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월출산 기암괴석 병풍 삼아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
[마을기행] 월출산 기암괴석 병풍 삼아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10.22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성전면 죽전마을 -
▲ 영암 도갑산의 산자락과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은 죽전마을의 전경이다. 현재 24호 3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죽전마을은 성전면 내에서도 가장 넓은 고추재배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주민들 고추 많이 재배... 자연산 녹차도 꾸준히 전승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 날씨 속에 계절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머리를 흩날리는 갈대의 모습만이 농촌의 풍경을 맞이하고 있다. 농번기철을 맞아 주민들의 대부분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요즘 월출산을 배경으로 소박한 농촌의 삶을 펼치고 있는 성전면 죽전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성전면소재지를 지나 광주·영암방면으로 5㎞ 정도를 가다보면 좌측 방면으로 무위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다시 1.5㎞를 더 달리다보면 영암 도갑산의 산자락과 월출산의 기암괴석들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죽전마을을 볼 수 있다.

죽전마을은 뱀의 모양을 띄고 있는 형국이고 예부터 뱀이 은신하는데 대밭이 좋다는 설에 따라 대밭을 이루게 되면서 죽전이라 불리게 되었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1400년대 밀양박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고 이후 김해김씨, 연안 차씨 등이 이거해와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곳은 높다란 산의 골짜기지대에 위치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도 피해를 입지 않은 곳으로 이는 인근에 위치한 무위사가 국보급 벽화를 현재까지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결과로 이어졌다.
 
죽전마을은 전체적인 농경지 중 밭으로 이용되는 경작지가 1/4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넓은 면적의 밭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콩, 고추, 깨 등 다양한 재배활동을 통해 소득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 요즘 죽전마을 주민들은 볏짚을 옮기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중 죽전마을의 자랑거리는 단연 고추이다. 죽전마을 주민들이 고추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1995년부터. 밭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작지가 많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형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시작한 것이 고추재배였다.
 
마을에서 밭으로 이용되는 경작지는 대략 33,000㎡(1만여평) 정도로 이중 고추재배 면적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10여 가구에서 가구당 평균 2,310㎡(700여평) 정도의 고추재배를 이루고 있다. 

한 해 생산되는 고추 수확량도 평균 9천근 정도로 이는 성전면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수확량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마을에서 수확되는 고추는 대부분이 직거래를 통해 서울, 경기도, 부산 등지로 판매되면서 주민들의 소득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에 조정환(62)이장은 "지난해에 고추 20근 정도가 미국으로 판매된 사례도 있었다"며 "구매자 대부분이 지인 또는 단골들의 입소문을 통해 구매에 나서고 있고 판매량도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고 밝혔다.  
 
죽전마을하면 녹차에 대한 주민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대대로 월출산에서 자생하는 야생녹차를 항상 애용해 수제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던 수제차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당시 무위사를 찾은 대학교수들과 스님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제다법을 알려주면서 수제차가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주민들은 수제차를 만들면서 철저하게 구증구포(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리는 것)의 제다방법을 따르고 있다.
 
▲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위치한 정자나무가 농촌의 풍광을 더하고 있다.
특히 월출산 야생녹차는 평균 700여년이 넘는 녹차나무에서 따내 맛과 향기가 일품일 뿐더러 옥판봉으로 불리 우는 봉우리는 전국 최초로 녹차상표였던 백운옥판차의 이름으로 사용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현재 24호 3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죽전마을은 대부분이 60~80대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급격한 이농현상을 비롯해 고령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수가 감소했을 뿐더러 귀농현상도 드물어 젊은 연령층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죽전마을에서는 보리농사를 실시하는 농가도 지난해 2농가를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도 해마다 1~2농가씩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지난 2007년부터 마을에는 한우가 하나 둘씩 늘기 시작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에 지친 주민들이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40여두로, 3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마을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주민들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모습은 더욱 높아져만 가고 있다는 죽전마을 사람들. 서로의 지혜를 모으려 힘쓰는 죽전마을 주민들의 모습에 마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인터뷰 - 마을주민 차준용 씨

"밭작물 작황 안좋아 안타까워"
경운기를 이끌고 밭으로 향하던 주민 차준용(82)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한미소로 반겨주던 차씨는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차씨의 고향은 다름 아닌 일본 나고야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1950년 죽전마을로 이주해왔다는 차씨는 15세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차씨는 "부친께서 젊은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가 터를 잡고 살면서 나의 형제들이 전부 그곳에서 태어났다"며 "현재는 친척들만이 거주하고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일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요즈음 건강관리에 대해 차씨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뇌경색을 앓고 쓰러지면서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평생 술과 담배를 절제해 왔고 최근에는 즐겨마시던 커피까지 줄이며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2,640㎡(800여평)의 면적에 콩을 재배하고 있는 차씨는 "올해는 잦은 비로 인해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아 많은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며 "자녀들과 일본에 거주하는 친척 등에게 나눠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을에 대해 차씨는 "죽전마을은 부친을 비롯해 옛 조상들이 대대로 삶을 이어갔던 곳이다"며 "바쁜 일상의 도시적인 모습을 갖춘 일본 나고야에 반해 이곳은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소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