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작천들 한눈에 조망... 오봉산 물 상당저수지 만들어
넓은 작천들 한눈에 조망... 오봉산 물 상당저수지 만들어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01.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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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작천면 상당마을

장수마을, 자연이 좋은 마을, 금연마을, 경로효친마을 자랑

한차례 폭설과 추위가 지나간 뒤 겨울 햇살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따뜻한 날씨에도 그늘진 곳엔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하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듬성듬성 쌓여있는 눈이 산자락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 작천면 상당마을. 강진읍소재지에서 까치내제를 넘어 7㎞를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첫 마을이 상당마을이다.
 
상당마을을 가리키는 표지석을 지나 500여m를 들어가다 보면 매봉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밭이 펼쳐진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을 볼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마을 진입로에 놓인 70㎝ 높이의 선돌이었다. 단순한 바위라고 보기에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그 의미가 궁금했다. 궁금증을 안고 다시 마을 회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상당마을이 속해 있는 삼당리는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청주한씨가 보성군에서 이거해오면서 당시 아그베나무가 마을 앞에 자생하고 있어 당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어 1900년대 일제행정 개편이후 삼당리로 불리면서 상당·중당·하당으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렀고 상당마을은 중당·하당마을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하여 상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30여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미맥위주로 생활하고 있고 3농가에서는 감나무 재배를 통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마을회관에 이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웰빙금연시범마을'이라는 문구였다. 상당마을 주민들이 금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주민들은 환기가 잘되지 않는 마을회관에서 담배연기를 몰아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 담배를 피우던 10여명의 남자주민들이 금연을 시작했다.

또 '금연'이란 문구를 회관에 붙여놓고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천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약속도 정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들의 반발은 상당했다. 하루 한갑씩 수십 년 째 피워오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기에는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농촌사회에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규칙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금연에 나서는 주민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이어 마을 내에서 수십 년 째 담배를 피워오던 장유환(90)할아버지가 후두암 판정을 받고 목소리를 잃게 되자 주민들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렇게 상당마을은 금연마을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면서 벌써 10여년째 이르고 있다.
 
하루 한 갑씩 30여년을 넘게 담배를 피웠다는 정용식(80)할아버지는 올해로 금연 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정 할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여간 보통일이 아니었다"며 "주민들의 확고한 의지와 응원 덕분에 금연에 성공하게 되었는데 내 평생 가장 후회 없는 선택 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는 선돌의 의미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나가고자 주민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하마비라고 불리는 선돌은 마을 앞에 50m 간격으로 3기가 놓여있다고 한다. 예부터 강진읍에서 까치내제를 넘어 병영을 오갈 때에는 상당마을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말을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선돌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인사를 한 다음 마지막 선돌에 이르러 다시 말에 올라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으나 마을주민들은 예부터 이곳에 높은 선비나 벼슬아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회관에는 주민 6명이 모여 앉아 있었고 방금 전까지 윷놀이를 즐기고 있었는지 방안 중간에는 윷판이 놓여 있었다.
 
마을에 대해 묻자 마춘애(80)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마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장수마을이요, 자연이 좋은 마을이요, 금연마을이요, 경로효친마을이요"라며 "이보다 자랑거리가 많은 마을이 어디 있소"라며 마을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어 마을주민들은 상당저수지에서 수확한 민물새우로 만든 작천 토하젓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을회관에서 뒷산으로 1㎞를 올라가다보면 드넓게 펼쳐져 있는 상당저수지가 나타난다. 마을주민들이 토하를 채취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마을 부녀자들이 아침운동을 위해 상당저수지를 찾으면서 토하 채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된장, 멸치 등을 넣어 토하를 유인하고 잎이 우거진 나뭇가지를 사각망 위에 얹어놓으면 자연스레 토하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수확 된 토하는 주민들이 염장, 양념 등을 하여 판매까지 나서면서 부수입을 올려오고 있었다.   
 
상당저수지에 많은 토하가 살고 있는 이유는 지난 1970년 저수지가 만들어 진 후 인근지역에 논이 없고 인적이 드물어 자연 상태로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인근 오봉산에서 흘러 들어오는 맑은 물 역시 상당저수지를 1급수로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했다.

상당마을은 지난 2007년과 2009년에 40대와 50대 2가구가 귀농해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 인터뷰 - 상당마을 장난초 부녀회장

"고령 마을주민들 고생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노력"
마을회관에서 반찬 정리를 끝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던 장난초(62)부녀회장을 만났다.
 
상당마을에서 태어나 60여년을 마을에서 지내 온 장 회장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마을 토박이 중에 한 명이다.
 
10여년째 마을부녀회장을 맡아오고 있는 장 회장은 "우리 마을은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이농현상에 이어 고령화 사회가 이어지다보니 특별하 내세울 것은 없는 마을이다"며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을 발전을 위한 주민들의 노력만큼은 최고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5년 전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으면서 거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장 회장은 "마을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기에 몸은 불편해도 고령인 마을주민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오히려 마을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일손을 돕는 경우가 많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부녀회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장 회장은 "부녀회라는 조직이 무의미하는 조직이 아닌 마을에서 중요시 되는 조직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며 "부녀회원들의 탄탄한 조직력과 화합을 바탕으로 상동마을 부녀회가 관내 마을에서 으뜸이 될 수 있도록 부녀회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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