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마르지 않은 샘물 사람의 몸을 고치고
마을 앞 마르지 않은 샘물 사람의 몸을 고치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10.1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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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면 약천마을

▲ 가옥들 너머 넓게 펼쳐진 들녘과 강진만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천마을은 나지막한 야산을 낀 해변산중으로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기름진 황토 지천... 농산물 품질 좋아

약천마을의 옛 지명은 당산(堂山)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1950년대까지 약천마을 일대는 인근 대월마을에 속하면서 당산이라 불렸다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설명이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당시 불리었던 당산은 마을지명이라기 보다는 대월마을 중에서도 한 구역을 지칭했던 부분이었다.

이후 지난 1983년 대월에서 당산이 분리됨에 따라 현재의 약천마을이 하나의 행정마을로 등장하게 되었다. 1983년도는 신전면이 도암면에서 분리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마을의 형성시기와 최초 입향성씨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나 구전 등이 없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힘든 실정이었다.

다만 주민들에 따르면 1800년대 김해 김씨 후손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고 당시 곡수 천석(千石)을 거둬 들일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다는 구전만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잠시 이러한 구전을 바탕으로 마을의 형국을 들어보자. 약천마을은 밥을 할 때 쌀을 깨끗이 하는 도구를 일컫는 조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조리형국으로 불린다.

▲ 마을주민들이 약천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예부터 이곳 샘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득찬 조리는 부어진다'고 하여 마을에서 부자가 되면 곧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설이 항상 뒤를 이었다.

때문에 약천마을은 예부터 부자들이 많았지만 마을을 떠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았다.
 
이에 몇몇 주민들은 당시 마을에 거주하면서 부를 축적했던 주민들이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켰더라면 오늘날까지도 상당히 부유한 마을로 이름을 떨쳤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약천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마을샘물이다.

마을입구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약물샘은 지난 1980년대까지 그 유명세를 떨치면서 신전면 일대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마을지명을 약천으로 사용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그 효력이 얼마나 대단 했을지 큰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약천샘은 무병장수의 약물이 된다는 설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때문에 이 일대를 왕래하던 사람들은 유독 약천마을에서만 쉬어 갔고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 약천이라는 지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샘 하나로 인해 마을지명이 당산에서 약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성한(75) 이장은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을 뿐더러 샘물을 사용해 밥을 짓고 목욕을 하는 등 일상생활의 전부를 차지했었다"며 "현재 70, 80대 주민들이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것 또한 샘의 효력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약천마을의 지형은 앞쪽에는 넓은 한벌들과 강진만이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 나지막한 야산이 둘러싸고 있어 차가운 겨울의 북서풍을 막아주고 있다.

그 이유에선지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인근 마을보다 보름가량 늦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또한 여름철이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마을로 불어오고 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뒷산이 막아주기 때문에 어느 마을보다 포근하다는 것도 약천마을만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지형적 영향으로 약천마을은 지난 1970년대부터 마늘재배에 나서게 된다.

당시 10여호에 이르던 마늘재배 농가는 40여년이 지난 현재 20여호에 이를 정도로 전체 농가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에서 수확되는 마늘만도 한 해 평균 20여톤에 이른다. 
 
약천마을에서 재배되는 마늘은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것과 저온창고에 오랜 기간 보관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또한 마을 토양이 황토를 이루고 있어 빛깔 또한 최고를 자랑할 뿐더러 퇴비를 거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비료를 사용해 재배하는 것보다 고품질의 마늘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설명이다.


●인터뷰 - 약천마을주민 김양수 씨

"물 좋은 곳 인심도 좋아"

마을회관 앞에서 수확한 곡식을 널고 있는 주민 김양수(78)씨를 만났다. 석양이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

김씨는 녹색 모자를 쓰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갈퀴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갈퀴를 휘젓는 모습에 멋쟁이라는 단어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에 김씨는 "왼쪽 눈은 20여년 전 백내장으로 인해 전혀 볼 수가 없는 상태이다"며 "뭣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멋쟁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그저 웃을 따름이다"고 전했다.
 
선글라스는 김씨의 멋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의 아픈 모습을 잠시나마 감춰주는 것이었던 셈이다. 잠시나마 숙연해지던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까지 더해졌다.
 
김씨는 "불편한 시야와 더불어 16년째 뇌졸중 치료를 위한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농사를 짓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해마다 곡식을 수확해 자녀들에게 전해줄 때면 아픈 기억들은 금세 머릿속을 떠난다"고 전했다.
 
올해 농사에 대해 김씨는 "올해는 병충해 피해가 거의 없어 수월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며 "단지 갈수록 떨어지는 나락 값이 농민들의 고충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고 밝혔다.
 
마을에 대해 김씨는 "물 좋은 곳에 인심까지 더해지고 널따란 들녘 뒤로 광활하게 펼쳐진 강진만까지 더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동네가 어디 있겠냐"며 "우리 주민들에게 약천은 한 평생을 일궈온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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