고 있을 정도이다. 
 
예부터 물이 풍부했던 것도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고려시대 때 고처사가 살던 앞들은 항상 물이 풍부했고 마을뒤편 밀양손씨 제각으로 가는 큰 도랑 곁에 있는 도내기거리 또한 무더운 여름이면 물이 차고 시원해 목욕을 즐겨했던 곳이기도 했다.
 
마을동쪽에 위치한 나망동은 허리 깊이의 큰 우물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가장 좋은 우물로 7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설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마을 원수등 박정서씨 소유의 논에 있는 샘은 봄이 되어야 물이 많아지고 여름이면 물맞이를 하던 곳으로 음양수라 불렸다.
 
이에 대해 마을주민들은 마을뒤편 오봉산 줄기와 바람재 줄기에서 맑은 물줄기가 마을로 흘러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정달막(여·78)씨는 "오봉산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고 산자락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물이 좋아서 여름이면 풍취가 좋다"며 마을 자랑을 덧붙였다.
 
'정들어 사는 사람들은 이웃주민이 친형제보다 낫다'는 말이 부흥마을에서 유난히 떠오른다.
 
주민들은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다양한 놀이 등을 즐기며 오붓한 정을 나눈다. 마을기금과 회비를 모아 나들이 관광을 하는 등 한 가족처럼 정겨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수년이다. 
 
지난 3월에는 나주에서 온천탕을 운영하고 있는 정승윤씨가 마을주민 40여명에게 일일 효도 나들이를 제공해 인근 마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주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정이 넘쳐나는 곳.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정겹게 수 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이 묵묵히 지켜나가는 그곳. 여기가 바로 언제나 그리워 찾아가고 싶은 고향의 모습은
 

   
 
인터뷰 - 마을주민 윤대식 씨
"마을주민들 서로가 가장 좋은 스승"

마을뒤편 논밭에서 경운작업을 하던 윤대식(73)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윤씨는 2314㎡(700여평) 면적의 밭에 고추, 콩, 깨 등을 심고 가꾸는 일로 한창이었다. 
 
윤씨는 "해마다 농사를 지어도 농작물이 제 값을 못 받고 있어 농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며 "젊은 일손들마저 농촌을 외면하면서 남아있는 주민들의 고통은 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씨는 "농촌마을이 그렇듯 부흥마을은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며 "고령의 나이에도 무더운 날씨에 논으로 밭으로 나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씁쓸하다"고 밝혔다.
 
윤씨는 "농촌 부모들은 나이가 들수록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다"며 "몸은 아프고 힘들어도 행여나 타지에 있는 자식들이 눈치 챌까 싶어 숨기고 감추기만 급급하다.

그러다 몸이 아프고 병이 심해져도 자신보다는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싶은 생각으로 맘고생만 더한다"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윤씨는 "힘든 농사일로 휴식을 취하며 쉬고 싶은 상태에서도 이웃들의 일이라면 먼저 달려 나간다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며 "마을주민들 서로가 가장 좋은 스승이자 동반자이다"고 말했다.


   
 
▶부흥마을에 가면

부흥마을 회관 앞을 지나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아름드리 팽나무이다.

나무는 수고 20여m로 정확한 수령은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그 모습이 수려해 무더운 여름이면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나무는 지난 1959년에 김이철, 장기찬씨 등 주민 50여명이 현재 김갑순 씨 소유의 대나무밭에서 캐어다 심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