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나무와 오동나무 연꽃이 마을을 보호하고
[특집]대나무와 오동나무 연꽃이 마을을 보호하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11.22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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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 옴천면 연동마을

▲ 연동마을은 산간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임야와 농경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수리시설이용 등이 용이해 영농에 매우 편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야를 붉은 빛으로 물들였던 단풍나무도 앙상한 가지만을 드리우고 도로변에는 힘없이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만 간다. 도로 위에 드문드문 쌓여가는 낙엽이 겨울 초입으로 들어선 계절을 말해주고 있는 가운데 길을 따라 찾은 곳은 옴천면 연동마을. 

연동마을은 병영면소재지를 지나 영암방면에서 장흥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835호선을 따라 2㎞ 정도를 달리다 보면 가슬치 고개를 넘어 화신과 죽림마을을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병영면 지로리에서 옴천면 계원마을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어 도로를 따라 마을이 위치해 있는 탓에 주민들의 교통편이 인근 마을에 비해 편리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찾은 마을회관에는 10여명의 주민들이 고둥 껍질로 윷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쌀쌀한 바깥 날씨와 달리 마을회관 안은 훈훈한 온기로 넘쳐났다.

마을 최고령자인 이복계(여·91) 할머니는 "시골 오지 마을에 무슨 자랑거리가 있겠소, 그저 나쁜 사람 없고 모두가 착한사람들만 있는 것이 자랑이제"라며 "연동마을은 예부터 주민들 간 단합이 잘되고 영농에 성실하다고 하여 타 마을에서도 모범마을로 널리 알려져 왔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연동마을은 백제 구수왕시대인 서기 222년에 하동정씨가 터를 잡고 당산리라 불리어 오다가 1900년대 이후 마을 앞 논과 밭에 암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이를 연의 씨 형국이라고 하여 연동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17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이는 1976년 강진군이 발행된 '마을유래지'에도 기록되어 있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고둥껍질로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또 구전에 의하면 마을 뒷산이 봉황산으로 불리는데 본래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오동나무에서 살며 연꽃에서 논다는 풍수지리설이 있다고 한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대나무 열매를 마을의 위쪽에 위치한 죽림마을로, 오동나무는 마을 아래쪽에 위치한 오추마을을 뜻하고 연꽃에 해당하는 곳을 본 마을이라고 여겨 연동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연동마을은 산간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임야와 농경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월곡제, 연동양수장 등 수리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영농에 매우 편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죽림, 오추마을 등 인근마을 가구 수가 20~30호인 반면 연동마을은 60여호에 이를 정도로 부촌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90년도부터 도시화·공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현재 마을에는 영광 김씨, 신안 주씨, 인동 장씨 등 37가구 7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고 있고 마을 30여 농가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30㏊면적에 저농약 친환경농업을 실시하고 있다.

주민들과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서도 이 할머니의 얘기는 멈추질 않았다. 이 할머니가 "예부터 연동하면 씨름이 제일이었지"라고 말하자 주위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부터 마을주민들은 마을단합을 위해 씨름과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씨름에서는 주민 고광석씨, 김재일씨, 임만옥씨, 조철환씨 등이 병영과 옴천면 내에서도 실력이 뛰어나 이후 군 대표로 나서 전국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목포대 체육과를 졸업 후 지난 1980년대 호남소속 씨름 선수 생활을 지냈던 장언기(49)씨가 연동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주민들은 연동마을하면 줄다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연동마을은 옴천면 내에서도 유일하게 정월 내내 줄다리기를 즐겼다고 한다.

▲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정휴정과 정자나무 아래 세워진 우산각 등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쉼터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줄다리기는 보통 한 골목에 줄을 놓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 줄을 당기었고 인근마을 주민들도 횃불을 켜고 합세했다. 이 때문에 오추마을 쪽으로 돌아오면 아래쪽에서 줄을 잡고, 가슬치를 넘어오면 위쪽에서 줄을 당기어 외지에서 어느 쪽으로 많이 오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났다고 한다. 연동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마을입구 우산각과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정휴정, 정자나무 아래 세워진 우산각 등 마을 곳곳에 주민들의 쉼터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면서 주변 모든 이들에게까지 그 마음을 전달하고픈 연동주민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출신 인물로는 옴천부면장을 역임한 서봉도씨, 장장국씨, 작천중학교 교감을 역임한 김경숙씨, 여수 돌산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장인원씨, 광주시청 과장을 역임한 장노기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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