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김아일 할머니의 눈물
국가유공자 김아일 할머니의 눈물
  • 김철
  • 승인 2003.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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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이 되면 김아일(95·작천면 용상리)할머니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마르지않는다. 국가유공자를 위하는 각종행사와 모임들이 열리고 있지만 두명의 아들을 잃은 김할머니의 텅빈 가슴한구석은 무엇으로도 채워주질 못한다.

김할머니가 한맺힌 삶을 살게된 사연은 지금부터 50여년전부터 시작된다. 6남1녀의 자식을 둔 김할머니는 지금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시기를 잊을 수 없다. 단란하게 살아가던 가족에게 전쟁으로 군대에 자식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유난히 김할머니를 따르고 집안일을 도맡아하던 둘째아들 김태진씨를 가장 먼저 군대에 보내게됐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항상 마음 졸이며 살아가던 김할머니에게 휴전을 얼마 앞둔 1953년 한 장의 통지서가 배달됐다. 둘째아들 김씨의 사망사실을 알리는 전사통지서를 받아든 김할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서 눕고말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속에서도 유난히 총명하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던 둘째아들의 죽음은 김할머니 가족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힘들게했다.

가족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않았다. 군대를 보내지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보려 했지만 셋째아들 김복진씨가 강제징집으로 훈련소에서 훈련도중 사망을 하게됐다. 두아들을 잃고 자리에 누운 김할머니는 항상 자식들을 찾아야한다는 말을 되풀하며 정신이상증상도 한때 보이기도 했다.

50여년을 두아들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사는 김할머니는 지금도 따뜻한 방안에서 눕기를 싫어한다. 가슴속에 남겨둔 한이 생겨서인지 항상 찬곳에서 생활하기를 즐겨한다.

음력 9월 9일이 되면 김할머니집에서 두아들의 제사가 치러진다. 사망한 날짜와 생일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어 날을 잡아 동시에 지내주고 있다. 제삿날이 되면 자식들 생각에 잠기는 김할머니의 눈가는 그날따라 더욱더 촉촉해진다.

김 할머니는 “아직도 살아있던 자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자식들이 국가를 위해서 큰일을 했지만  부모로서는 평생 마음에 걸려 살아야했다”고 흐느꼈다./김 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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