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모양 마을 형국... 뒷산, 달을 쏘듯 웅장하고
활모양 마을 형국... 뒷산, 달을 쏘듯 웅장하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11.06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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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 칠량면 월궁마을

▲ 인정이 넘치는 월궁마을은 좁다란 마을 안길을 따라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을 뒤편으로는 궁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다.

드문드문 쌓여가는 낙엽이 겨울 초입으로 들어선 계절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한풀 기세가 꺾인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찾아간 곳은 칠량면 월궁마을. 강진방면에서 칠량면사무소 방면으로 11㎞ 정도를 달리다 보면 칠량면교차로가 나타난다.

교차로에서 마량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1㎞를 더 달리다 보면 월궁정류장을 지나 궁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월궁마을을 볼 수 있다.

월궁마을은 칠량면 덕동·보련·봉황·고현 등 4개 마을이 갈라지는 길목인 동시에 국도 23호선상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간이승강장이 아닌 버스정류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마을주민들은 다른 마을에 비해 교통편이 편리해 고령자 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큰 불편을 겪지 않고 있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월궁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칠량 고현마을에서 자가일촌을 이루며 살아오던 광산김씨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다고 한다.

월궁이라는 마을명은 마을 뒷산이 반달모양을 하고 있는 탓에 월산 또는 궁산이라 불려오다가 이후 월궁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 마을 뒷산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은 마치 활처럼 생겼다고 하여 활형국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던 한 노승이 활처럼 생긴 뒷산을 보며 "저 활로 달이나 한번 쏘아 봤으면 좋겠구나"라고 하였고 이후 마을주민들이 뒷산을 '궁산'이라고 하고 마을명도 '월궁'이라 부른다는 구전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따스한 가을햇살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어 마을주민 신재포(80) 할아버지는"월궁마을의 마을터가 개미형국으로도 불리고 있다"며 "예부터 자손이 귀한 사람이 이곳에 정착해서 부지런히 살면 자식을 얻는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지난 1970년대 칠량 구로마을에서 거주하던 서경호씨가 자식이 없어 고심하다가 월궁마을로 이사와 살면서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한때 월궁마을에는 칠량5일 시장이 들어서면서 상권을 따라 많은 가구가 입촌해 정착했다고 한다. 칠량 5일장의 개설로 자연스레 마을의 규모가 커지자 지난 1980년대 당시 가구수가 총 33호인 반면 인구는 1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칠량면 내에서도 부촌마을로 불리며 마을에 정착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화·공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현재 마을에는 광산김씨, 해남윤씨, 평산신씨, 이천서씨 등 21가구 3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 중산간에 위치해 있는 입지적인 조건 때문에 논의 면적이 작아 논과 밭의 면적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벼농사 이외에도 마을주변 9㏊면적에 고추, 깨, 콩, 생강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보던 중 주민 강사차(81)할아버지를 통해 마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 할아버지는 "우리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마을을 대표하는 지명이나 볼거리는 없으나 주민들에 대한 자랑거리는 많이 있다"며 "예부터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사랑과 애정만큼은 강진에서도 으뜸이다"고 말했다.

월궁마을은 예부터 광산김씨들이 자가일촌을 이루고 살면서 자연스레 단합과 화합이 이루어지며 마을을 형성해 왔다.

▲ 마을주민들의 휴식처인 우산각은 후손들이 효도애향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을주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지난 1977년 당시 군에서는 처음으로 취락구조개선사업 마을로 선정되어 마을 10농가에 대해 기반조성사업과 주택개량사업이 시행되는 등 마을주민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농촌주택의 문화주택화에 첫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또 지난 1990년 자원보호 실천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강진군수표창을 수상했고, 마을 애경사시 모든 주민이 하나가 되어 상부상조의 미덕을 보여주고 출향민들의 참여도도 높아 상부상조 실천 우수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어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백금례(여·56)씨가 말문을 이어 나갔다. 백씨는"예전에 비해 많은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마을주민들과 출향민들의 노력만큼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궁마을은 지난 2007년 군의 지원금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걷은 비용 등을 통해 40여평 크기의 마을회관 설립을 시작으로 우산각 설치, 마을도로보수 및 환경정화활동 등을 농촌마을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주민들 스스로가 마을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08년 세워진 우산각은 타향에 살고 있는 사업가들이 재산을 모아 항상 고향을 사랑하고 효도 애향하는 정신이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고 한다.

예부터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만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월궁마을 주민들은 그 정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상부상조하는 정신으로 마을을 이끌며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뷰 - 월궁마을 노인회장 강사차 씨

"자식농사 만큼은 자신"

자신의 집 마당에서 재배한 생강을 수확하고 있던 강사차(81) 할아버지를 만났다. 70년 넘게 월궁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강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최고령자이자 현재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마을에 대해 강 할아버지는 "장흥 대덕읍에서 태어나고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다"며 "이제는 이곳이 내 고향이 되어버린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강 할아버지는 "내 나이 20살 때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는 보성으로 건너가 장사를 하며 살려고 했으나 마을주민들과 나눈 정들이 너무 깊어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올 농사에 대해 묻자 "올해도 자식들이 주말을 이용해 일손을 도와주며 100여평의 밭농사 이외에도 10마지기 정도 벼농사를 무사히 지을 수 있었다"며 "이제는 나이가 들다보니 건강도 악화돼 내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남2녀를 두고 있는 강할아버지는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논과 밭을 바라보며 살아오는 동안 어느덧 이렇게 늙어버렸다"며 "하지만 자식농사 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지은 탓에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일주일 전에 집사람이 야산에서 일을 하다 쯔쯔가무시 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는데 빨리 완쾌돼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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