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2) -다시 학업할 수 있게 해주신 장원종 선생님
잊을 수 없는 사람(2) -다시 학업할 수 있게 해주신 장원종 선생님
  • 특집부
  • 승인 200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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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채(강진향교 전교)
▲ 고홍채 전교(오른쪽)가 스승인 장원종 선생님을 모시고 잠시 포즈를 취했다.


70여년 가까운 생활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생활해왔지만 평생을 두고 머릿속에 남아 잊지못할 한사람이 가슴에 남아있다. 그 사람은 중학교 시절 은사님이였던 장원종 선생님이다.

선생님과의 첫만남은 1950년 6·25사변이 발생할때의 일이였다. 당시 금릉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에 사변을 맞아 수없는 고생을 하게 됐다. 금릉중학교는 현재의 삼양볼링장의 위치해 있었고 8월경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인근에 위치한 소방대 사이렌을 공습하려던 아군기의 기관포사격이 학교로 날아왔다. 학생들은 모두 교실 한켠에 붙어 공포에 떨어야했고 기관포사격은 학생들의 자리에서 50여㎝정도 옆으로 총알이 지나갔다.

나는 죽음의 공포를 처음으로 느꼈던 그날의 충격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두달여간을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다. 어린나이에 큰 충격을 받은 탓에 일종의 우울증상을 나타내고 생활을 하고 있던중에 학교친구들과 함께 한분의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한번도 수업을 받아본적도 없고 처음보는 얼굴의 선생님이 바로 장원종 선생님이였다. 군동 관덕이 집이셨던 선생님은 일주일간을 매일 학교친구들과 집을 찾아왔고 등살에 떠밀리다 시피해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학교에 갓 부임한 장선생님의 계속된 권유가 없었다면 당시 나는 학업을 포기하게 됐을 것이다. 장선생님의 노력덕분에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강진농고를 마치고 수원농과대학 중등교원양성소를 거쳐 교사의 길을 걷게됐다.

58년 장흥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 후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장선생님과의 만남은 묘한 인연처럼 이어졌다. 86년 성요셉여고에 있던 강진여자중학교가 분리되면서 나는 교감으로 발령받아 강진여중에 부임하게 됐다. 나는 강진여중에서 거의 20여년만에 장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장선생님은 평교사로 근무를 하고 계실때라 나는 어색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장선생님은 성장한 제자를 보고 한없이 기뻐해줬고 강진여중에서 근무한 4년내내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보내줬다.
교직을 떠나 일반인으로 돌아온 지금도 장선생님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일일이 학생들을 챙겨주던 장선생님의 인자함은 아직도 남아있고 제자를 바라오는 사랑스런 눈빛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천식증상때문에 강진여중 앞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가지 못하면서도 교직생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항상 학생들 곁에 있고 싶어했던 장선생님은 진정한 교육자의 표본이고 교사가 걸어나아갈 길을 보여준 참교육의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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