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이끼 낀 마을 담장 700년 역사 말해주고
[마을기행]이끼 낀 마을 담장 700년 역사 말해주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1.01.14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영면 백양마을

▲ 수인산자락을 배경 삼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농촌의 풍광을 더하고 있다. 백양마을은 병영면내에서도 가장 먼저 설촌 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 교육열 대단... 마을출신 학자들 많아

지난해 내린 폭설로 산자락 곳곳은 설경을 이루고 있다. 주민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겨줬던 모습들은 뒤로한 채 자연의 멋을 맘껏 뽐내는 모습이 참으로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순백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발길이 머문 곳은 병영면 백양(白羊)마을. 새하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온통 하얗게 뒤덮인 산자락을 배경삼아 마을의 모습 또한 하얗게 빛나고 있으니 가히 백양이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마을 표지석 위에는 대리석으로 빚어낸 하얀 양 한 마리가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마을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앉아 마을역사책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흥군 성불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양마을은 병영면소재지에서 장흥방면으로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병영면에서 가장 먼저 설촌 된 마을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마을이 형성된 시기만도 지금으로부터 700여 전. 백운선사가 마을에 사찰을 건립하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지난해 내린 폭설로 산자락 곳곳은 설경을 이루고 있다.
주민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겨줬던 모습들은 뒤로한 채 자연의 멋을 맘껏 뽐내는 모습이 참으로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순백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발길이 머문 곳은 병영면 백양(白羊)마을. 새하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온통 하얗게 뒤덮인 산자락을 배경삼아 마을의 모습 또한 하얗게 빛나고 있으니 가히 백양이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마을 표지석 위에는 대리석으로 빚어낸 하얀 양 한 마리가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장흥군 성불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양마을은 병영면소재지에서 장흥방면으로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병영면에서 가장 먼저 설촌 된 마을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마을이 형성된 시기만도 지금으로부터 700여 전. 백운선사가 마을에 사찰을 건립하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과거 백양마을은 논보다는 밭이 많았다. 이 때문에 밭농사가 발달되면서 깨, 콩 등 잡곡농사를 비롯해 고추, 상추, 무 등 원예작물을 많이 짓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특히 고추재배는 지난 1980년대까지 병영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면서 '백양고추'하면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지난 1994년도 경지 정리로 인해 대부분의 밭이 논으로 변경되면서 점차 그 유명세를 감추게 되었고 오늘날 백양마을의 주민은 80% 이상이 미맥위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33호 70여 명의 주민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옛날 백양마을이 백양고추로 유명세를 떨쳤다면 오늘날 백양마을을 드높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주민 한경채씨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한씨는 "현재 마을에는 10여 농가에서 감나무 재배를 실시하고 있다"며 "지리적 이점과 친환경 재배 등을 통해 높은 당도를 자랑하고 있어 마을의 고소득 작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씨가 말한 지리적 이점이란 바로 토양과 일조시간을 뜻했다. 백양마을의 토양은 대부분이 사질토를 이루고 있어 물 빠짐이 좋았고 이는 나무의 성장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과수의 낙과현상을 줄이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 마을의 지형적 특성상 일조시간이 길다는 것도 과수의 당도를 높이는데 한 몫을 담당하면서 현재 마을에는 5㏊에 이르는 면적에 감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또 과수농가들은 감나무 주변에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친환경재배에 나서고 있어 품질에서도 우수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쯤에서 또 다른 주민을 통해 과수재배에 따른 마을의 변천사를 엿들을 수 있었다.예부터 마을에는 다양한 수종들이 재배되어 왔다고 한다.

지난 1900년대 초에는 밤나무가 많았고 중반에 들어서는 목화나무가 주종을 이루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뽕나무 재배가 활발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감나무가 마을 곳곳을 수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 지난 1997년 세워진 백양정은 마을에서 최고의 명당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제강점기 시대 당시 일본인들이 소득사업을 위해 이식사업을 했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을 수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마을에 식재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백양마을 일대가 그만큼 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뿐이었다.

또한 1980년대까지 주민들 대부분이 화목난방을 사용해 왔다는 점도 마을에 나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일부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 백양마을은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남달랐다.

현재 마을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백양교회의 영향도 컸지만 교회설립 이전에 자리 잡고 있던 금화학당은 주민들에게 있어 중요한 교육기관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도 마을출신 대학생들이 많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나가려는 인물도 그만큼 많았다.

금화학당은 1933년 일제의 명령으로 개량서당으로 명칭이 개칭된데 이어 1944년 자진 폐교돼 역사의 현장으로 사라졌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만으로 백양마을 주민들의 교육적 열망과 민족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출신 인물로는 목포시청 사회과장을 역임한 김채근씨, 서울농대 교수를 역임한 김천수씨, 백양교회 목사를 지낸 승학수씨, 보성전문(현 고려대)출신으로 금화학당 교사로 활약한 정남석씨, 미국에서 신학목사로 활동한 박한진씨, 명지대 교수를 역임한 정인석씨, 서울파출소장 등 경찰공무원으로 활동한 문광섭씨, 동력자원부 원자력과장을 역임한 김영준씨 등이 있다. 


◈ 인터뷰 - 백양마을 주민 김채안 씨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백양교회를 둘러보던 중 주민 김채안(83)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양교회 장로를 지낸 김씨는 이날 교회당 주변을 둘러보고 길을 나서는 중이었다.
 
교회에 대해 김씨는 "마을주민 80%이상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며 "백양교회는 마을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백양교회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현 위치에 금화학당이 자리해 주민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며 "이후 교회부속 교육기관으로 자리하면서 주민들의 문맹퇴치와 초등교육 및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이바지했다"고 덧붙였다.
 
마을에 대해 김씨는 "교회와 교육기관 등의 영향으로 마을에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았다"며 "방학 때면 대학생들이 요시찰 대상인물로 일본경찰의 감시가 극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9년 부인과 사별해 현재 홀로 생활하고 있는 김씨는 "반 평생 함께 해 온 집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당시에는 모든 것이 허망하고 몇 날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며 "아마  좋은 곳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끝으로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많은 모습들이 사라지거나 변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며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주위에 대한 믿음이며 그 믿음이 있으면 결코 잃어도 잃는 것이 아니고 변해도 변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백양마을에 가면 - 110년 역사 백양교회


백양마을에서 눈여겨 볼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백양교회이다.

1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 백양마을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백양교회는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한곳이다.
 
지난 1984년 경남 단성현감을 지낸 바 있는 김형석씨가 서울에 왕래하던 중 1901년 미국예수교 선도사에게 전도를 받고 귀향하여 그 해 5월 자신의 사랑방에서 교인들을 모아 놓고 첫 예배를 드렸다.

이후 교세가 확장하자 교인들과 협력하여 교회를 신축한 것이 백양교회였다. 현 교회당은 지난 1908년 5월 준공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