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림통신]신학산 시절이 그립습니다
[백림통신]신학산 시절이 그립습니다
  • 문화부
  • 승인 2003.07.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은 임상호 선생님에게-

가평은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젊은 사람은 논밭에 눈을 씻고 봐도 한 사람 없고, 기름기 없는 까만 혈색의 늙은 농부들만이 허덕허덕 숨차 합니다. 「농」자 붙은 사업이나 직업은 무엇이나 하지 말라고 한다는 선생님 말뜻이 쟁쟁합니다. 5월 중순인데도 한 낮은 성하(盛夏)의 폭염이 불꽃처럼 작열하는 초복처럼 숨이 턱턱 막힙니다.

 

나는 애초엔 나이 들면 남도 고향에 귀향해서 살다가, 모란꽃이나 동백꽃이나 국화꽃이 있는 아름다운 무덤도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만덕산 기슭 햇살바른 다산 초당아래 자그마한 농막이나 하나 마련해서, 이른 아침「에메랄드」 반짝이는 구강(九江)이나 바라보면서 그윽하게 살 요량이었는데, 이런 저런 곡절로 해서 포기하고 군대 장교로 있는 자식 덕분에 청정 가평 땅에 정착하고, 눈이 유독 많고 춥다는 한적한 설악 설곡 갱골 계곡까지 우연히 인연되어 흘러 오게 된 것입니다.

 

씨 뿌리고 꽃 피우고 열매 가꾸는 젊은날도 부실하게 다 소진해 버리고, 이제 나의 척박한 인생의 황지에 소담스런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부질 없는 잡초만이 무성하고 현란할 뿐입니다. 우리 부부가 가평에 와서 더 깊숙한 산중 생활로 이중 생활을 한지도 한달쯤 되었습니다. 안사람은 가평읍에 있고, 나만이 「행복한 나날들」원고 뭉치를 달랑 들고 설악농원에서, 밥해 먹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사는 이중 생활입니다.

 

내 건강엔 술 보다 담배가 더 나쁜데, 워낙 내 의지가 약해서, 편지 한 장에도 담배를 피어야 글 한줄이 나오고 보니, 내일 죽더라도 마누라 핀잔을 들어가면서, 눈물로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웁니다.

 

설악농원 설곡산방엔 신문 배달도 되지 않고 TV가 눈을 버리게 화면이 나오고 라디오도 신통치 않습니다. 법정 스님처럼 수행자가 아니고서야 이 곳 산중의 열악한 처지가 처음엔 견디기가 조금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우선 설악 갱골에선 차라리 어설픈 이웃이 하나도 없어서 좋습니다. 많이 심심하고 외롭지만 그 쓸쓸한 재미도 대단한 것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백석이「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 부분에서「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했지만 나도 그런 심정이라면 핀잔을 주시렵니까. 나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북한강물 청정마을을 지나다니면서, 많이 아쉬워하고 많이 한탄하고 있습니다.

 

풍치 좋은 곳은 헐어서 전원주택을 많이 짓는 것 까지는 좋은데, 산 좋고 숲 좋은 계곡명당 자리는 다 가든이요, 민속식당이요, 카페요, 모텔이요, 러브 호텔이요, 기도원이요, 수련원으로 초만원이니 훗날 금수강산 국토는 어떤 모습이 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날마다 아침 건강한 햇살이 싱싱하고 풋풋합니다.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가 제철에 울고 소쩍새가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서럽게 웁니다. 숲속은 푸른 기가 넘치고 하늘은 맑고 계곡 물소리는 다감하고 저녁노을은 핏빛 눈물처럼 아름답고 별은 총총합니다.

 

앞으로 가슴만 덜 막히고 숨만 덜 가프다면 젊은 시절에 꾸었던 새파란 꿈도 뜻도 이루고 싶습니다.

 

나의 인생의 지도에 장막이 내리기 전에 들풀이나 옹기 같은 농촌의 서정시집이나 연가시집을 하나 소박하게 꾸미고 싶고, 맘 먹은대로 된다면 「다산학」이나 「동학」공부를 열심히 해서 역사서사 시집이나 두어권 남기고 싶습니다.

 

나는 시방 대한민국 어느 문학 단체나 동인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시집이나 「방랑농부」를 발간 했을 때 어느 신문에서 「얼굴없는 시인」이란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부동산 떼거리처럼 어떤 이익이나 허영심 때문에 설치고 날뛰는 꼬락서니가 싫은 것 뿐입니다. 한국시인협회 이사장인 이근대 시인이 서라벌 예대 문창과 동기생이기 때문인지 시인협회 회원이 되라고 권유하지만 소식을 끊고 말았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천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작년에 나하고 두 살 터울의 형님이 심장병으로 급서하고, 얼마전에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넷째 형님이 심장병과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장학금으로 30억을 희사하고 30억으로 학교를 세우고 병영면에 3억 5천만으로 노인정을 설립하는데 희사했다고 하니 내가「금화산에서 불곡산까지」 비망록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 내가 젊은 시절 상공부에 취직시켜 준 은헤를 갚을려고 했는데 하느님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내 인생도 좋은 일은 한가지 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남긴 것 없이 괜히 세상에 와서 죄 많이 짓고 얼마 있으면 나도 영원한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생애가 아무리 개똥밭이어도 이 적막한 산중까지 기꺼이 동행해 준, 나에게는 천사인 안사람이 있기에 세상을 살만 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 그래도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밤은 잣나무 숲 위로 달이 좋습니다.


가평 설곡산방에서 문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