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출신 재계의 큰 별이 졌다"
"강진출신 재계의 큰 별이 졌다"
  • 주희춘
  • 승인 2003.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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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향수 회장의 일대기
▲ 생전의 김향수 회장 모습
강진출신 재계의 큰 별이 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이자 아남그룹 창업주 인 김향수(강진읍 신학리 출신) 명예회장(현 앰코코리아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김 전회장은 동원산업의 김재철회장과 함께 강진 사람들에게 늘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재계의 거목이였다. 그는 고향일에 늘 관심을 가져왔고, 고향 인재를 키우는데 많은 정성을 기울여 그의 별세에 대해 강진사람들은 큰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김전회장은 1912년 강진읍 신학리에서 부친 김재황씨와 모친 밀량박씨 사이에서 7남매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 전회장의 집은 강진읍에서 부농에 속했으나 막내인 김전회장은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해 무척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전회장은 훗날 ‘작은 열쇠가 큰 문을 연다’라는 저서에서 용돈으로 군고구마을 사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유혹을 뿌리치고 연필 두자루를 산 경험도 있다며 어릴적 고생을 잔잔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김전회장은 어릴적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근검절약정신을 평생의 경영철학의 신조로 삼아왔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다.

 

김전회장은 여섯 살때 서당에 들어가 한문을 배운 다음 여덟살때에 지금의 강진중앙초등학교 전신인 강진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소년 김향수는 당시 신동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 한다. 학교 다닐적에 줄 곳 반장을 도맡아 했고, 공부도 상위권에 속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가정 형편으로 소학교 졸업(15회 졸업)에 만족해야 했던 소년 김향수는 1926년 15세이던 어린 나이에 혈혈 단신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꿈 많은 소년의 앞길을 막을수는 없었다. 당시 소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인 선생은 고향을 떠나는 소년 김향수를 위해 학생복 한 벌과 서울까지의 여비를 마련해 주었다.

 

김전회장이 서울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경성사범학교에 응시하는 것이였다. 교육자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몸이 허약했던 김전회장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해 교육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회장은 다시 경성 공립농업학교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학비 때문에 역시 포기해야 했다. 대신 김회장은 야간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일본인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했다.         

 

김회장은 일본에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축을 꾸준히 했다. 김회장은 훗날 당시의 생활을 “나는 거의 한푼도 헛되게 쓰지 않은 생활을 했다. 분홍색 통장에 다달이 도장이 찍혀 나가며 예금액이 불어가는 것을 보던 기쁨은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회고했다.

 

김회장은 근검절약의 생활 덕분에 일본유학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나이 17세이자, 홀홀 단신으로 고향 강진을 떠난지 2년만에 일이였다. 그는 일본으로 떠난지 4년만에 일본대학 법학과에 입학하는등 일본에서 학문을 계속했고, 친지의 상점을 도와주며 기업경영을 배웠다.

 

김회장은 이후 귀국해 1935년께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충무로 지역에서 소규모 상점을 경영하다 1939년 일만무역공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무역업을 시작했다. 일본으로부터 자전거, 주단, 잡화등을 수입해 국내와 만주에 내다파는 사업이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김 회장은 상호를 아남산업공사를 변경하고 사업내용도 저전거 수입판매에서 자전거 부품생산으로 전환했다. 이후 김회장의 회사는 자전거부품 시장을 거의 석권하며 승승장구했다.

 

김 회장의 기업활동은 우리나라의 기업역사를 새로 쓰는 족적으로 이어졌다. 김회장은 1956년에 한국자전차공업을 창업했으며 환갑을 앞둔 1968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반도체 패키징(조립) 회사인 아남산업(아남반도체의 전신)을 창립,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로 불리고 있다. 김회장은 지금은 우리나라 수출의 효자품목으로 자리를 확고히 한 반도체 산업의 대부로 통한다. 

 

급성장의 물살을 탄 아남그룹은 20여개 개열사와 종업원 1만2천명, 연매출 10조원, 재계 랭킹 20위 권이라는 초 대규모 집단으로 성장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은탑산업훈장, 인촌(仁村)상, 참경영인상, 다산경영상 등을 수상했다.

 

고(故) 김 회장은 1992년 장남인 김주진(67) 현 앰코테크놀러지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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