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가지의 福이 깃든 만복마을
萬가지의 福이 깃든 만복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1.01.0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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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량면 만복마을 -
▲ 지난 31일 내린 폭설로 만복마을은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가옥들 뒤편 강진만 너머로 도암 만덕산이 우뚝 솟아 있다

마을뒷편 강진만 너머로 만덕산 우뚝솟아 마을 감싸고 있는듯

관내에는 만복을 불러오기 위해 주민들의 갖은 노력이 엿보이는 마을이 있다. 칠량면소재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만복마을이 그곳.

청주김씨가 터를 잡은 이후 도암면 만덕산이 우뚝 솟아 복이 절로 들어온다고 하여 그 이름 또한 만복(萬福)마을이다.

만복마을은 칠량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마을뒤편 강진만 너머로 만덕산이 우뚝 솟아 있어 마치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 보여 졌다.
 
'여기는 만복. 행운의 문을 지나는 당신 만복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만복마을을 지나는 관문에 적혀 있는 글귀다. 마을 관문에 위치한 5m 남짓한 터널에는 이러한 글귀들이 마을을 오가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만복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가옥 담벼락에 적혀 있는 글귀들이다. 만복을 부르는 글귀부터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얘기 등 다양한 글귀들이 마을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여기에 복주머니와 돼지그림, 소나무 위를 노니는 학들의 모습은 색다른 즐거움까지 주고 있어 마을을 찾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 만복마을에 들어서면 복을 불러오는 다양한 글귀와 그림들이 오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주민 김길남(63)씨는 "마을에 글귀가 적혀진 이후로 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이 더욱 높아졌고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갖게 되었다"며 "주민들이 서로 돕고 생활하면서 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처럼 마을에 글귀와 그림이 새겨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부터. 주민들은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30여 가옥 곳곳에 희망과 복을 전하는 글귀들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만복마을에 만복을 바라는 글귀들이 가득하니 가히 만복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만복정 또한 마을에 만복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워졌다.

▲ 회관에 모여 앉은 주민들이 힘찬 구호를 외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 만복정은 본래 쌀 방앗간과 마을 공동우물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과거 마을은 강진만의 바닷물이 마을 바로 인접한 지역까지 들어왔으나 1920년~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간척지 조성 사업이 진행되면서 농경지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강진만에서 꼬막, 맛, 석화 등 어패류를 많이 채취하여 소득을 올리던 주민들은 만덕간척지의 영향과 환경오염으로 채취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바닷물을 막아 넓은 농토를 얻었으나 바다에서 얻어왔던 수많은 자원은 잃게 된 셈이다.
 

▲ 마을정자나무는 지난 1982년 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로 주민들의 소득 또한 점차 바뀌게 되었다. 지난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주민들이 반농반어의 삶을 이어왔다면 현재 마을주민들은 복합영농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최근 마을에는 축산농가가 점차 늘고 있다.

마을에서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농가는 현재 4가구로 사육되고 있는 소는 현재 150여두에 이르고 있다.

칠량면 인근 마을에 비해 많은 사육양은 아니지만 점차 축산농가가 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올해는 아스파라거스재배단지도 조성되면서 복합영농의 모양세를 갖춰가고 있다.
 
마을출신 인물로는 20대 칠량면장을 역임한 김기권씨, 칠량우체국장을 역임한 김기상, 김황진씨, 의학박사를 지낸 김문식, 김평윤씨, 광주초등학교장을 역임한 김기평씨, 순천 초등학교 교감을 재임한 김순조씨, 건설부 국토관리청 사무관을 역임한 김청운씨, 칠량면사무소 부면장을 역임한 김기갑씨 등이 있다.

 


 

▶만복마을에 가면-백원당처사김대수효행비

 만복마을 입구에서 마을회관으로 향하다 보면 도로 양 옆으로 세워진 두 개의 비석이 눈에 띈다.

이중 마을회관에서 왼쪽편에 위치한 비석은 가로 46㎝, 세로 136㎝ 크기로 백원당처사김대수효행비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지난 1985년 세워진 비석은 주민 김대수(1830~1883)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김씨는 파지대면 둔덕촌(현 도암면 덕서리 인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꿈이 하도 이상하여 급히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모친이 위독했다.

이때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으니 3일을 더 살았다고 한다.

또 26세때 부친을 여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니 그의 행동을 본 스승과 친구들이 "효는 백행의 근본인데 대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여 호를 백원당(百源堂)이라 하였다고 한다.
 
김대수효행비 맞은편에 세워진 유인해남윤씨열행비는 주민 윤이임(여·91)의 효성을 기리는 비이다. 윤씨는 16세때 남편과 결혼하였으나 3년 뒤 남편이 병들자 밤마다 목욕재계를 하며 하늘에 빌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날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어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열행비는 지난 1984년에 세운 비로 가로 45㎝, 세로 134㎝ 크기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윤씨는 현재까지 마을에 거주하며 주민들과 함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마을주민 김광진씨┃"어른공경 지금도 훌륭"

폭설로 인해 온통 눈으로 뒤덮인 마을에서 주민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던 이른 아침, 말끔한 정장차림에 대문 앞을 나서고 있는 주민 김광진(86)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김씨는 칠량면소재지에 위치한 한 의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중이었다.

마을에서 의원까지는 대략 1㎞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
 
이에 김씨는 "매일 1시간 정도 산책을 하며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기 때문에 이정도 거리는 거뜬하다"며 "위염과 소화불량이 있어 잠시 의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김씨 19대손인 김씨는 강진향교 유도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마을에 대해 김씨는 "만복마을은 유교사상 및 선조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어른을 공경하는 등 순박한 인심의 마을로 소문나 있는 곳이다"며 "여기에 만복이 깃들어 있는 고장이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냐"며 질문을 던졌다.
 
올해 소망에 대해 김씨는 "나이가 들다보니 부인도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아 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며 "새해에는 우리 가족들을 더불어 모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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