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과 김향수회장
강진과 김향수회장
  • 주희춘
  • 승인 2003.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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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했던 고향사랑...주변관리는 철저

15세의 나이에 고향을 떠났던 소년 김향수는 훗날 성장해 고향과 끈끈한 인연을 다시 잇는다. 

 

김회장은 일본에서 귀국한 1935년 고향의 부모님이 정해준 고향마을의 오승례여사와 결혼을 했다. 오여사는 김회장의 초등학교 2년 후배였으며 결혼 후 60년 이상을 함께 해로했다.

 

김회장은 또 1958년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에강진지역구에는 변호사출신이면서 자유당 소속인 현역의원 김성호씨가 버티고 있었지만 강진사람들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지역개발을 약속한 김회장을 새 국회의원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회장은 당선 후 자유당에 입당해 기계공업육성법을 마련하는등 의욕적인 의정활동을 폈으나 4.19의 영향으로 2년여 정도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데 그쳤다. 자유당이 무너지면서 김회장의 기업도 상당한 영향을 입어야 했다.

 

김회장은 기업활동을 해오면서 고향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고향일이라면 거의 모든 일을 도와준 것으로 유명하다. 50년도 중반에는 고향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비를 들여 각종 공사까지 시행하기도 했다.

 

또 70년대 컴퓨터가 처음 나올 시기에 모교인 중앙초등학교에 컴퓨터 28대를 기증해 장안을 놀라게 했다. 또 군민의날 행사가 각종 체육대회등 크게 작은 군정에 아낌없는 후원을 해왔다.

 

김전회장과 고숙 관계이면서 고향과 김회장의 가교역할을 했던 오연배 군동 사랑의 집 원장은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분이였지만 고향일이라면 언제나 고개를 끄떡거리며 돈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던 분이다”고 회상했다. 

 

김회장은 고향후배들의 장학사업에도 큰 관심을 쏟았다. 김회장은 지난 1956년 이미 ‘김향수 장학회’를 설립해 강진출신 서울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그의 장남인

 

김주진 아남 반도체/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회장은 지난 1996년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장학재단에 5억원을 출연하여 아남 특지장학회를 설립, 1997년부터 서울대학교에 재학중인 강진 출신 5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회장은 불교에 심취해 부인과 함께 옥련사를 자주 찾았다. 지난 83년에는 옥련사 대웅전 불사에 적지 않은 돈을 시주해 사찰경내에 공헌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렇듯 고향을 사랑했던 김회장이였지만 주변사람 관리는 철저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인척이라도 열심히 살지 않거나 신의를 지키지 않으면 일원한푼 도와주지 않았다. 자식 교육도 철저히 했다.

 

김회장의 자녀들을 처음부터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아, 장남인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0년간 경제학 교수를 지냈고, 둘째 김주채 아남인스트루먼트 회장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공학박사로 듀폰사 선임연구원을 지낸 뒤 아남 경영에 합류했다.

 

김회장은 매년 1~2차례 고향마을을 찾아 숙식하곤 했으나 15년전 턱뼈수술을 한 후 고향에 내려오지 못했다. 고향 신학마을에는 여동생이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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