疊疊山中<첩첩산중> 자연이 오롯이 살아있는 청정지대
疊疊山中<첩첩산중> 자연이 오롯이 살아있는 청정지대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1.02.25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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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동면 석동마을

▲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석동마을은 관내에서도 오지중의 오지마을에 속한다. 하지만 자연이 살아있는 청정지대는 석동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강진 석동, 장흥 석동 나란히 공존

매서운 동장군의 기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물러간 자리에는 봄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봄을 알리는 첫 절기인 우수가 지나면서 눈이 녹아 비처럼 흐르고 얼었던 땅도 녹아내렸다.

서서히 다가오는 봄기운이 잔뜩 움츠리고 있던 농촌마을을 살며시 깨우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온 대지를 적시고 있는 가운데 길을 따라나선 곳은 군동면 석동마을.

관내에서도 오지마을 중의 하나인 석동마을을 찾아 마을에 녹아 있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본다.
 
군동면 동북쪽에 자리한 석동마을은 마을 진입로도 찾기 힘든 오지마을 중의 하나이다.

인근 마을주민들 조차 석동마을에 간다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오지중의 오지였다.

마을로 향하는 동안에도 좁다란 도로가 산자락을 이리저리 굽어 돌았다. 차로 힘겹게 산을 넘어서야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좁다란 마을 안길이 이어졌다. 마을 안길이라기 보단 농로에 가깝다. 그나마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된 것은 불과 3년 전이었다.
 
석동마을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사람이 앉는 자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과거 자리골이라 불렸다.

이후 마을지명 은 자리 석(席)과 마을 동(洞)을 합쳐 석동이라 불리게 됐다. 현재 마을에는 11가구 20여명의 주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김덕곤(59) 이장이 반겼다. 올해로 4년째 마을이장을 맡은 김 이장은 "고생 했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험난한 길을 오느라 수고했다는 얘기다.
 
마을에 대해 김 이장은 "첩첩산중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지만 이곳에서도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영농사업을 펼치며 생활하고 있다"며 "비록 20여명 남짓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모두가 힘과 뜻을 모아가며 살기 좋은 마을로 가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석동마을을 살펴보면 행정 구역상 강진군에 속해 있지만 토지 등은 장흥군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장흥군과 가깝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동선 역시 험난한 길을 따라 강진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반대쪽으로 뚫려 있는 마을 진입로를 따라 장흥으로 오고간다. 이렇다보니 주민들의 생활권은 대부분이 장흥에서 이뤄진다.
 
석동마을은 본래 장흥읍 수전리 석동마을과 한 마을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위치, 교통, 지명 등 여러 정황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과거 자리골이라 하여 장흥 석동마을과 강진 석동마을이 한마을이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석동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9년 하우스 감자재배를 시작하고 있다.
이후 일제 시대 때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능선을 따라 강진과 장흥의 경계선이 만들어졌고 석동마을은 군동면 용소리 신기마을에 속해진다.

이어 지난 2007년 독립마을로 분리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석동마을은 산골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다. 그만큼 골짜기도 많고 산을 넘나드는 고개도 적지 않다.

특히 모사골, 잡피골, 진골, 진방자 등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병사와 관련된 지명들은 과거 석동마을이 군사 주둔지 또는 격전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사골은 마을 뒤편에 위치한 골짜기로 병사들이 피난을 와서 갖은 모사를 했던 장소였고 잡피골은 병사들이 피신하던 골짜기라 하여 부른 지명이다.

진골과 진방자는 병사들이 진을 치고 공격해오는 적을 방어했던 골짜기였다.
 
석동마을은 오지의 산골마을이라는 꼬리표가 뒤따르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자연이 살아있는 청정지대이다. 봄에는 새로운 자연이 살아나는 소리가 들리고 여름에는 숲 속의 시원한 바람이 있다.

가을에는 산 속 마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흰색의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인간과 자연이 벗 삼아 공존하고 있는 마을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최근 들어서는 귀농가구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귀농해 온 한지수(42)씨에 이어 지난 1월에는 권민도씨가 생활의 여유를 찾고자 마을로 찾아들었다.

소득을 위한 귀농보다는 도시의 바쁜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 인해 마을에는 30대를 시작으로 40대 부부와 70대 노인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요즘 석동마을은 감자 수확으로 한창이다. 비록 한 농가에서 13,223㎡(4천평) 규모의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지만 지난 2009년부터 마을의 새로운 소득 작물로 자리 잡아가면서 주민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관심만큼이나 일손을 돕는 주민들의 손길도 많다. 한 해 수확되는 양도 10톤 정도에 이르면서 겨울철 주민들의 소득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석동마을에는 그 흔한 마을회관 하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느 하나 불평 불만을 갖는 주민들도 없다. 그날 그날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집이 마을회관이 되고 그들만의 놀이 공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동마을에 가면

군동면 신기마을에서 마을로 향하는 산등성이를 넘어 마을을 향하다 보면 논 한 가운데 놓인 바위 한 기를 볼 수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를 장군바위로 부른다.
 
구전에 의하면 바위는 힘센 장사가 던져 놓았다고 전해지며 바위 상단부에 장군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고 하여 장군바위로 불리고 있다.

바위의 무게와 크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측면 둘레가 8~10m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인터뷰  I  마을주민 박국자 씨 - "새들의 지저귐과   산들바람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니..."

따스한 봄 햇살이 마을을 뒤덮고 있을 무렵 집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국자(81)씨를 만났다.

하얀 백발에 유모차를 의자삼아 앉아 있는 박씨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따스한 봄기운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이에 박씨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매일 방안에서 지내기 일쑤였다"며 "모처럼만에 마당으로 나와 취해보는 휴식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게 되면서 현재 홀로 생활하고 있는 박씨는 마을에서도 최고령자이다. 고향인 장흥을 떠나 석동마을에서 생활한 지도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을에 대해 박씨는 "비록 조용한 산골마을이라고는 하지만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 애기들도 많았고 초·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도 많았던 시끌벅적한 마을이었다"며 "산간 오지 마을로 타 마을에 비해 번창하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이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살아가는 화목한 마을이 석동마을이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씨는 "산과 물이 있어 좋고 새들의 지저귐과 산들바람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니 이보다 편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어디 있겠냐"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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