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사상의 향취 곳곳에 내려오고
유학사상의 향취 곳곳에 내려오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04.02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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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면 수동마을 -

▲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과 각종 수목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농촌마을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해남윤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수동마을은 예부터 유교사상과 학문이 크게 발달된 곳이다.

주민들 역사의 소중함 중시... 교육열 남다른 마을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들녘의 푸른 새싹들이 어느새 제 색깔을 내고 있다. 각종 나무들도 따스한 햇살이 마냥 반가운 듯 저마다 꽃을 피워 모습을 드러낸 채 지나는 이들을 반기고 있는 모습이다. 포근한 봄기운이 대지를 적시고 있는 가운데 찾은 곳은 대구면 수동마을.

대구면소재지에 위치해 있는 수동마을은 행정기관과 금융기관 등이 밀집해 있어 면소재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쉽게 머무는 곳이었다.

▲ 전남도 문화재자료 270호로 지정된 여택정은 향토사나 건축사적으로 연구가치가 충분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면소재지에는 식당 4곳, 이발소, 철물점, 다방, 슈퍼 등 8곳의 상가만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지난 2000년보다 3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인구감소와 고령인구 증가등의 원인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주민들의 복지문화 수준은 지난 2008년 준공된 복지회관과 보건소 등이 새롭게 건립되면서 점차 향상되어 가고 있었다. 

수동마을의 형성연대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으로 이천서씨, 진주강씨, 안산김씨 등이 입촌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마을 주위의 산에 이들 성씨의 오래된 묘가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정확한 부분을 알 수는 없었다.   

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1600년대로 해남윤씨 윤시성(尹時聖)이 도암 강정리에서 처가인 수동으로 이거해와 자자일촌을 이루면서 해남윤씨 집성촌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마을에는 120여 가구 중 해남윤씨가 90여 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주민들은 미맥 이외에도 지난 1970년부터 공동양식장이 운영되면서 바다 소득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 딸기,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농가들도 10여 농가에 이르고 있었다. 면소재지 뒤편으로 가옥들이 즐비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백나무 숲 사이로 마을회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회관에 들러 주민들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을에 대해 주민 조경애(80)할머니는 "예부터 이곳은 주민들의 생활력이 강하고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마을로 소문이 자자하다"며 "마을의 큰 자랑인 여택정과 강회정은 지난해 전남도 문화재자료 270호로 지정되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에는 여택정과 강회정의 영향으로 유교사상과 학문이 크게 발달되어 왔다고 한다. 여택정은 윤시성이 건립하여 주역 등 전문인을 가르치던 곳이며 강회정은 대구면의 향약과 수동마을의 대동계를 이끌어오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수동마을에 터를 잡은 해남윤씨 윤시성이 이곳에 초당을 세운 것이 강회정의 모체인 것이다. 이후 이곳은 행정 사법기관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지난 1650년대 대동계원의 자녀와 대구면 인근지역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교육을 담당했던 강학소로 이용되었다. 또 동학농민운동 때는 동학군의 집강소로, 일제치하에서는 야학운동의 거점지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수동마을은 학문을 숭상하는 전통이 있게 되면서 지난 1966년 9월 마을문고 부문 농림부장관상 수상했고 지난1989년에는 제1회 대통령기 쟁탈 국민독서 경진대회에서 대통령기를 쟁탈했다.

▲ 오후 식사를 끝마친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현재 여택정은 강회정과 함께 향촌공동체의 중심공간으로서 조선후기 공동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자료들이 전해져 향토사나 건축사적으로 연구가치가 충분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동마을은 해남윤씨 윤시성의 후손들이 자자일촌을 이루면서 관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는 자연스레 주민들의 단합과 화합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나타냈고 이러한 영향은 다양한 모임을 이끌어 냈다.

현재 마을에는 대동계 외에도 행정질서 등의 전통을 이어오기 위한 향약대동계, 해남윤씨 친목을 위한 수목계 등의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모임은 마을주민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며 지역봉사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난 2000년부터 양치중(70)씨 등 주민 20여명은 면소재지 환경정화 활동에 나서면서 마을 뒤쪽 서씨골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 환경정화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주민들은 해마다 봄을 맞아 4㎞ 등산로길 양옆에 자라난 잡풀들을 뽑아내 자연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끈끈한 정을 통해 마을을 지켜가고 있는 수동마을 주민들. 옛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유학사상과 정신을 소중히 지켜가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에 수동마을은 역사의 소중함을 간직한 채 그 모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을출신 인물로는 대구면장을 역임한 윤광섭씨, 전남도청과 광주시청 사무국장을 역임한 윤순남씨, 감사원 4국 2과장을 역임한 조금철씨, 서울시청 서기관을 역임한 정철씨, 조선대 교수를 역임한 윤덕상씨 등이 있다.     

인터뷰  I  해남윤씨 죽사동파 28대손인 윤영규 씨

"젊은사람 다시 찾아오는 활기찬 마을 만들터"

수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해남윤씨 윤시성이 이거해 와 자자일촌을 이루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에 해남윤씨 죽사동파 28대손인 윤영규(72)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씨는 지난 1702년에 첫 발간된 해남윤씨 족보인 임오대동보를 내보이며 마을의 역사에 대한 설명도 함께 이어나갔다.

윤씨는 "예부터 마을에는 유교와 학문이 발달하면서 선조들은 유학의 가르침을 중요시 했다"며 "마을에는 1960년대까지도 중·고등학교에 입학해 신문학을 배우는 학생보다 서당에서 유교문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회정에 대해 윤씨는 "400여년의 세월을 보듬어온 역사만큼 수많은 역사의 애환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며 "향촌공동체의 중심공간이었던 만큼 현재 대동계원들이 1년 중 음력2월과 4월에 모임을 갖고 계원 간 친목도모와 화합을 통해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윤씨는 "주민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복합적인 문제점이 뒤따르고 있지만 집성촌을 이루다 보니 공동체문화가 발달돼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젊은 일손들이 마을을 찾아 들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마을로 발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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