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바다를 바라보고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바다를 바라보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03.2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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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량면 수인마을 -

▲ 수인마을은 삼면이 나지막하게 산으로 에워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 감돌고 있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100여명의 주민들은 벼 농사이외에도 꼬막, 석화 등을 수확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350여년전 터잡은 마을... 강진만 굴, 바지락, 꼬막등 유명

꽃샘추위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봄기운은 어김없이 찾아 들고 있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을 알리듯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농사준비에 나서는 주민들의 손길은 더욱 분주하다.

봄비가 잠시 대지를 적시고 있는 가운데 찾은 곳은 마량면 수인마을. 대구면소재지를 지나 마량방면으로
5㎞를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수인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표지석에는 마을지명 외에 '덤바우'라는 명칭도 함께 표기되어 있다.

표지석을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수인마을을 볼 수 있다.

바다와 인접하고 있는 수인마을은 삼면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인지 온화한 느낌이 감돌았다.

본래 수인마을은 마량방면을 오가면서 쉬어가는 골목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쉰동으로 불리었다. 또 마을에 덕바위라는 바위가 있어 덤바우라는 지명도 함께 사용되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덕바위 밑으로는 석굴이 있어 그 길이가 마을에서 대구면 구곡마을 인근 삼바굴 정상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석굴은 갑오년 동학혁명 때 여러 사람이 피신하여 화를 면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또 마을을 처음 설촌 할 당시 바위가 바람을 막아 양지를 만들어 주었고 인근 마을에 비해 호랑이의 침입이 없었던 것도 바위의 덕이라고 여겨 덕을 베푼다는 뜻에서 덕바위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표지석에 표기된 덤바우는 덕바위가 변음되어 덤바우라고 불리게 된 것을 그대로 표기해 놓은 것이었다. 덤바우라는 마을지명은 지난 1950년대 이후부터 수인이라 개칭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형성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50여년 전으로 진주강씨가 처음 터를 잡고 이후 경주김씨가 이거해 오면서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마을에는 58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반농반어를 이루며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수인마을은 농토가 고개 넘어 동쪽 들녘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농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로 인해 과거 주민들은 흉년이 들거나 생계수단이 어려워지면 바다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나갔고 자연스레 어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마을 앞에 펼쳐진 강진만은 복섬바다로 불린다. 바다위에 조그맣게 떠있는 무인도가 복섬이다. 특히 마을 안쪽으로 펼쳐진 강진만은 꼬막을 비롯해 굴, 바지락 등 각 종 조패류가 풍부해 예부터 마을 주민들의 소득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올 한해 풍년과 건강을 염원하며 힘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마을을 둘러 보던 중 회관 앞에서 만난 박정수(69)씨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박씨는 "미맥농사가 주를 이루고 공동양식장에서 바지락, 석화, 꼬막 등을 채취해 소득을 얻고 있다"며 "특히 굴은 석화장 돌에서 자연 서식한 석화만을 채취하기 때문에 그 맛이 일품이다"고 말했다.

수인마을 석화는 일반적으로 줄에 매달아 양식을 하는 수하식 굴보다 작고 채취하기도 어렵지만 단단하고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또 삼면이 나지막하게 산으로 둘러싸면서 해수와 육수가 적절히 섞여지는 것도 양질의 석화를 만드는데 중추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양식보다 두 배정도 비싸지만 해마다 찾는 이들의 손길이 이어져 겨울철 어가에 큰 소득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50여명의 주민들이 석화, 꼬막 등 채취에 나서고 면서 1인당 300~500여만원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마을에 대한 또 다른 자랑거리로 주민 김영님(67)씨는 "예부터 수인마을하면 첫째로 부촌마을로 손꼽았고 그 다음으로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이름을 알렸다"며 "해마다 마을잔치를 3~5번 정도 열어 주민들의 정을 돈독히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1960년 마련된 마을 공동우물은 주민들의 식수난 해소에 큰 버팀목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은 마을 내 마을총회 이외에도 위친계, 관광계, 반계 등의 크고 작은 모임들을 통해 자연스레 화합을 도모해 나갔다. 이렇듯 마을잔치가 수 년 가까이 이어져 오면서 인근 마을에서도 부러워하는 마을의 자랑이 되었다. 또한 작은 음식 하나라도 서로 나눠 먹으며 오붓한 정을 쌓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어느 마을보다 풍족함으로 넘쳐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인마을은 지난 1992년 불법어업이 없는 마을로 선정돼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바다를 통해 삶의 여유와 풍요를 누렸던 만큼 그것을 지켜나갈 줄 아는 지혜도 함께 실천해가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에 풍부한 수자원이 변함없이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인터뷰 - 마을주민 김향곤 씨

"멧돼지가 바닷가까지 내려와 농작물 공격"

자택마당에서 트랙터를 점검하고 있는 김향곤(76)할아버지를 만났다. 김 할아버지는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아 겨우내 사용하지 않은 농기계를 수리 중이었다.

15년 전 구입한 트랙터를 아직까지 사용 중이라는 김 할아버지는 "35마력의 작은트랙터 이지만 지난 15년 동안 큰 고장 없이 잘 버텨온 놈이다"며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고 이놈도 나이가 들어 둘 다 쉴 때가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할아버지는 "자식들은 용돈을 보내오면서 농사를 그만 짓고 편히 지내라고 한다"며 "여느 농사꾼과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식량이라도 보태주는 재미로 농사짓고 있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20마지기 벼농사 외에도 콩, 고추 등 밭작물 재배를 하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에는 멧돼지가 밭에 심은 고구마를 모두 파먹어 큰 수확을 얻지 못했다"며 "마을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 농작물에 피해를 입혀 주민들이 농사짓는데 어려움을겪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마을에 대해 김 할아버지는 "주민들이 서로 인정을 나누고 화합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인심 좋고 마을 경조사에 함께 힘을 모으는 전통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켜가고 있다"고 마을자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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