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하멜 일행이 7년간 머물렀던 은행나무의 마을
[특집]하멜 일행이 7년간 머물렀던 은행나무의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11.27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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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 병영면 동성마을

▲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에 형성된 병영면 성동리 일대는 동성마을을 비롯해 박동, 남성마을이 함께 위치하고 있어 주택들이 오밀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다.
한골목 구비구비 수백년 병사골 역사 전해


한차례 몰아닥친 한파는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몰아내고 겨울을 더욱 앞당긴다. 추수를 끝마치고 휑해진 들녘 또한 계절의 변화를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다.

계절의 위력을 이기지 못한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을 한껏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길을 따라 나선 곳은 병영면 동성마을. 병영면 소재지에서도 하멜전시관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쉽게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동성마을을 비롯해 박동, 남성마을 일대에는 네델란드인 헨드릭 하멜과 그 일행 33명이 지난 1656년부터 7년간 생활했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성마을에 들어서자 돌담으로 이루어진 여러 갈래의 골목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후추샘이라 불리는 적벽골목은 한골목을 중심으로 해서 우측골목을 말하고, 마을회관에서 병영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을 선독골목, 병영교회로 가는 방면은 예배당 골목으로 부른다고 했다. 이밖에도 정쟁이골목과 은행나무골목 등 마을에는 돌담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5개의 골목이 있어 고즈넉한 모습을 담고 있다. 

동성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수인산 방면으로 1㎞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상가와 도로가 발달돼 있었다. 마을 주민들 또한 면소재지라는 환경 때문에 타 마을에 비해 문화·교육·시장·교통 등에서 많은 편리를 보고 있었다.

▲ 마을주민들과 박동마을 주민들이 동성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성마을과 박동마을은 한골목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을 뿐,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병영성의 동편에 위치한다고 하여 불린 동성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전 김해김씨가 최초 입촌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성씨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현재 마을에는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남평문씨 등 20여개 성씨들로 구성되어 있는 가운데 50가구 9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돌담길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회관에는 마을주민 서너명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주민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을에 대해 묻자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은행나무를 손꼽았다. 특히 주민 김영자(여·85)할머니는 은행나무에 대한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천연기념물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이 되어 있었다. 높이 30m, 둘레6.75m 정도의 은행나무는 8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 폭 또한 동쪽으로 16.5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0.9m, 북쪽으로 3.5m나 뻗어 있어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 은행나무의 부러진 나뭇가지로 목침을 만들어 사용한 병마절도사가 잠을 자다 그날로 병이 나서 신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의원들조차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병마사가 은행나무에 목침을 다시 붙여 넣고 제사를 올리자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은행나무 고목을 살펴보면 목침덩이가 들어 있는 듯이 불룩해진 곳을 볼 수 있었다.

또 은행나무 아래에는 가로 3m, 세로 3m, 높이 80㎝ 크기의 고인돌 5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 1656년 하멜 일행이 병영에서 생활하는 동안 휴식을 취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마을 주민 문천권(71)씨는 "병영면 중에서도 동성마을에는 말을 탄 병사들이 지나다니면서 집안을 못 보게 담을 높이 쌓았다는 한골목과 쟁반에 옥이 구르듯 맑은 산천수가 흘렀다는 적벽청류 등 수많은 관광자원들이 있다"며 "특히 적벽청류는 지난 7월부터 복원공사를 실시하고 있어 동성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 천연기념물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은행나무는 마을중앙에 우뚝 솟아 있어 마을의 상징목이 되고 있다.

동성마을 안자락에 위치한 적벽청류는 일망대 밑에 있는 절벽으로 바위층과 그 앞을 흐르는 천을 일컫는다. 일망대는 마을을 바라보는 있는 봉우리로 일출·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부른 지명이다. 또 한편으로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일본이 망한다는 설에 따라 일망대(日亡臺)라고 불렀다고 한다.

적벽에는 적벽청류(赤壁淸流)라는 명문이 새겨있다. 문씨를 비롯해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누가, 언제 이곳에 글귀를 새겼는지 알 수 없으나 예부터 이곳에서 병사들을 비롯한 관리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는 것만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성마을에서는 지난 7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복원사업을 통해 이곳에 공원, 연못 등을 조성해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출신 인물로는 병영면 초대 민선면장과 초대 면의원을 지낸 박홍권씨, 병영면의회 의원을 역임한 정갑봉씨, 강길상씨, 병영부면장과 옴천면장을 역임한 주용남씨, 병영농협장을 역임한 정근식씨, 건국대학교 교수를 지낸 남정걸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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