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신흥마을 주민들이 농사준비에 한창이다. 마을주민들은 마늘을 비롯해 더덕, 도라지, 천궁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더덕, 도라지, 천궁 재배 한창... 매월 16일이면 조촐한 마을잔치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이 지나면서 대지의 기운과 생명력이 충천하다.

아직 푸른빛을 내기에는 이른 계절이지만 완연해지는 생명의 신선한 기운을 한껏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맘때면 농촌은 더없이 바쁘다. 텃밭에 호미질을 하는 아주머니는 작은 농사의 즐거움을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곡괭이로 밭 한편을 갈고 있는 아저씨는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흘리며 풍요로운 한 해를 기원한다.

신전면 용화리에 위치한 신흥마을도 요즘 봄 풍경을 만들어 내느라 여념이 없다. 주민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흙길을 밟으며 농사준비에 한창이다.

겨우내 심어놓은 마늘이 새싹을 피워내며 푸른 물결이 마을곳곳을 채워간다. 마을안길은 주민들이 심어놓은 꽃나무들로 알록달록한 풍광을 자랑한다.   

신흥마을은 해남 북일면과 경계지점에 못 미쳐 좌측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재는 사초리와 해남 북일면 내동리간 사내 간척지 제방이 연결되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과거에는 강진구렁(강진과 해남의 경계 들녘)과 진두구렁(마을과 용정사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사내지구의 방파제로 오늘날 바다의 옛것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나 어패류 등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며 반농반어를 이루던 마을이었다.  
 
신흥마을은 일제시대까지 인근 용정마을 4반으로 편제되면서 해가 지는 서쪽방향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서동(西洞)이라 불렸다.

   
▲ 지난 5일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힘찬 구호를 외치며 올 한해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서동이전에는 순풍에 돛을 달고 가는 모습을 충(忠)자에 비유해 충리라는 지명이 따르기도 했다.
 
이후 1983년 도암면에서 신전면이 분리됨에 따라 독립마을로 편제되었고 더욱더 부흥하라는 의미로 신흥이란 지명을 새롭게 얻었다.

현재 마을에는 30호 70여명의 주민들이 다양한 소득사업을 벌이며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다.
 
김영식(68)마을이장은 "현재 주민들은 땅에서 나오는 작물을 키워내며 생활한다"며 "마늘을 비롯해 더덕, 고구마, 약초 등 다양한 작물들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정성을 통해 자라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부터 마을주민들은 사방 산천에 지천인 갖가지 약초와 산나물을 캐서 생계를 꾸려 왔다. 그만큼 밭이 많았다.

지금은 부러 조성한 약초밭까지 더해져 사방이 약초다. 눈에 보이는 게 약초이고 발에 밟히는 게 약초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창출, 천궁, 당귀 등 종류도 다양해 약초천국이 따로 없다. 
 
1980년대는 논농사보다는 밭에서 나온 마늘을 주로 생산해 소득을 올렸다. 주민들은 마늘을 팔아 농토를 넓혀가면서 인근 마을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현재는 15㏊면적에서 한 해 평균 60여톤 가량의 마늘이 생산돼 마늘재배 주산지로써 명성을 더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부농의 양반가옥이다. 예사 마을에선 보기 힘든 큰 집 너 댓 채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신흥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신흥마을은 여러 성씨들이 함께 거주하는 다방촌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 마을에 모여 있는 성씨만도 10여개가 넘는다.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다보니 흔히 말하는 텃세는 남의 동네 얘기이다. 영농철에는 서로 농사를 도와주며 단합된 힘을 보여주고  겨울철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매월 16일이 되면 마을은 더없이 시끌벅적이다. 이날이면 전 주민이 마을회관에 모인다. 신흥마을잔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잔칫날이 되면 주민 6~7명이 조를 이뤄 갖은 음식을 준비한다. 매월 마을잔치를 여는 비용과 수고도 적지 않을 터인데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힘을 모은다.

그렇게 주민들의 잔치가 마련되고 있는 지도 올해로 10여 년이란 세월을 넘기고 있었다.
 
삶이 부지런한 주민들은 노는 것도 부지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신흥마을은 일 년 내내 재활용품이 창고 한 구석에 모아진다. 모아진 물품이 쌓이면 내다팔아 돈으로 만든다.

그러한 과정을 일 년 내내 하다 보면 제법 많은 돈이 모아진다. 모아진 돈은 주민들의 관광비용으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

주민들은 지난해 120만원을 모아냈다며 입가에 미소가 가득이다. 오는 8일에는 부산으로 여행을 계획 중이라며 자랑을 더했다.
 



 

   
 

▶신흥마을에 가면
신흥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3월3일에 제사를 지낸다.

보통 마을에서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를 올리는 경우는 당산제 등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날 주민들은 마을에 거주했던 오병오씨를 위한 제사를 지낸다.

오씨는 지난 1982년 마을에 논 4,628㎡(1,400평)과 임야 2,314㎡(700평)을 희사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오씨를 위한 제를 20여년 째 올리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인터뷰  I  마을주민 홍향자 씨 ━ "남은여생 값지게 보낼랍니다"

쉼 없이 한해를 준비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은 급한데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한걸음에 내달릴 거리인 텃밭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주민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자신의 몸보다는 그 외적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겼기에 농촌에서 주민들의 삶이란 늘 그런 것이었다.
 
이날 주민 홍향자(71)씨도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의 텃밭으로 향했다.

66㎡(20여평) 남짓한 텃밭에 빼곡히 자리 잡은 마늘만이 홍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홍씨는 마늘밭에 잠시 앉아 5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홍씨는 "심장수술을 받은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며 "그때 수술을 해도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병원의사의 얘기에 가족들은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홍씨의 눈가는 삽시간에 붉어졌다.
 
하지만 금세 미소를 머금은 홍씨는 "다행히 수술이 잘돼 다를 나보고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라고 부른다"며 "늘 제2의 삶을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귀한 생명을 다시 얻게 된 만큼 남은여생을 값지게 보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홍씨는 "땅에서 나오는 것들 치고 신흥마을에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다"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