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강진군번영회 총회를 마치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가졌다.

1946년 창립된 강진군번영회는 군 행정에 대한 견제도 하지만 상호 돕고, 중제하는 역할을 하면서 강진군번영을 위해 활동하는 봉사단체이다. 강진군번영회는 지금의 군의회 역할을 맡아 63년동안 한결같은 봉사를 갖고 있다.

지난 46년 군의회가 없던 시절 지역에서는 군민들의 뜻을 각 기관들에 제기하고 대변자가 되어 고향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움직임의 중심에는 지역 인사였던 김재려씨, 김 영씨, 김유홍씨 등 14명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단체명을 강진군번영회라 지칭해 발족식을 갖고 강진읍 동성리에서 창제의원을 경영하던 김재려씨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했으며, 창재의원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에 들어갔다. 발족 후 빈곤한 시기였던 그 당시의 의식주 문제해결을 위해 농업, 산업, 상업 활성화를 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74년 강진군 번영회에서는 11개 읍·면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향토지를 발간해 지역 문화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를 주었다.

1년 후 차부진 회원과 김유홍 회원이 지역이 농업에 국한하는 인재보다 대외적인 인재육성을 하기 위해 강진인문고등학교 설립 인가 추진에 나섰다. 번영회의 노력에 힘입어 강진인문고등학교 설립인가 확정을 받아 지역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새롭게 세워졌다. 지난 78년에는 강진농업고등학교(현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를 국립농업전문대학 승격을 정부에 건의하는 일들도 가졌다.

 

   
▲ 2005년 핵 폐기장 강진건설 반대 제1차 군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82년도에는 일제의 치하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헌신한 주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어 받는 일들이 진행됐다. 3·1탑 설립 기금 운동을 펼쳐 현재의 위치에 3·1기념탑을 세우고 주민들과 추도식을 거행했다.

같은해 특별한 문화전당이 없는 지역 문화 활동처가 되는 강진군민회관 설립도 추진되었다. 군민들이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 마련에 목적을 두고 번영회 회원들로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노력은 2년뒤 강진군민회관이 준공됐다. 이와함께 창제의원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던 번영회 사무실이 군민회관 내에 처음으로 마련되기도 했다. 그해 8월 이전한 사무실 입구에는 강진군번영회 현판이 내걸렸다.

지역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의 대변자가 되어 오던 번영회는 지난 85년 지금으로부터 453여년전 병영 삭둔리에서 태어나 1620년 별세한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큰별이자 병영이 자랑하는 해암 김응정 시비도 건립했다. 강진군민회관 옆에는 전국의 각 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의 많은 교수 등 학자들의 뜻을 모아 해암 김응정 선생이 지은 시를 담아 시비를 세웠다.

85년에는 번영회의 활동으로 지역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침체된 지역 활성화를 위해 해태공장 유치가 추진되어 강진읍 서성리에 대기업 공장이 들어섰다. 또 지역에는 금융 기관이 우체국 하나밖에 없었지만 번영회의 유치에 힘입어 농협도 설립됐다.

86년 번영회는 주거환경이 강진읍 서성리, 남성리 등 일자 형태이던 지역 구역정리 사업을 당국에 건의하였다. 이에 강진 구획 정리가 시작돼 논, 밭이었던 동성리 일대와 강진읍 오일시장 주변 부지가 택지로 만들어졌다.

87년도에는 강진~서울간 고속버스 운행 요구서를 정부에 건의해 서울간 차량 노선도 새로이 편성되기도 했다. 1년뒤 번영회는 제16회 군민의날 및 금릉문화제에 강진읍 영랑생가내에 영랑 시비를 건립하였다.

군의회가 없던 시절 강진 여론 집합체 역할에 앞장서 왔던 90년대초에는 강진군 번영회의 회원이 700~800여명이었다. 이 무렵 지역에서는 현 통계청 자리에 있던 원호청이 목포시로 통합이 추진됐지만 오랜시간 지역에 머무를수 있도록 강진잔류 운동을 펼쳐 4년간 지역에서 일을 보게 하기도 했다.

지역의 눈과 귀와 발이 되어 군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온 번영회는 96년에는 지역 현안사업으로 강진 외곽도로 4차선도로가 신설되는 일들에 나섰다. 이에 성전방면에서 보은산을 관통해 작천방면으로 개설되는 신도로를 남포 뒤 목리방향으로 돌려놓았다. 99년에는 각 면단위 번영회 조직 결성이 새롭게 추진되었다.

이에 성전면번영회가 처음으로 발족됐다. 연이어 작천면 등 11개 읍·면에 번영회가 결성돼 더 넓은 지역 활동을 전개했다. 또 청자활성화를 위한 설명회도 가졌다. 설명회에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생활자기 생산 필요성도 제기해 한단계 발전하는 기틀도 놓았다. 2000년에는 군의회가 설립돼 회원들의 숫자가 300여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강진발전을 위한 일들은 지속됐다.

 

   
▲ 2008년 전남지역 시·군번영회 회장들이 간담회를 갖고 협의회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2005년에는 독도수호 결의대회도 가졌다. 2006년은 강진인구가 적어 2010년에 시행되는 한국통신 KT발신자 표시사업이 조기 집행되도록 군민서명운동을 추진해 그해 6월에 개통되었다. 또한 번영회는 신규 사업체가 지역에서 사업을 유치할 때 협조해 달라는 군민계몽운동도 가졌다. 계몽운동에는 2개월동안 주민들에게 전단지 5만장을 배포해 사업들을 도왔다.

2007년은 북녘 동포 쌀보내기 운동에 협력해 번영회 회원들의 회비 2백만원을 들여 구입한 쌀을 북녘에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강진군신년하례식을 마련해 각 기관단체와 군민들과 신년만남을 가졌다.

번영회 김정권 회장은 "강진의 미래상에 희망이 있는 일들과 강진군 번영을 위해 노력 중이다"며 "앞으로 타 군과 협력해 관광개발도 하고 잘사는 고장이 될 수 있도록 각 단체와 모든 군민이 하나가 되는 일들의 다리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