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사마을은 성전면에서도 상업의 중심지로 지리매김했던 곳이다. 마을은 지난 1970년대 초반 30여개가 넘는 상가들이 들어 서면서 상업활동에 최대의 정점을 이루기도 했다.
평야지대 많아 농사짓기에도 좋아

   
이농현상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등은 오늘날 농촌마을의 명절 분위기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설날이면 들판에서 연을 날리던 아이들의 모습도 사라졌고 그 흔한 제기차기나 팽이놀이도 모습을 감춘지 오래다.

하지만 작은 풍습마저도 지켜 내려는 주민의 노력에 명절이 더없이 즐겁기만 한 마을이 있다. 성전면에 소재한 신시마을이 그 곳. 마을을 찾아 주민의 신명나는 명절 이야기를 풀어본다.
 
과거 신시마을은 초장골 또는 신호동으로 불리었다. 여기서 말하는 초장골은 마을 서남쪽 종자기봉의 조사우씨 밭 부근으로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초분을 하여 불러진 이름이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개편으로 신호동의 신(新)자와 면소재지 소재 시가지라는 뜻의 시(市)자를 붙여 신시(新市)라고 개칭했다.
 
마을의 최초 입향 성씨는 광산 김씨로 1800년대 초에 마을일대로 이거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마을은 교통이 편리하고 평야지대로서 농사짓기에도 알맞아 마을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이점으로 김해김씨, 밀양박씨, 탐진최씨, 진주강씨 등 10여개 성씨들이 이거해 오면서 자연스레 마을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신시마을은 성전면 내에서도 상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했던 곳이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마을은 일제강점기시대부터 행정을 보던 면사무소와 우체국, 지서 등 관공서들이 자리 잡고 있던 대표적인 시가지였다.

이는 마을이 강진읍을 오가는 외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마을 뒤편 야산에 회석 등이 많아 일찍이 광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 마을 주민이 설 명절을 앞두고 회관에 모여 앉아 떡국을 나눠먹고 있다.
이로인해 다양한 생산 활동에 따른 유동인구가 많았고 시장과 우시장 등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왕래는 더욱 많았다.
 
지난 1960년대 대부분의 농촌마을들이 상업화 등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침체기를 겪었다면 신시마을 만큼은 오히려 성장의 물결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마을이 가장 번창했던 시기인 지난 1970년 초반에는 30여개가 넘는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상업 활동에 최대의 정점을 이루었고 마을의 발전 또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 시기에 마을주민들의 소득 또한 덤으로 따르기 마련이었다.
 
김소중 이장은 "다양한 상업 활동에 따른 사람들의 잦은 왕래와 지리적 이점 등은 오늘날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며 "이는 주민들 서로가 형제처럼 우애를 나누고 텃새가 없는 마을을 이루는 좋은 버팀목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의 말처럼 신시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주민들 서로가 한 가족을 이루며 다양한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신시마을의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겁기만 하다.
 
지난 26일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로 한바탕 잔치분위기가 열렸다. 설을 앞두고 마을부녀회원들이 떡국을 빚어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회관에 모여 앉은 30여명의 주민들은 한데 모여 떡국을 즐기며 명절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강윤처 마을부녀회장은 "3년전부터 시작된 마을 떡국나누기 행사는 신시마을의 또 하나의 전통행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부녀회원들이 김과 자반 등을 판매하고 얻은 수익금으로 떡국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시마을은 설 명절 때면 주민들이 한 데 모여 합동세배를 올리는 전통만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마을에서 합동세배가 행해지고 있는 것도 올해로 50여 년째. 설날이 되면 마을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서로 세배를 올리고 떡국을 나눠 먹는다.

여기에 마을청년들은 마을 어르신 댁을 일일이 찾아가 또다시 세배를 올리는 풍습까지 잇고 있다.
 
설날에 내오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독특하다. 지난해 집안에 상(喪)을 당한 주민이 기본 음식을 준비하고 여기에 출향인과 마을주민이 돈을 더해 설날 음식이 차려진다.

이는 집안의 어려운 일에 주민들이 함께 슬픔을 나눠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을 당한 주민이 음식을 준비하는 풍습으로 올해는 지난해 모친상을 당한 김소중 이장을 비롯해 박희철, 박강근씨 등이 맡고 있다.

 


 

 인터뷰 - 마을주민 안병하 씨 - "다양한 수익사업 부촌마을 성장"

   
신시마을회관 입구에는 '고향'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이 적힌 비석이 놓여 있다.

지난 1998년 세워진 비석은 주민 안병하(65)씨가 마을회관 준공을 축하하며 글을 새겨 넣은 것. 마침 마을회관에서 주민과 자리를 하고 있던 안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에 대해 안씨는 "마을주민과 더불어 마을을 찾는 출향인사들에게 고향의 따스함과 애향심을 심어주고자 글을 남기게 되었다"며 "고향을 사랑하는 주민이 있기에 신시마을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고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마을의 자랑거리로 50여 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상조회도 빼놓을 수 없다"며 "신시마을 상조회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더욱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마을 애경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과거 신시마을은 성전면 내에서도 가난한 마을 중 한 곳 이었다"며 "주민들이 마을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 온 결과 오늘날 공동재산과 다양한 수익사업을 펼치는 부촌마을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안씨는 "점차 나이가 들면서 명절 때면 마을을 찾아오는 선배나 친척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신시마을에 가면 - 성전의 상업역사 고스란히 전해오고

   
신시마을은 예부터 상업이 발달하면서 지난 1970년대까지 방앗간, 공판장, 엿 공장, 석물공장 등이 즐비했다.

오늘날 그 모습들은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옛 모습을 잠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예전 방앗간을 그대로 재 디자인해 만든 가을걷이 식당이 그 곳. 이곳은 주민 김영옥(작고)씨가 지난 1960년대 후반까지 방앗간으로 운영해 오던 곳이었다.

식당내부는 방앗간 당시 사용했던 각 종 기기들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여느 식당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가을걷이 식당은 마을출향인사를 비롯해 관광객들에게 꼭 한번쯤 들려보고 싶은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