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신월마을은 지난 2000년부터 결명자재배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밭의 면적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 신월마을은 한 해 평균 2톤 정도의 결명자를 생산하고 있다.
산나물, 밭작물 유명... 영암과 군계, 농토의 70%가 영암땅

봄이 올 듯 말듯 망설인다. 겨울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듯 매서운 바람만 더욱 기승을 부릴 뿐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로 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논이 갈리고 밭이 가꿔지면서 농촌의 풍경은 점차 새 옷을 갈아 입어가고 있다.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운데 찾아간 곳은 옴천면 신월마을. 강진과 영암의 군계에 있는 신월마을은 영암군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서야 마을입구를 볼 수 있었다.

신월마을 농토의 2/3는 영암군에 속해 있다. 이렇다보니 신월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암에서 밭 갈아 강진에서 밥해 먹네'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군의 경계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고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신월마을 주민들의 생각이다.
 
신월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영청도에서 훈련판관을 지낸 박만기라는 선비가 귀양 와서 정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마을은 지형이 높아 달이 가장 오래 비추어지고 동에서 떠오른 달이 항상 새롭게 보였다고 하여 신월(新月)이라 부르게 되었다.
 
   
▲ 산 중턱에 위치한 우산각이 마을의 풍광을 더하고 있다.
신월마을은 지난 1970년대 후반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면서 50여호에 20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했을 정도로 번성했으나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현재는 12호 20여명의 주민들만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월마을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올해 70대인 박선동 이장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

그래서 마을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결명자 재배나 고추밭을 소일거리로 하기는 하지만 크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마을일을 공동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기 집 손질이라도 잘되면 다행이었다.
 
이에 박선동(71)이장은 "젊은 일손이 없다 보니 마을을 가꿔나갈 힘도 없는 실정이다"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저마다의 노력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생산요소는 한정돼 있고 지리적 영향으로 축산업이나 비닐하우스 시설 등의 새로운 소득 창출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력이나 지리적 인프라 등이 다른 마을에 비해 열악하다는 평가였다. 
 
그래도 주민들은 살기 좋은 마을을 이뤄가기 위한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2000년도부터 주민들이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결명자재배사업은 그러한 노력 중 하나였다.

마을 2.5㏊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는 결명자는 전부 무농약으로 실시되고 있다. 신월마을에서 수확되는 결명자의 양만도 한 해 평균 1,600~2,000㎏ 정도. 특히 고령의 주민들이 재배하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결명자 재배면적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 회관에 모여 앉은 주민들이 밭에서 갓 수확한 생강을 손질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여기에 주민들은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7.8㏊ 면적에 저 농약을 실시하면서 친환경농업단지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신월마을은 올해부터 무농약과 유기농법을 도입해 친환경 쌀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예부터 신월마을은 산이 곧 무한한 자원의 생산지였다. 벌목한 나무 등은 난방원료와 버섯재배 용도로 판매됐고 고사리와 두릅 등 여러 산나물도 산을 통해 얻어내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목초방목을 전문적으로 하는 주민들도 더러 있었다. 이 때문에 1950년대 이전에는 마을진입로 등지에 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거래물품은 대부분 나무나 약초, 산나물 등이 주를 이루었다. 산골마을에 2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번성하게 된 것도 그러한 영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은 석회 성분이 많아 광공업이 발달하기에 좋은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 1980년대 후반에 고려시멘트에서 시멘트 원료인 석회를 채광하기 위해 개발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일제시대 때는 일본인들이 무연탄, 석회, 금을 채광하기 위해 많은 인부들을 불러 모아 작업을 진행했었다.
 
현재 신월마을은 다양한 교류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전기안전공사 전남남부지사와 1사 1촌 자매결연 협정서를 교환하고 전기설비 문제해결 및 응급지원과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진단 등을 지원받게 됐다.
 
또 지난 2007년도에는 영암소방서와 자매결연을 통해 산불예방교육 및 소화 장비지원 등을 제공 받는 등 주민들의 삶의 질도 차츰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인터뷰 ㅣ 박선동, 박재원 씨
   

"품앗이 사라져 안타까워"
주민들을 위해 비료포대를 옮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박선동(71)이장과 박재원(71)씨.
 
올해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신월마을에서는 가장 젊다. 더욱이 이들은 마을에서 반평생을 함께 생활해오고 있는 둘도 없는 죽마고우이다.  
 
이에 박씨는 "옛날에는 농사일이 힘들었지만 젊은이가 많아 품앗이가 활발하게 이뤄졌었다"며 "요즘은 기계로 농사를 지어 힘은 덜 들지만 젊은이가 많았던 옛 시절 추억이 떠오를 때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농사일에 대해 백씨는 "마을의 농지면적이 경지정리가 되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며 "대부분 농기계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군계지역에 위치해 있는 마을에 대한 군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다른 마을에 비해 소촌이다 보니 마을주민들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며 "가진 것은 없어도 주민들이 서로 아끼고 사는 정다운 마을"이라고 마을자랑을 했다.  
 
끝으로 박씨는 "넉넉한 곳간에 풍요롭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는 신월마을을 만드는 것이 주민 모두의 바람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