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전각의 의미
배전각의 의미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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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
배전각이 무엇이었고 또 어디에 있었는지도 잊혀졌다. 그러나 병영면 하고마을의 동북에 작천으로 가게되는 도로변에 있었던 옛 병영과 관련된 건물의 명칭이며 정월과 동지, 그리고 임금의 탄신일이면 이 건물의 마당에 붉은색의 의장기를 세워놓고 형식을 갖춘예로 절을 올리던 즉 존경의식을 실행하던 장소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배전」이라는 말이나 전석조차도 묵혀져서 모르게 되었는데 알아 보려고도 하지않는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하여 문헌과 의미로 나누어서 엮어 알리니, 언젠가는 복원하고 옛날 의례를 재현 하면서 옛을 보고 배우는 자료의 지남이 되기를 빈다.

배전각의 위치는 배진강(316-1)아래쪽에 홍교(323-3)가 있고 그 옆 도로(1-2)와 도로밑 논(1-9) 근처로 추정이 되며 경지정리 이전일때에는 나무들이 서있었다한다.

평시에 바닥을 파내고 가로질러 돌가 흙으로 둑을 쌓아 강물을 막아둔 배진강은 병영면 하고(大池), 중고(二次), 서리(一次), 내동( 池), 작천면 삼렬(牛巨池), 용동(三次)에 있는 것들과 함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기운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했다는 다섯 개의 연못이며, 농사짓는 관개용수로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수원지 이다.

그런데 누구에 의해서 무슨목적으로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련(白蓮)들이 자생하고 물속에는 가물치,메기,붕어등이 자라고 있어 낚시꾼이 모여들고, 또 윤국진이 지었다는 병영가 3절 끝부분에 「저 배진강 건너가니 연잎도 크다」와 작자미상인 병영부르스 2절 처음에는 「배진강 푸른물 에 놀던 물새야」등은 강의 명칭으로 만 알고있지「배전각」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옛 문헌을 찾아서 의미와 함께 밝힌다.

강진의 자료로는 첫째 1865년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교량(橋梁)편에 석교, 작천교, 배전각홍교 가 등제 되었고, 두번째 홍교안내판에는 107세가 된 유한계(劉漢啓1688-1794)가 1790년에 오래 살았다는 뜻으로 숭록대부의 직위를 받자 그 기념으로 자금을 대고 양한조가 감독을 맡아 건립하게된 「무지개 다리」라고 적혀 있다.

다음 타지역의 자료로는 병와 이형상(1653-1733)이 제주목사에 재임때인 1703년 11월 11일에 엮은 탐라순력도가 있다. 그 내용에 남제주군에 있는 대정을 순회하던 의식인 배전에 관한 그림이 있다.

배전각이란 현재의 배진강근처에 있었던 건물이며 근처 연못은(본래 명칭은 1765년 간행 여지도서에 의하면 대지(大池 2405척, 길이6척)이다,)나라의 길흉사와 임금이 오래살기를 비는 글인 전문(箋文)을 보내기 전에 이 건물의 마당에다 의식에 사용하던 깃발들을 세워놓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큰절을 올리던 장소이다.

그러나 1894년의 동학혁명때 인지 아니면 그후에 없어졌는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 근처의 강물을 가두어둔 배진강의 유래도 이 배전각 건물에서 유래되었는데 잘못 불러오고 있음을 알아야 겠다.

이제는 우선 병영홍교의 안내판을 원래대로 배전각홍교로 고치되 내용은 배전의 의미도 삽입하여 바로 알려야 겠다.
그런다음은 관련 자료와 의례에 관한 내용들을 폭넓게 수집하여 건물을 복원하고 의례를 재현한 다음 체험하는 학습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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